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리와 몸짓, ‘시대를 초월하는 소통’의 가능성
2024년 7월 6일(토) 김희수아트센터에서 창작연희단체 ‘광대생각’의 공연 <연희판타지아>가 무대에 올랐다. 김희수아트센터는 전시장과 소규모 공연이 가능한 극장 공간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김희수아트센터를 운영하는 수림문화재단에서는 2024년에 두 가지 공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나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 중인 예술가를 발굴하는 ‘수림뉴웨이브’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단체들의 창작 공연을 선보이는 ‘공동기획 NUDGE(넛지)’라는 프로젝트이다. <연희판타지아>는 넛지 프로젝트의 첫 번째 공연이었다.
일단 공연의 제목인 ‘연희판타지아’는 아마도 ‘연희판’과 ‘판타지아’를 결합한 조어(造語)로 보인다. 무대의 첫인상은 어린이 관객을 주 관객층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아마도 “우리 전통연희를 누구나 쉽고 즐겁게 만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광대들”이라는 ‘광대생각’의 정체성이 반영되어있기 때문으로 보였다.
무대는 비언어적 종합극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사운드는 한국전통타악기라고도 부르는 사물놀이(꽹과리, 장구, 북, 징)를 근간으로 했으며, 퍼포먼스는 탈춤을 베이스로 한 것처럼 보였다. 그밖에도 사자탈놀이와 인형극(꼭두각시놀음), 버나놀이(접시돌리기), 공죽기예, 질굿(길굿)과 설장구, 난타공연 등을 차용한 요소들도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요컨대 ‘연희(演戲)’라는 한 단어에 집약 가능한 한국전통공연 요소들을 정말이지 다양하게 끌어다 놓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핑크고릴라’ 캐릭터의 대사였다. 온몸에 핑크색 털을 두르고 가면을 쓴 ‘핑크고릴라’는, 무대에 처음 등장하면서부터 사건의 중심에 위치하는 중심 캐릭터이며, 동시에 관객들과 소통하고 극을 이끌어가는 해설자(Narrator) 역할도 수행한다. 그런데 그가 가지고 있는 대사는 오직 “구”와 “따”의 조합으로만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구구따따, 구따구따, 구구따구”와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이는 한국 전통음악장르에서 보통 구음(口音)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구음 즉 ‘입소리’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보통 장구를 기준으로 궁편과 열편 양쪽 소리를 각각 구분한 다음 휘모리나 자진모리 등의 장단을 타인에게 전수할 때 악기를 연주해기에 앞서 입으로 먼저 소리를 내는 것을 반복시킴으로써 연주법을 익혀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무대 위에 나타나는 악기들이 내는 소리는 모두 자연의 소리를 표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비와 물고기, 거북이, 거미 등 자연적 존재들의 행위와 욕망이 악기 소리를 매개체로 삼아 무대 위에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음(입소리)’이라는 매개체를 경유하고 있는 ‘핑크고릴라’의 대사들은, 비언어적 소리인 ‘악기 소리’로 표상되는 자연적 소리에 대한 언어적 변형-생성을 거친 결과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다시 되돌아가보면 그의 언어는 철저하게 몸짓(신체언어)과 자연적 소리에 기반을 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공연은 ‘핑크고릴라’를 비롯한 다양한 극적 요소(극적 효과)들에 대하여, 관객들이 그것을 이해하는 순간을 경험하고 나아가 무대 위 캐릭터들과 함께 소통하는 순간까지도 체험하게끔 만든다. 의사소통의 핵심과 상호 이해의 핵심은 언어가 아니라 열린 마음에 있다는 메시지가 이번 공연 <연희판타지아>에 내포되어있음을 비로소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비언어적 언어인 “구구따구”를 이번 공연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 이번 공연에서 개인적으로는 아쉽다고 느꼈던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일단 열두발 상모는 처음에 접혀있던 줄을 던지면서 활짝 뻗어가는 맛이 일품인데, 줄이 꼬이는 바람에 이번 공연에서는 그 장관을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꼭두각시놀음의 경우 무대 위에 마련된 인형극무대가 관객석에서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었다. 이 때문에 알에서 사자가 탄생하고 핑크고릴라를 비롯한 관객 모두를 만나고 소통하게 되었다는 서사가 가지고 있는, ‘생성-관계맺기’라는 중요한 극적 요소가 다소 손상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이러한 아쉬운 점들은 모두 연희장소가 너른 마당이 아닌 공간적 제한을 가진 무대(Stage)였기 때문에 나타났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감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은 한국전통공연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관객석에는 대체로 부모를 비롯한 일가족과 함께 공연장을 찾아온 어린 관객들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첫인상과는 다르게, 공연에 대한 반응은 어린이층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부모와 및 조부모 연령층에서도 폭넓게 나타났다. 특히 외국인 여행자로 보이는 한 쌍의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웃는 모습은, 이 공연이 전혀 다른 문화권(해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전달력과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2023년을 기점으로 하여 공연시장 매출이 영화산업 매출을 앞지르게 되었다고 한다. 팬데믹이 종결되면서 현장에서 문화예술을 접하고자 하는 욕구가 분출된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아니면 한국의 영화-극장 산업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한 착시효과라는 분석도 가능할 것이다. 이유야 어떠하든 공연예술이 점차 활기를 더해가는 추세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연희판타지아>에서처럼 한국전통공연예술 분야에도 새로운 기회와 발전의 가능성이 더해지는 계기가 마련되고 또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수림문화재단 수림아트에디터 [숲-er]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