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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Sep 15. 2015

현지인이 아니기에 가능한 현지인 놀이

2013. 독일 ::: 뮌헨

#1. 엄마 생애 첫 도미토리 - 미니양 


 두 번째 뮌헨 방문. 2008년 첫 유럽 여행 때 이십 몇인실 도미토리를 경험하게 해줬던 뮌헨의 유로 호스텔로 다시 찾아갔다.


 이번엔 업그레이드 해서 3인실. 2인실은 너무 비싸니까. 아직도 유로 호스텔에 이십 몇인실 도미토리가 운영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용소의 생활은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남아있다.  여행을 다니면서 중심가에서는 조금 멀어도 2인실만 이용했었는데, 뮌헨에서는 마땅한 숙소를 찾지 못했다.


 엄마에게는 생애 첫 도미토리. 그래서 하는 수 없이 3인실 도미토리를 예약. 게다가 믹스 도미토리.

혹시 침대 하나가 비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들어오는 여행자마다 서양 남자들.

나야 뭐 믹스 도미토리가 익숙하지만, 엄마에게는 불편하고 어색한 경험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딸이 미안해할까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2. 현지인이 아니기에 가능한 현지인 놀이 - 미니양 


 도미토리 숙소를 빼놓고는 뮌헨에서는 즐거운 하루하루가 펼쳐졌다. 

디자인을 직업으로 하는 나에게는 디자인이나 미술 관련된 것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고, 엄마에게는 유럽이라는 이미지를 제대로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거리를 걷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 소품점에 들어가 구경하고, 그러다 다리가 아파지면 커피 한 잔하며 쉬기도 하고, 공원을 산책하기도 하고... 여유롭고 한가한 현지인놀이. 일상을 놓고 떠나온 여행자이기에 가능한, 현지인들은 못하는 현지인 놀이.


 한가로운 현지인 놀이 중에서 특히나 맥주를 좋아하는 엄마와 나는 호프브로이에서의 시간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운동장 같은 넓은 홀에 다들 1,000cc맥주를 물처럼 마시는 사람들. 거기에서 500cc 맥주는 왠지 애들이나 마시는 것 같은 작은 음료수 잔처럼 보였다. 난 1,000cc, 엄마는 500cc 그리고 독일소세지. 화기애애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라이브 연주까지.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분위기였다. 곧 주문한 맥주가 나왔는데 500cc 두 잔. 분명히 1,000cc라고 했었는데 500cc가 두 잔이 나왔다. 웨이터 아저씨 표정을 보아하니, 동양 여자애가 1,000cc를 먹겠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흥!"하고 500cc를 받아들고 벌컥벌컥 흡입. 맥주는 역시 독일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웨이터 아저씨 보란듯이 1,000cc 한 잔을 더 주문했다. 갖 구운 프레즐까지 주문해서 엄마와 기분좋게 마시고 호프브로이를 나섰다.








#3. 할 말이 없을 때 - 고래군 


 "무슨 말이든 해보세요."

 또는,

 "입이 있다면, 변명이라도 해보세요." 


정말 딱히 할 말이 없을 때가 있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말을 굳이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거나, 아무튼 이유야 어쨌든 그럴 때가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기분이나 상태일 때 상대방은 유독 무엇이든 말을 하라고 종용하기 마련이다.

 

 요즘 사람들은 아무래도 침묵으로 대화하는 법을 잊고 살아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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