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주체와 여기의 사회에 대응하는 연극성
극단 고래가 <굴뚝을 기다리며>의 상연을 시작했다. 2023년 5월 25일부터 6월 11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이 글을 읽기에 앞서 2021년 초연에 대한 다음 리뷰를 참조해주길 바란다.
https://brunch.co.kr/@minigorae/416
일단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 이 시대에, 지금의 주체들에게, 노동이란 무엇인가’를 독자 또는 관객들과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와 ‘지금의 주체들’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2023년에 다시 무대 위에 올려진 <굴뚝을 기다리며>는 초연과 비교해볼 때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다. 이 글은 그러한 변화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다채로운 무대장치의 활용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비가 내리는 날씨, 저녁노을, 눈을 통해 나타나는 계절성, 무대에 재현된 굴뚝 말고도 수많은 다른 굴뚝들이 도처에 존재함을 보여주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프로젝터 영상을 통해 표현한다. 그 순간 무대와 배우의 신체는 이미지를 표현해내는 일종의 캔버스 또는 스크린이 된다. 그리고 움직이는 빛과 움직이는 배우의 신체 사이의 앙상블은 극장 전체에 운동성을 부여한다.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변화는 ‘청소’와 ‘미소’, 그리고 ‘이소’의 춤이다. 그들은 무대에서 퇴장하기 직전이 되면 하나같이 흥겨운 삼바 리듬에 맞춰 숨을 참고 격렬한 춤을 선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독자 또는 관객들이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바로 그들의 ‘그림자’이다. 그들의 춤은 역동적이며 다소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들의 신체에서 비롯된 그림자의 형태는 대조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하다. ‘청소’의 그림자는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처럼 보이고, ‘미소’의 춤은 사회적 약자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폭력의 몸짓으로 보이며, ‘이소’의 그림자는 배경을 가득 채운 사이버-스페이스가 발하는 빛들 사이로 스며들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눈여겨봐야 할 변화는 ‘이소’의 변모 양상이다. 초연 당시 ‘이소’는 분노로 가득 찬 청년-여성 노동자에 대한 은유적 캐릭터였다. 이름부터가 최저시급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자들이 일하고, 또 다양한 생활용품들을 찾기도 하는 ‘다이소’로부터 구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2023년의 ‘이소’는 ‘갓소(갔소)’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노동자로 나타났다. 유튜브나 트위치 같은 매체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출현했지만, 거기에 종사하는 이들은 아직까지도 노동자로서 좀처럼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당대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기분이 좋다. 무대에 나타나는 다양한 기표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그리고 이 공연을 통해 구성된 극장성에 어떤 가치들이 내포되어 있는가를 고민하고 사색하게 만드는 연극을 보고 나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그리고/ 또는/ 그러나 (And/ Or/ However),
기분이 우울해진다. 이 연극이 지칭하는 ‘굴뚝’이 ‘고도’로부터 왔다는 점에서, 그것이 희망이 되었든 욕망이 되었든 어쨌든 간에, 도래-중이기 때문에 결코 도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울함과 절망의 정동이 무대 아래 깊은 곳에 묻혀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한국 사회는 ‘노동’이라는 언어를 ‘근로’로 대체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에 대응하는 노동운동의 형태도 여전히 70~80년대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중에 다시 등장하게 될 ‘이소’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무대 위에 출현할 것인가를 상상해보는 것은, 즐거운 일인 동시에 우울한 일인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