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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Oct 27. 2015

하얀 나라를 보았니?

2012. 일본 ::: 오타루

#1. 하얀 나라를 보았니? – 고래군


“오빠! 스톱! 빨간불이잖아!”

“어? 이게 차도였어?”

“신호등 안 보여요?”

“아, 그냥 온통 하얗게 덮여서 차선이 안 보이니까, 나는 이게 차도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


 잠시 서서 기다리자 신호등 색이 바뀌며 ‘삐욕! 삐삐삐’ 하는 소리가 이쪽과 건너편 신호등에서 함께 울리기 시작한다.


“일본은 신호등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처럼 소리가 나게 해놓았네?”

“응. 도쿄에서도 저렇게 소리가 나요. 같은 소리였나? 아니었나? 아무튼 소리가 나기는 해.”

“세상에, 차길 옆으로 눈이 내 키보다 높게 쌓여있어. 차가 미끄러져도 저게 쿠션역할 해주겠다.”

“호텔이… 이 길 맞는 것 같은데? 왜 안 나오지? 지나왔나?”


 우리는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는 나 때문에 접어들어야 할 길을 지나쳐왔다. 다시 되돌아서자 하얀 길 위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하늘에서 시선을 내리자 녹색 빌딩이 길과 하늘 사이에서 가만히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사실 눈 내린 풍경이 낯선 것은 아니다. 서울 역시 몇 해에 한 번씩은 많은 눈이 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울 수 없을 만큼 많이 내린 눈을 차도와 인도 사이에 쌓아올려 벽을 만들어버린 모습은 분명 낯설다. 그래, 치우기 불가능할 정도로 많이 내린 눈은 저렇게 일단 쌓아놓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다. 어느 순간 날씨가 따뜻해지면 자연스레 사라질 테니까. 아마 이곳을 살아가면서 선택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겠지.


“호텔 찾았다! 오빠 저 호텔 이름 오센트라고 되어있는 거 맞죠?”

“응! 맞아요! 저기야? 꽤 큰데?”


 프론트에 예약을 확인하고 열쇠를 받는데, 여직원이 우리에게 종이티켓 두 장을 찢어 건네준다. 물음표를 세 개 정도 둥둥 띄워놓고 그녀를 바라보자, 무엇인가 말할 듯 입을 오물거리던 직원은 이윽고 숟가락으로 무엇인가를 떠먹는 몸짓을 보여준다. 먹는다고? 물음표 한 개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두 개나 남아있단 말이지. 그런 나를 보던 그녀가 내게 말을 한다.


“조식권인가봐요. 그런데 우리 예약할 때 조식권 불포함으로 예약했는데?”

“아아! 조식권!”


고백하자면 나는 아침식사를 주는 호텔에 묵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들어본 적은 있다. 그런데 아침식사를 하려면 저렇게 티켓을 받아놔야 하는 것이었구나.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아 몰라. 나중에 돈 더 달라고 하면 주면 되지 뭐. 일단 받아놓자.”

“그래요 그럼.”

“그런데~ 나 담배 하나만 피우고 오면 안 돼?”

“지금? 일단 짐부터 풀고 다시 내려와. 가방 안 무거워?”

“네 알겠습니다.”


::: 눈의 무게 때문에 저렇게 받쳐놔야했다 :::






#2. 눈의 무게 – 고래군 


 나는 새 신발보다는 오래 신어온 신발을 좋아한다. 내 발을 기억하는 신발이 주는 안온함이 좋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 신고 온 이 신발 역시 저번 여름 라오스에서 흙먼지를 나와 함께 뒤집어썼던 그 신발이다. 목이 짧은 워커인데, 동대문에서 이만 오천 원에 산 것이다. 문제는 내가 신는 신발만 주로 신고 다닌다는 데 있다. 이 녀석 밑창이 처음 살 때만 해도 홈이 파여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맨들맨들해진 것이다. 뭐 평소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비가 내린 날이나 지금 여기처럼 눈이 쌓인 곳에서는 자꾸 발이 미끄러져버린다. 하지만 뭐랄까, 나에게 있어 이 신발은 원래 그런 녀석인 것이다. 평소에는 괜찮지만, 물기에 젖은 땅은 조금 미끄러운 게 당연한 신발. 그냥 땅이 젖었기 때문에 미끄러운 것이다.


“오빠 밥 먼저 먹을래? 아니면 조금 돌아다니다가 밥 먹을래?”

“나 아무래도 배가 고픈 것 같아.”

“같은 건 또 뭐야? 배가 고프다는 소리지 지금?”


 고개를 끄덕이는 내 손을 잡고 그녀는 어딘가로 나를 이끈다.


“예전에 여기에 왔을 때 그냥 무작정 들어갔는데, 맛있었어. 거기에 가보고 싶은데, 괜찮겠어요?”


나무로 만든 벽, 크지 않고 오래되어 보이는 식당은 전등이 뿌리는 따스한 노란색으로 가득 차 있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 것만 같은 작은 티비 앞에 앉아있던 주인아저씨가 우리가 들어서자 말한다. 


[아!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저희 가게는 십칠 시부터 식사할 수 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에게 그녀가 말한다.


“아직 오픈시간이 아닌가 봐요. 오후 다섯 시부터 저녁식사 시간인가봐.”

“응? 아? 아! 쥬나나지?”

[십칠 시? 다섯 시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나는 목례를 남기고 일단 다시 가게 바깥으로 나왔다.

한 시간 조금 넘게 남아있는 시간. 우리는 주위를 조금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정 배가 고파지면 그냥 다른 가게라도 들어가자면서. 연말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일까. 거리를 걷는 사람이 꽤 많다. 그렇다고 명동처럼 사람으로 길이 막히는 정도는 아니다. 한적한 풍경을 적당히 채울 수 있는 정도의 사람들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예전에 내렸던 눈 위로 새 눈이 덮인다. 그리고 세상을 가만히 덮어나가는 눈은 우리도 함께 품는다. 그리고 뒤집어쓴 후드와 어깨를 뒤덮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십 분에 한 번 꼴로 미끄러진다. 그 때마다 그녀는 놀라며 내 손을 잡아준다. “조심해!”라는 다그침과 함께.






#3. 사람은 역시 먹어야... - 미니양 


 2년 만에 다시 찾은 그 식당은 변함이 없었다. 소박한 내부 모습과 따뜻해 보이는 분위기까지... 식당 주인아저씨는 나를 기억 못하겠지만 난 그 모습이 너무 반가웠다. 괜시리 오래 다녀온 단골식당에 들어온 듯 친숙한 느낌까지 들었다. 주문을 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하는 사이, 이윽고 주문한 메뉴들이 나왔다. 비주얼도, 맛도 2년 전의 그 때처럼 변함없이 좋았다. 우리나라가 아닌 타국의 식당에 다시 가본다는 것과 소중한 사람에게 좋은 곳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꽤나 즐거운 경험이었다. 


“오빠! 어때요?”

“응. 여기 기분 좋아. 음식도 맛있고.”

“다행이다! 오빠도 좋아해서.”

“주인아저씨 뭔가 음식 장인같은 느낌이야.”

“그렇지? 무언가 포스가 느껴져.”


 그렇게 즐거운 식사 시간이 지나고 기분 좋은 만족감을 가지고 식당 문을 나오니, 어김없이 펼쳐지는 하얀 눈 세상...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춥지는 않았다. 역시 사람은 등 따시고, 배부른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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