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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Oct 23. 2015

겨울의 홋카이도, 프롤로그

2012. 일본 ::: 홋카이도


#1. 프롤로그 - 고래군


“오빠 이것 봐!”


모니터 앞에 앉아있던 그녀가 난데없이 나를 부른다.


“이거 봐 이거 봐! 진에어 홋카이도 노선 신설하면서 특가로 티켓 나왔어!”

“그래요? 음, 싸네?”

“응! 가자!”

“가자고?”

“응. 가자! 가자!”

“어? 응 뭐 그래. 언제인데?”

“겨울이다! 우리 이번 크리스마스는 일본에서 보내는 거야. 어때? 좋지! 그럼 나 티켓 끊는다?”

“어? 응. 어. 응 그래요.”


우리의 일본 여행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2. 겨울의 홋카이도에 도착하다! - 미니양


 초가을의 홋카이도에 다녀온 이후에 언젠가 눈 덮인 홋카이도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서 다들 겨울의 홋카이도 춥지 않겠냐는 걱정을 들었지만 그래도 꼭 한 번 눈 덮인 홋카이도를 보고 싶었다. 지도상으로 북한보다도 위쪽에 있었기에 추위에 단단히 대비해 짐을 쌌다. 하지만 아무런 정보도, 대비도 하지 못하고 거의 나에게 이끌려 삿포로행 비행기에 오른 고래군은 삿포로에 도착할 때까지 마냥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사실 고래군이나 나나 크리스마스나 기념일을 특별하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크리스마스에 도착한 삿포로는 묘하게 로맨틱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몇 번의 일본여행으로 인해 익숙하게 JR 티켓을 끊으러 가는 길, 고래군은 굳이 공항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워야한다고 했다. 


 “나 담배 하나 피면 안돼요?”

 “굳이 여기서 피워야겠어?”

 “응!”

 “좀 참고, 오타루 도착해서 피면 안돼?”

 “지금 필래! 내가 왔다고 영역표시 해야지.”

  “에휴. 얼른 갔다와.”


 영역표시라니... 나에게 담배피우는 것을 허락(?)받은 고래군은 신이 나서 공항 흡연실로 달려갔다. 고래군이 담배 피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의 기호이니까 담배를 끊으라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조금 적게 피우면 좋겠다는거지.


 니코틴을 몸 안에 가득 충전하고 나와 신난 고래군을 재촉해 오타루로 가는 JR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하는 첫 일본 여행은 시작되었다.


::: 흡연실 앞에서 기다리는 중 :::






#3. 하얗고 하얗다. - 고래군 


 “여기에서 삿포로까지 어떻게 가?”

 “JR 타고 가면 돼요. 그리고 우리 삿포로가 아니라 오타루로 갈 거거든? 여행 스케쥴 하나도 기억 안 하지? 내가 니 가이드냐?”

 “JR은 뭐야?”

 “열차. 일본 열차 이름이라고 보면 돼요.”

 “아하. 그럼 그거 타보자. 어디로 가야 하지?”

 “저기 표지판에 JR 표시 있네. 저기로 가면 되지 않을까?”

 “오오! 한글도 있다. 일본 대단한데? 한국이 대단한 건가?”

 “아무래도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져서 그런가보지 뭐.”


 나는 신 치토세(新 千歳) 공항에 미니양과 함께 방금 내린 참이다.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엿보기만 했던 일본을 이제부터 직접 만나는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세 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12월 크리스마스의 일본 북쪽은… 하얗다. 하얗고 또 하얗다. 그동안 설국(雪國)이라는 단어에 대해 ‘참 식상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지금 이 풍경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는 아무래도 그것뿐이겠구나 싶다.


 우리가 먼저 가려고 하는 곳은 오타루(小樽)이다. 영화 ‘러브레터’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정작 영화는 자국인 일본에서는 흥행에 실패해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이런 영화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고 한다.) 으음, 영화는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하얀 눈이 넓게 펼쳐진 느낌이었다. 오타루는 그런 곳일까?

 상념을 끊고 그녀의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저기서 티켓 끊는 건가봐요.”

 “티켓? 무슨 티켓?”

 “JR 타려면 티켓 끊어야죠. 여행에 집중 안 하지? 무슨 딴 생각 한 거야 도대체?”

 “아니, 딴 생각은 아니고 그냥. 오타루가 어떤 곳일까 상상해봤어.”

 “영화 생각하지 마요. 사람 사는 곳인데 설마 눈밭만 있겠어?”

 “어? 그런 이미지 떠올린 거 어떻게 알았어요?”

 “러브레터 때문에 여기에 와보지 않은 한국 사람들은 전부 홋카이도에 눈밭만 있다고 막연히 생각하더라고. 오빠도 마찬가지일 줄은 몰랐지만.”

 “그러게. 사람 사는 곳인데 왜 눈밭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나 바보인가봐.”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이니까 그렇지 뭐. 이제 가보면 되니 뭐. 오타루가… 이 버튼인가? 성인 두 명, 오타루. 맞겠지?”


 이런저런 버튼을 꾹꾹 누르는 그녀.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나의 시선도 함께 이동한다. 그녀와 나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정도는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간단한 대화 정도는 주고받을 수 있고, 나는 떠듬떠듬 한자를 읽을 수 있는 편이다. 뭐랄까, 덕분에 까막눈 벙어리 신세는 간신히 면한 정도랄까.


 공항의 JR 플랫폼에서 열차에 올라탔다. 안내방송에서는 일본어로 열차 노선을 설명해주는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조용하다. 빈자리가 앞뒤로 하나씩 있는 것을 발견한 나는 그녀를 앞에 앉히고, 이어 배낭을 끌어안고 뒷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열차는 출발했다. 유리창 밖으로 풍경이 뒤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왜요?”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아무 말 안 하고 있으면,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것 같아.”

 “그렇지 뭐. 일본인이나 한국인이나 거의 비슷해서.”


 여행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 그런데 낯선 곳의 낯선 사람들에게 이방인인 내가 익숙한 풍경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나는 당신들이 낯설다. 그런데 당신들은 내가 낯설지 않다는 말이더냐. 하긴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워낙 인접해있기 때문인지, 사실 나도 당신들이 아주 낯설지는 않다.


 유리창 밖으로 흐르는 눈 덮인 풍경은 어쨌든 이곳이 결코 서울은 아니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사실 나는 지금 부산에서 처음 지하철을 탔을 때 정도의 이국성을 지금 이 열차에서 느끼고 있다. 낯설다는 것은 때로는 공포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낯설지만 한 편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 때문에 나는 오히려 약간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각오했던 공포가 오지 않은 탓인지,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릴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인지 아무튼 나는 조금씩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오빠.”


 그녀가 뒤돌아 나를 부른다. 눈을 떠보니 그녀의 옆자리가 비었다. 나는 끌어안고 있던 배낭을 들고, 그녀의 옆자리로 가만히 옮겨 앉았다.


 “졸려요?”

 “응. 생각보다 낯설지 않아서 그런가? 뭔가 긴장이 풀려버렸어.”

 “그럼 좀 자요. 도착할 때 깨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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