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을 좋아하게 된 몇 가지 이유
"너 어디 가?"
"늘 가는 곳이지, 뭐."
"포르투갈?"
"응."
"포르투갈에 누가 있어?"
"아니. 아무도 없는데..."
"그럼 왜 그렇게 포르투갈에 가?"
"그냥. 좋아서..."
어느 날 친구와 나와의 대화이다.
포르투갈에 처음 갔을 때는 2008년 가을, 첫 유럽 여행이자 퇴사여행이었다. 계속 다녔더라면 안정적이고 돈도 좀 벌었을 그 회사에서,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던 것이다. 나의 적성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버렸겠다, 때마침 학자금대출도 다 갚았겠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홀가분하게 난 세상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었다.
포르투갈은 꼭 가야 하는 여행지는 아니었다. '아테네 인, 런던 아웃'만 결정해두고는 아테네-산토리니 배 안에서 급하게 일정을 짤 때까지만 해도, 그저 스페인에는 가봐야겠다고만 생각했지 포르투갈은 크게 안중에 없었다. 가게 되면 가고 아니면 말고 정도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바르셀로나부터 마드리드까지 같이 다니게 되었던 한국인 오빠가 포르투갈에 간다고 해서, '그럼 나도 가볼래.'라며 결정하고는 무작정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탑승하게 된 것, 그것이 내가 포르투갈과 처음 만난 계기였다.
처음으로 찾아갔던 포르투갈은 당시 내 기준에서는 스페인보다는 안전하고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언덕이 많아 걷기는 힘들어도 골목골목 누비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오히려 최적의 장소였다. 그리고 여행 막바지에 돌아다녀도 부담되지 않는 저렴한 물가까지. 덕분에 첫인상이 매우 좋았고, 그 뒤로도 몇 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포르투갈은 유럽여행을 가게 되면 일정에서 거의 빼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며칠 머무는 정도였지, 이렇게 한 달+@ 살기를 몇 번이나 할 정도는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왜 처음 한 달 살기를 포르투갈에서 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많은 나라들 중에서 왜 하필 포르투갈이었을까?'
그런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포르투갈'이었는가를... 그리고 결코 대단한 이유는 아닌 몇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일단 포르투갈에 가게 되면 정말 편안한 느낌이 든다. 파리나 로마처럼 꼭 봐야 하는 엄청 유명한 랜드마크들이 있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의 여느 도시들처럼 휘황찬란한 화려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도시들에 비하면 다소 좀 촌스러울 수도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난 그 포르투갈의 풍경이 참 편안하다. 오래된 골목들이 주는 정감있는 분위기, 유명한 무언가를 꼭 봐야 한다는 부담감을 주지 않고 그저 내 발길 닿는대로 골목을 누비는 그런 점이 좋았던 것이다. 걷다가 지치면 동네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 파스텔 드 나타(에그타르트) 하나 사먹는 소소함이 있고, 그것도 지겨워지면 공원에 누워 햇살의 따스함을 느끼며 맥주를 마시는 즐거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포르투갈은 유럽연합에 속한 나라들 중에서도 물가가 저렴한 편에 속하는 나라이다. 그래서 돈이 조금 부족해도 괜찮았다. 물론 비싸고 유명한 레스토랑들도 있지만 일단 그곳에서 '사는' 여행을 한다면 슈퍼마켓이 가장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데, 포르투갈에서는 슈퍼마켓을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을 잔뜩 골라도 저렴했던 것이다. 게다가 먹거리들의 종류도 많아서 다양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이런 것도 있다. 여행을 가서 어떤 나라에 가면 거리에서 낯선 외국인에게도 몇 마디 말을 걸고 친화력 갑인 인싸들이 많은 나라들이 있는가 하면, 무뚝뚝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나라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겪어본 포르투갈 사람들은 적당히 친절했다. 과하지 않은 편안한 친절함이라고 할까? 무뚝뚝해보이는 사람들도 도움을 요청하면 기본적으로 잘 도와주었다. 예전에 세 번째쯤 포르투갈 리스본에 갔을 때였는데, 인적이 드문 골목 구석에 있는 아파트인데다가 호스트랑 연락이 되지 않아서 애를 먹고 있었다. 그래서 가까운 트램 정류장에 가서 도움을 청했는데, 할머니를 모시고 어딘가로 향하던 아저씨가 발벗고 도와주어 무사히 체크인을 할 수 있었던 기억도 있다. (우리 때문에 할머니는 정류장에 앉아 좀 오래 기다리셔야 했다;;)
지중해에 있는 나라답게 날씨가 굉장히 좋다는 점도 나에게는 매력적이다. 날씨의 영향을 꽤 많이 받는 나에게 지중해의 햇살과 따뜻한 기후는 머리를 식히고 휴식을 취하기에 제격이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며 맥주나 와인을 한 잔하는 기쁨도 포르투갈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또 직업상의 이유로 포르투갈의 아줄레주와 바닥 문양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보기 위해 포르투갈을 찾아간다는 이유도 있다. 포르투갈에 가면 골목을 다닐때마다 타일들을 사진으로 남기느라 정신이 없다. 전통적인 푸른 타일을 비롯해서 서로 비슷한 듯하면서도 모두 제각각 다른 타일들을 볼 때마다 제작방법을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컬러 조합을 참고하기도 한다. 특히 포르투는 도시브랜드 디자인이 매우 유명한데, 덕분에 이번에 포르투에서 한 달을 머무는 동안에는 눈에 보이는 도시브랜드 디자인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일단 디자인도 잘 되어 있지만 그 디자인을 일관성 있게 도시 곳곳에 사용한 것들을 보면서 부럽기도 했고 나도 언젠간 이런 브랜드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포르투갈을 좋아하게 된 것이, 내가 운좋게 좋은 시기에 좋은 포르투갈 사람들만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내 후배는 여행 첫 날 리스본 28번 트램에서 꽤 많은 현금을 소매치기 당했고, 그 충격으로 그 때의 기억이 거의 없다고 했다;;; 나에게는 이탈리아가 그랬다. 그 곳에서는 좋지 않은 경험과 기억들만 있어서 최악의 나라가 된 것처럼, 포르투갈은 나에게는 그 반대일 테지. 어딜 가나 좋은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고 늘 좋은 일만 일어날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아직까지 난 행운인 편이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포르투갈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