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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ul 16. 2024

전시 <작은빛>

수림문화재단 15주년 창립 기념 전시

            

 동대문구 홍릉로에 위치한 김희수아트센터(수림문화재단)에서 2024년 6월 8일부터 7월 27일까지 <재단 15주년 창립 기념 전시 '작은빛'>이라는 이름으로 전시가 열리고 있다.     


 표제인 ‘작은빛’은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존재가 더욱 선명해지는 빛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한국에서는 ‘계몽주의’로 번역되고 있는 ‘Lumières/ Enlightenment’를 다분히 연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아마도 재단 설립자가 교육·사업가 출신이라는 점을 표면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별다른 정보 없이 이 전시를 찾아왔다면, 반드시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에 팜플렛부터 찾아서 손에 들어야만 한다. 그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먼저 전시장으로 들어서는 입구가 비어 있는 게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여기는 보통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가 작품들을 선택하고 구조화(배치)한 의도 내지는 철학, 또는 추구하는 가치 등을 간결한 메시지를 통해 관객들에게 소개하기 위한 공간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 <작은빛>에서는 그 공간을 완전히 비워두었다.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비워둔 의도를 좀처럼 짐작하기가 어려워서 다소 당황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만약 어떤 의도를 내포하는 비움이라면, ‘일부러 비워뒀음. 그 이유는 당신이 직접 생각하기를 바라기 때문.’처럼 그 의도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도 전혀 없어 보인다. 뭐랄까, 그냥 채우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팜플렛을 미리 챙겨야 하는 첫 번째 이유가 이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작품별로 달려있기 마련인 작품설명(캡션)이 전혀 없다. 그래서 지금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이 작품이 누구의 어떤 작품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전시 팜플렛을 들여다 봐야 한다. 게다가 전시장이 꽤 어두운 편이라서 드문드문 빛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비로소 팜플렛의 작은 글씨를 읽는 것이 가능해진다.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에 팜플렛을 미리 챙겨야 하는 두 번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전시작은 다음과 같다. 지희킴 작가의 표현적인 회화들, 현우민 작가의 영상작품들과 포스터, 서성협 작가의 설치작품들, 서인혜 작가의 설치작품들과 영상작품, 그리고 설립자의 생애를 다룬 자전적 소설의 텍스트를 출력하는 듀얼모니터. 그러고 보니 서인혜의 영상작품도 재단 설립자의 삶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마치 재단 설립자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여타의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팜플렛을 자세히 읽어보니 이 전시 자체가 설립자인 ‘동교 김희수 선생’에 대한 추모의 일환으로 마련된 것이었다. 올해가 설립자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며, 때마침 재단의 창립도 15주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우민 작가의 작품들이, 한번 지나친 후 다시 보러 발길을 되돌렸을 정도로, 특히 관심을 끌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현우민의 <잔상여행>(2024)이 전시장의 한 구획을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다. 관객들은 멀리서부터 빛을 뿜어내는 이 작품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가 다시 떠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상영되는 내내(=동시에) 그 뒷쪽의 캄캄한 구석에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산소를 성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돌-아-가(to-la-ga)>(2010, HD, 13min 52sec.)라는 다른 작품이, 헤드폰 하나가 놓인 1인용 의자를 앞에 둔 작은 모니터를 통해서, 남몰래 상영되고 있었다. 만약 이러한 배치가 의도된 것이 맞다면, 이것은 작가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관객들에게 정말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잔상여행>의 이미지보다는 <돌-아-가>의 이미지 쪽이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들뢰즈 예술철학의 영향 때문인지 소리의 공간성, 빛의 이미지성, 지속을 통해 나타나는 운동성, 사건을 통한 서사성까지도 표현할 수 있는 영상 작품들이 꾸준히 제작되어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독립예술영화감독이자 영상예술가인 현우민 작가의 작품들도 마찬가지의 맥락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우민의 몇몇 작품에는 영상 속에서 지속되는 대립적인 시간성(작품 속 과거/ 작품 속 현재)이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는데, 이러한 특징은 다시 작품 바깥의 시간성(관객이 놓여있는 현재)과 관계를 맺는 구조(미학적 형식)를 끊임없이 생성해내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잔상여행>과 <돌-아-가> 두 작품들은 모두 그러한 구조를 통해 타자의 기억으로 형성되는 역사성과 카메라를 통해 재현(생성)되는 운동성을 스크린 안쪽에서 접합해내고 있는 셈이다. 나중에 또 현우민의 다른 작품들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 이 글은 수림문화재단 수림아트에디터 [숲-er]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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