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이탈리아 ::: 밀라노
#1. 에필로그 - 미니양
바젤에서 밀라노를 거쳐 베니스로 돌아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엄마와 나와의 유럽여행 마지막 일정이었다. 한 달 넘게 무사히, 아니 여행 인생에서 늘 무사했던 나에게 결국 일이 닥쳤다. 밀라노 기차역에서 노트북, 카메라가 들어있던 보조 가방을 소매치기 당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눈 앞에서 가져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와버렸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다른 가방들을 지키느라 그 가방을 가지고 뛰어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했다. 지금 생각해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 장면이 내게 일어난 엄청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여행을 하루 남겨둔 상황에서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 속상하기도 하고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생각해보면, 이탈리아는 나에게 좋은 기억을 준 적이 거의 없다.
기차에서의 말도 안되는 50유로 벌금사건, 이탈리아인의 잘못된 대답으로 비오는 밤, 산길에서 헤매야 했던 일, 갑자기 쏟아진 잠깐의 비로 배낭 속까지 다 젖어야했던 일, 거기다 이번 밀라노 도난사건까지... 지금껏 여행에서 힘들었던 일은 전부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다. 이번 밀라노 도난사건을 겪은 후 이제 다시 내 돈을 들여 이탈리아는 가지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누군가 나에게 여행했던 나라 중 최고의 나라가 어디냐고 물어보면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최악의 나라를 물어본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탈리아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한 가지 밀라노 사건을 통해 생각한 것은, 여행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서 해이해진 내 마음을 다시 다잡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운전면허증을 따서 무사고로 몇 년을 운전하다 마음을 놓는 시기가 되면 꼭 한 번씩 사고가 난다고 하는 그런 것과 일맥상통하려나? 어쨌든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꽤나 오랜 시간을 시달렸지만 그 일을 통해서 내가 조금은 성장했고, 그 후에 갔던 남미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번에도 한 달 넘는 기간동안 보채지(?) 않고, 힘이 되어준 고래군에게 감사한다.
#2. 에필로그 - 고래군
잠을 자다, 귓가에 둔 전화기가 보이스톡 소리를 내며 나를 깨운다. 그녀다.
"여보세요..."
"오빠~"
울먹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잠이 한 순간에 달아나버렸다. 무슨 사고라도 난 것일까? 어디 다치거나 한 것은 아니겠지? 설마 납치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어머님이 어디 안 좋으신가?
"왜 그래! 왜 그래요! 괜찮아?"
내 질문에도 그녀는 그저 울기만 할 뿐이다.
"무슨 일인데~ 괜찮아요? 어딘데?"
"여기 베니스인데~ 밀라노에서 나 도둑맞았어~"
"당신은?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응. 그런데 노트북이랑 카메라랑 든 가방을 도둑맞았어~"
아아. 다행이다. 그녀는 무사하구나. 정말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난 또 뭐라고. 여권이랑 돈은?"
"여권은 있어. 돈도 다 있고."
"괜찮아 괜찮아. 여권만 있으면 되지. 괜찮아 괜찮아."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녀가 한없이 놀라고 공포스러웠을 그 순간은 내가 살면서 느낀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한 안도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무사히 돌아와주기만 하면 되니까, 걱정마요. 그럴 수도 있지 뭐.
에이 뭐 중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