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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ul 03. 2023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널리 쉽게 그게 문학 아이가?!

 2023년 6월 29일부터 7월 9일까지 대학로 한성아트홀 1관에서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극단 수수파보리/ 정안나 연출)가 상연 중이다. 해방 전이었던 1930년대부터 해방 직후까지 신문연재소설로 큰 인기를 얻었던 소설가 김말봉의 세 작품, <고행>과 <찔레꽃>, <화려한 지옥>을 무대화한 연극이다.     


 이 작품은 2021년 낭독극 시리즈 ‘망우열전’에서 처음 선을 보인 것으로, 다음해인 2022년에는 ‘산울림 고전극장’ 프로그램을 통해 산울림 소극장에서 초연했다. 올해 공연이 무대로서는 두 번째 공연이다.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는 부산 출신의 소설가 김말봉(1901~1961)을 한국의 대중소설 장르를 개척한 인물로 소개한다. 무대에서 재현되는 “순수 귀신을 버리라”는 대성일갈(大聲一喝)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말봉은 문학이란 무엇보다도 일단 사람들에게 두루 읽혀야만 그 존재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당대의 스타작가로서 큰 명성을 얻었던 김말봉은 1940년을 전후하여 일제 당국이 시행한 조선어 사용금지 정책에 대항하여 일시적으로 절필(絶筆)했다가, 해방이 되고 나서야 다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따라서 독자 또는 관객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70~90여 년 전의 작품들을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를 통해 다시 접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무대 위에서 소설 속 등장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매우 독특하다. 성조와 장단음, 종결어미 등은 1930~50년대의 한국어 느낌을 잘 살리면서도, 사용하는 어휘는 현대 한국어의 그것을 채택한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 또는 관객들은 무대 너머 공간이 소설 속인 동시에 과거의 현실이라는 극적 환상에 쉽게 몰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여기에는 아마도 드라마투르그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해본다.     


순수 귀신의 정체     


 ‘통속(通俗)성’이란 세상에 널리 통하는 성질이나, 너무 어렵지 않아 대다수가 알기 쉬운 성질을 뜻한다. 그리고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가 보여주는 바에 의하면, 김말봉이 한국 근현대문학사와 소설사에서 그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는 김말봉이 여성이기 때문이며 그의 작품이 학자와 평론가들로부터 통속적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조선 문단에서 커다란 축을 담당했던, 일명 ‘카프’라고도 불렸던 ‘조선프롤레타리아작가동맹’을 이끌었던 문학평론가 임화는, 문학이 민중해방의 숭고한 이데올로기를 실현하기 위한 문화적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는 카프의 경향문학에 반대하여 결성된 ‘구인회’ 등과 같이, 문학은 오로지 문학적 아름다움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순수 문학’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러한 구도는 이후 1960년대 이른바 문학의 정의와 역할에 관해 발생했던 ‘순수-참여 논쟁’을 통해 2023년의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임화가 주도한 카프 문학의 도구적 리얼리즘 작품은 그 대상이 되는 당대의 현실에 대하여 일종의 직유(simile)적 텍스트로 볼 수 있다. 대상(현실)과 작품(관념) 사이에 직접적이고 객관적인 관계가 설정되기 때문이다.     


 반면 그 반대항에 놓여있던 이른바 ‘순수문학’은 은유(metaphor)에 가깝다. 대상(현실)과 작품(관념) 사이의 관계가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점에서, 양쪽이 서로 일정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말봉의 통속소설은 바로 그 직유와 은유 사이에 놓여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환유( metonymia)에 더 가깝기도 하다. 대상(현실)에 거주하는 대중들과 맞닿아있는 소재로서의 어떤 한 단면을 가지고, ‘주체적 신여성’이나 ‘공창제 폐지의 당위성’처럼 조금 떨어져있는 것처럼 보이는 관념들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김말봉의 작품들이 당대의 어떤 문학에도 속하지 못했던 것처럼, 지금 시대에도 ‘참여문학-순수문학’이라는 ‘본격문학’ 담론의 바깥에 ‘장르문학’ 또는 ‘대중문학’이라 불리는 아웃사이더 문학이 존재한다. 전자는 신춘문예와 문예지를 통한 등단(登壇)을 조건으로 하는 ‘문단(文壇) 제도’가 지탱하는 영역이다. 그리고 패권을 가진 본격문학 담론에 의하여, 그에 해당하지 않는 나머지 텍스트들은 일괄적으로 ‘장르 문학/ 대중문학’으로 분류되어 경계 바깥으로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말봉이 말하는 ‘순수 귀신’은 경향문학과 순수문학 모두를 묶어서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학이 뭔가 난해한 ‘순수성’을 추구할 필요도,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혁명’을 추구할 필요도 없이, 그저 지금 그것을 읽고 있는 사람과 그의 삶에 먼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김말봉의 생각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통속(通俗)성’이란 세상에 널리 통하는 성질이나, 너무 어렵지 않아 대다수가 알기 쉬운 성질을 뜻한다.     


 따라서 문학이 통속적이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문학이란 단지 쓰고 싶어서 생산된 것이 전부가 아니라 또한 읽혀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숭고하고 정묘한 관념을 담고 있는 문학작품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전달되기 위해서는 일단 먼저 사람들에게 읽혀야만 한다. 매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기억되지 못한다면, 읽히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다. 약한 자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뭉치는 수밖에 없다든가, 세상은 한꺼번에 바뀌지 않고 아주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서 천천히 변해가는 법이라는, 무대 위에서 ‘김말봉(이한희 분)’이 담담하면서도 힘 있게 내뱉는 독백들이 대중들에게 널리 전달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잘 읽혀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학이 통속적이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전하고자 하는 바를 쉬운 말로 널리 퍼트리기 위해서이다. 물론 언어로는 좀처럼 포착할 수 없는, 하지만 분명히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뭔가를 보여주고 표현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세상과 사회가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난해한 문학 작품도 분명 존재해야만 한다. 또한 그러한 작품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독자 또는 관객 스스로의 지평을 넓혀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야만 삶과 세상 사이의 관계에 대해 더욱 깊게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이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때로는 가볍게 읽고 즐겁게 보는 와중에 웃거나 화내거나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쌓여있던 억압과 감정의 찌꺼기들을 활활 불태워버릴 수 있게 하는 그런 문학과 예술도 세상에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뭉쳐라 움직여라 세상이 바뀌리라’는 외침이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와 닿는 이유는, 그것이 통속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담과 변사, 오래 된 연극적인 것의 새로움     


 개인적으로는 연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무대와 객석 사이를 왕래하는 두 해설자를 배치한 것이었다. ‘해설자1(김하진 분)’과 ‘해설자2(김정환 분)’는 소설의 서술자(나레이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무대 위에 나타나는 소설에 관한 연극적 행위들을 일종의 ‘디에게시스(diegesis)’로서의 ‘미메시스(mimesis)’로 배치하게 된다. 무대 위에 나타나는 드라마는 연극인 동시에 해설자가 말하는 것(내러티브)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으로 채택된 것이 바로 ‘만담’과 ‘변사’라는 것이다. ‘만담(漫談)’은 세상을 풍자하는 내용을 재미있고 웃긴 이야기로 청중에게 전달하는 공연 형식을 뜻한다. 그리고 ‘변사(辯士)’는 연극과 현대영화 사이에 놓여있는 ‘무성영화’가 상연되는 동안 스크린에 나타나는 이미지에 대해 설명하고 묘사하는 해설자를 가리킨다. 두 명의 해설자는 재미있는 내용과 표현과 표정과 행동을 통해 서로 대화를 한다. 이를 통해 연극적 이미지로 구축하기에는 너무나도 방대한 내용이 압축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독자 또는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만담’은 이제 한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고전적인 코미디 장르가 되었고, ‘변사’는 무성영화가 사라지면서 함께 자취를 감춰버린 오래된 것이다. 그런데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는 매우 오래된 두 개의 장치를, 유용하면서도 새로운 어떤 것으로 지금 시대에 부활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첫 번째로 공연했던 ‘산울림극장’은 ‘반도형 무대’라고도 부르는 ‘돌출 무대(thrust stage)’ 구조의 공연장이고, 이번에 공연하는 ‘한성아트홀’ 1관은 ‘프로시니엄(proscenium)’ 구조의 극장이다. 이번 공연에서 두 해설자의 동선이 무대와 객석 사이를 끊임없이 가로지르는 형태인데, 그렇다면 저번 공연에서는 그 캐릭터들이 어떻게 움직였을지도 궁금해진다. 만약 다음 공연이 또 마련되어 다른 극장에서 상연된다면, 그 때에는 더욱 새로운 뭔가가 나타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 ‘프로시니엄 무대’란 관객석보다 높이 올라간 무대와 객석 사이에 액자 형태의 구조물인 ‘프로시니엄 아치’가 있는 무대 형태를 의미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무대공간에 원근법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으며, ‘액자 무대(picture-frame stage)’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객석과 무대 사이에 놓인 ‘프로시니엄 아치’를 통해 무대를 들여다  보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영화관에서 전방에 걸린 액자 형태의 스크린을 객석에 앉아 관람하는 구조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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