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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Sep 11. 2023

동네축제를 찾아가다!

2023 쌍리단길 별빛축제

  

 2023년 9월 9일 도봉구 쌍문역 근처에 있는 한 상점가에서 작은 축제가 열렸다. 일명 ‘쌍리단길’이라고 이름 붙인 상점가에서, <쌍리단길 별빛축제>라는 이름으로 야외 음악 공연과 마술 공연, 이벤트를 통한 할인쿠폰 지급, 플리마켓 등의 소소하지만 다채로운 행사들을 마련한 것이다.   


                    

 ‘쌍리단길’은 쌍문역 2번 출구에서 큰길 안쪽으로 들어서면 나오는 주택가 사이의 골목길을 말한다. 이름만 봐서는 전국에 수많은 ‘X리단길’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시절에 발생한 상점가로 보인다.


 이 길은 무엇보다도 주로 아담한 2층 남짓한 건물들이 늘어선 주택가 골목길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그 말은 4~5층이 넘어가는 빌딩이 종류도 일관성 없는 수많은 상점들로 가득 채워져서는 온갖 외부 간판들로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색깔로 물들어버린 그런 풍경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시각적 스트레스를, 여기에서는 보거나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신 이곳에서는 작은 길을 따라서 1층에 자리를 잡고 있는 작은 상점들이 골목길의 풍경을 구성한다. 그래서 사람이 살고 있음으로부터 점점 짙게 배어가는 향기를 맡으면서 길을 걷는 사람들이 편안함이나 아늑함과 같은 정동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쌍리단길 별빛축제>는 올해 처음으로 시작하는 축제라고 한다. 축제 현장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소리에도 더 유심히 귀를 기울여보게 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줄을 서 있던 한 시민이 동행자의 소소한 대화 도중에, “그래도 여기는 골목 활성화를 위한 의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서툴게나마 이런저런 소소한 이벤트를 준비하는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의지가,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밖에도 갓난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지나가는 어떤 젊은 부부는, “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이런 행사가 더 많아져야 해.”라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길 너머로 사라지면서 남긴 그 말은, 나에게 이웃나라 일본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외국인들에게야 ‘기온 마츠리’와 같은 큰 규모의 축제가 유명하겠지만, 실제로 현지인들에게는 한여름 마을 축제야말로 가장 축제다운 축제이다. 일본에서는 특히 ‘한여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풍경이 바로 이 ‘마을 축제’이기 때문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君の名は。)>(2016)에서 주인공 미츠하의 마을을 배경으로 한 동네 축제 시퀀스가, 그러한 일본인들의 내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풍경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보통 그 지역을 대표하는 신사를 중심으로 지역 상점가나 학교 등이 연계되어 축제가 마련된다. 애초에 ‘제사를 지내다(마츠루, 祭る)’라는 단어의 명사형이 ‘마츠리(祭り)’이기도 하다.     


 이런 지역 축제가 열리면 도시 중심에 있는 공원이나 신사 앞 공터, 교통을 임시로 통제하는 큰길 등에 간이 상점이 생긴다. 신위를 모신 가마를 메고 도시나 마을을 한 바퀴 맴도는 행사가 준비되고, 간이 무대에서 여러 가지 공연이 열리거나 춤 또는 노래 경연대회 같은 것도 기획된다. 이렇게 지역 축제가 열리는 날에는 볶음국수나 꼬치 등 다양한 즉석 음식 냄새가 거리나 공원을 가득 채운게 된다. 마을에 있는 검도관이나 가라데 무도관 등에서는 대련이나 시연, 아니면 토너먼트 대회 같은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그 지역의 고등학교에 있는 여러 동아리들, 가령 화도(카도, 華道)나 이케바나(生け花)라고도 부르는 꽃꽂이부에서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직접 시민들이 꽃꽂이를 체험하는 행사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역 축제’는 그 지역의 정체성(아이덴티티)이 무엇인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아쉽게도 <쌍리단길 별빛축제>에서는 이 동네만의 무엇인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마련된 행사들도 여타 다른 소규모 지역축제들과 별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X리단길’이라는 명칭이나 ‘별빛축제’라는 명칭부터가 이미 전국에 여러 개 난립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제 비로소 처음으로 만들고 시작하는 축제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갓 생긴 마을 축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그래서 그 역사가 점점 더 두꺼워질수록 이 축제도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가족 모두가 축제를 찾아온 사람들의 얼굴에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던 행복한 표정은, 이번 축제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쌍리단길 별빛축제>가 이듬해에도 계속 열리기를 바라게 된다. 동네 상인들과 동네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는, 그 동네를 ‘우리 동네’로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 축제가 도봉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여름 풍경의 한 장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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