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고래 May 24. 2023

영화 <룸 런더링>

<마음세탁소>, 삶과 죽음이 중층 교차하는 ‘룸’의 공간성

 잘생긴 얼굴에 어딘지 모르게 퇴폐적인 눈빛, 항상 뭔가 불만이라도 있는 듯 삐딱한 자세에 다소 우울하고도 염세적인 표정. 일본의 배우 ‘오다기리 죠’가 보여주는 이미지가 그러하다. 그는 언제나 서사의 중심에 위치하기보다는 시야의 주변에서 깜빡거리듯 출몰했다가 사라지곤 한다. 2018년에 개봉한 영화 <룸 런더링>(원제: ルームロンダリング; 루므 론다링그)에서 그가 연기한 ‘이카즈키 고로’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는 이전에 거주하던 임차인이 사망한 부동산에 대해서는 다음 세입자에게 반드시 그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있는데, 이른바 ‘사고물건(事故物件; 지코붓켄)’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집의 경우 임대료를 매우 싸게 책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고로’는 자신의 조카 ‘야쿠모 미코(이케다 엘라이자 분)’를 그 집에 세입자로 들여보내고 집주인에게 수수료를 받는 일을 한다. 즉 본래 살다가 사망한 세입자와 새로운 세입자 사이에 ‘미코’가 잠시 들어가 살다가 나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전 세입자에게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고지해야 할 법적인 의무’를 교묘하게 회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로’는 국가의 법적 경제적 질서를 교란하는 범죄자 아닌 범죄자인 셈이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돈을 문제없는 돈으로 바꾸는 것을 ‘돈 세탁’이라고 한다면, 문제가 있는 방을 문제없는 방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방 세탁’, ‘룸 런더링’인 것이다.   

  

 제목에서   있는 것처럼  영화에서는 ‘이라고 부르는 단칸방이 굉장히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영화에서 말하는 ‘(Room)’, 한국으로 치면 ‘원룸이라고도 부르는 ‘단칸방 의미한다. 그리고  단칸방의 공간성은, 가난한 청년이나 가난한 노인이 홀로 거주하는 주거형태라는 성격에서 도출되는, ‘가난 ‘혼자만의 공간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가난한 자의 일상성을 구성하는 그것은 하층도시노동자(프레카리아트) 고단한 현실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휴식과 평안을 얻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도 하다. 동시에 하나의 건물 안에 수없이 빽빽하게 채워진 형태의 그것은, 도쿄 또는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 공간에서 지금도 빽빽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대부분의 개인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 가운데 놓고 집주인을 통해 나타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 논리와, 참혹한 살인사건의 피해자라는 주체의 실존성이 대립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방에는 어떤 사람의 삶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죽음까지도 놓여 있다. 그러나 집주인은 그의 주체성이나 역사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마치 여러분의 회사가 여러분의 개인사에는 관심이 없고 최소한의 임금으로 최대한의 노동력을 얻어내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집주인은 그저 다음 세입자에게 최소한의 주거 공간을 제공하고 최대한 높은 수익을 얻어내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영화를 <마음세탁소>라는 해괴한 제목으로 번역해버렸다. 도대체 누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만행을 저지른 것인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글에서는 영어를 일본어로 표기한 원제에 대하여, 본래의 영어 표기를 한국외래어표기법으로 옮긴 < 런더링>으로  영화를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감독인 카타기리 겐지(片桐 健滋)는 뮤직비디오나 이벤트 영상 등을 제작하다가, 이 작품을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1979년생의 이 젊은 감독은 사실 일본 내에서는 영화보다는 TV드라마 연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그가 연출한 TV드라마 작품들은 마치 8㎜ 카메라로 찍은 듯한 빈티지한 이미지 질감이 특징적이며, 대중식당이나 선술집과 같은 서민적 공간에 대해 따뜻하고 편안한 감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빈티지한 이미지와 서민적 삶의 공간에 대한 따뜻한 응시라는 카타기리 겐지 감독 특유의 이미지는 그의 영화 데뷔작인 <룸 런더링>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영화는 모두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즉 이 영화에는 누군가가 밥을 먹고 씻고 옷을 갈아입고 잠을 자고 다시 일하러 나갔다가 들어왔던 세 개의 방이 등장하고, 세 번의 살해와 세 번의 죽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카타기리 감독이 이 점을 선명하게 만들고 싶었던 모양인지, 각각의 에피소드는 참혹한 살인의 순간을 카메라가 무겁고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퀀스로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이어지는 에피소드의 나머지 플롯들은 한결같이 가볍고 경쾌한 편이다. 심지어 미코가 들어가서 만나는 이미 죽은 전 세입자의 영혼들은 모두 죽음 당시의 훼손된 신체를 가진 상태이지만, 이마저도 결코 끔찍하거나 잔인하지 않고 가벼운 유머의 소재로 활용될 뿐이다.     


 전 세입자의 이야기, 즉 그들의 삶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완결되어버렸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유령을 볼 수 있고 유령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로와 미코를 통해 죽음을 초월하여 영화가 된다. 미코가 들어가 사는 ‘룸’은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방이다. 그리고 미코는 그 방에서 죽은 자의 유령을 볼 수 있으며, 유령과 대화를 할 수 있다. 죽은 자의 ‘룸’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공간성은 타자에 의해 강제로 종결되었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그리고 이 점에서 미코는 그 공간의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라는 측면에서 영화 속 ‘룸’의 공간성은, 미코를 통해 산 자의 이미지와 죽은 자의 이미지가 겹친 형태라는 성격을 가진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기도 한 ‘룸 런더링’은 중첩된 의미를 가지게 된다. 표면적(denotation)으로 그것은 ‘살인사건=룸의 역사’이라는 기록을 세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심층적(conotation)으로는 ‘룸’이라는 공간의 주체였던 죽은 자의 원한과 미련을 해소하고 위령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세탁’이라는 것은 ‘삭제’를 뜻하기보다는 오히려 ‘다시 쓰기’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누군가가 살해되었다.’에서 마침표를 찍고 기록이 끝난 문장을, ‘그 주체는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죽었으며, 그/녀가 죽은 이후에도 그/녀에 대한 기억과 그/녀가 남긴 유산은 여전히 지금-여기에 어떻게 존재하는가’로서 영화적 언어로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사진출처 :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23030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영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