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한 남성성과 거친 남성성의 이중적 서사
<쩨쩨한 로맨스>로 충무로에 새롭게 등장한 젊은 감독 김정훈이 이번에는 코미디 범죄 스릴러로 극장가를 찾았다. 이제는 멋있는 척 폼잡기를 그만 두며 연기력을 다져나가기 시작한 배우 권상우와 믿고 찾을 수 있는 중견배우 성동일이 함께 주연을 맡은 <탐정: 더 비기닝>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 또는 독자라면 대부분 무엇보다도 우선 영화 제목의 형태에 주목했을 것이다. <탐정: @> 시리즈라는 미래의 작품들의 등장까지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로서는 오랜만에 만나는 스릴러 장르라는 점과 더불어 시리즈 후속편을 예고할 정도라면 작품에 대해 제법 자신만만한 것 같아 한층 기대를 높인다.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정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플롯 자체는 꽤나 고전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어떤 인물인가를 먼저 보여주고, 이윽고 범죄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진범을 잡아야 할 당위 내지는 숙명이 주인공들에게 부여된 다음 적절한 갈등과 함께 하나씩 단서를 찾아가며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콰쾅!’ 하면서 수수께끼는 풀리고, 갈등은 해소된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는 다른 방법도 있다. 우선 인물들을 성격 내지는 성향의 공통점을 중심으로 묶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런저런 이유로 살해당하는 여성
2. 그들을 살해하는 거친 남성
3. 그리고 [아내-여성]에게 구박받는 말랑한 남성- 우리의 두 주인공
흥미로운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성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그 거친 [남성-살인자]의 폭력을 종식시키는 것이 [아내-여성]으로부터 구박받는 우리의 두 주인공인 강대만(권상우 분)과 노형사(성동일 분)이라는 남성들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 작품이 거친 남성성, 즉 자신의 질서를 위반한 여성성을 죽음으로 징벌하는 폭력적인 남성성과 그 거친 남성성을 종결시키는 말랑한 남성성을 발견할 수 있다. 말랑한 남성성은 기존의 남성성에게 억압받는 여성성에게 오히려 억압받는 위치에 있다.
이렇게 분류하여 살펴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이 영화의 제목이 왜 ‘형사’가 아닌 '탐정'이 되었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강대만(권상우)이 경찰이 될 수 없었던 것, 그리고 노형사(성동일 분)가 경찰이라는 국가조직의 테두리 바깥으로 나와야만 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지키는 억압적 국가기구라는
거친 남성성의 은유를 거부한 그들.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지키는 ‘억압적 국가기구’로 경찰과 교도소 등을 지목한다. 이 영화에서 거친 남성성을 범죄자 또는 범법자로 호명하는 ‘경찰조직’이라는 국가 기관 역시 마찬가지로 폭력과 권위를 작동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거친 남성성의 테두리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것이 거친 남성성을 해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우리의 두 주인공은 진실을 찾기 위해 ‘형사’가 아닌 ‘탐정’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말랑한 남성들에 의해 범죄가 해결되는 플롯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거친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기존의 가부장 질서를 거부하는 제스쳐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플롯의 그러한 구조와는 별개로 이 영화의 이면에는 억압받는 남성들의 거친 폭력성에 대한 억압된 욕망을 분출시키는 데 더 관심이 있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아마도 <탐정: 비기닝>의 이러한 괴리감 내지는 이중성이야말로 이 작품이 가지는 진정한 의의일 것이다.
우리는 갓난아이를 돌보는 강대만의 모습이 당당하고 멋지기보다는 추레하고 형편없는 몰골로 그려지고, 설거지를 하는 노형사의 모습이 보잘것없는 이미지로 제시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사실상 권위를 잃은 가부장은 보잘 것 없다는 이데올로기를 충실하게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폭력적인 힘을 되찾은 남성성의 속 시원한(?) 징벌이라는 일련의 이미지 모음으로 이 영화를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마치 포르노처럼 현대의 몰락한 가부장적 남성성이 과거를 향수하며 상실한 남성성을 되찾는 환상, 즉 거세된 남성이 자위할 때 필요한 영상물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거친 남성성의 해체를 시도하는 동시에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는 이러한 이중성이야말로 <탐정: 더 비기닝>이 가지는 변별점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이 작품이 속편을 암시하는 시리즈물 형식의 제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애초에 억압적 국가기관인 경찰 조직으로부터 이탈한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사실 이제 시작에 불과하고, 따라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따라 이 영화의 이중적 서사는 얼마든지 새로운 의미로 변화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타이틀 사진 출처 : 서울신문TV http://stv.seoul.co.kr/news/newsView.php?id=2015080650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