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

by 유나

우울증을 가장 먼저 앓았던건 나였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2학년이 되던 때였다.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아직 아무것도 해보지 않았을 때는 차라리 괜찮았다. 교회를 다시 나가고 기도를 두 시간씩 하고 교회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도 계속 남탓만 하며 음란 채팅을 끊지 않는 남편에게 지쳐가고 있었다. 어쩌면 시어머니처럼 나도 평생 이렇게 살아야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해 오던 날들, 그렇게도 좋아하는 책을 한 페이지도 읽어 낼 수 없었던 날들, 나의 감정을 다 담을 수 없는 백지앞에서 나는 차고도 넘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아득하다. 라는 한 문장밖에 쓰지 못하던 시간들. 나는 한겨울에 식은 땀을 줄줄 흘렸고 만성 두통에 시달렸고 잠들지 못했다. 남편이 눈을 치켜 뜨거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마치 지진이 난것처럼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내 발로 찾아간 정신과에서 나는 몇가지 검사를 거쳤고 내 상태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랬다. 나는 몸도 마음도 병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만 살고 싶었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깊은 잠에 들어 몇 년쯤 후에 깨어날 수 있다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매일밤 악몽을 꾸거나 잠들지 못했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세상에서 나만 행복하지 않은, 걸리면 살아남지 못하는 독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 같았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빈정거렸다. 죽고 싶으면 옆에 있는 사람에게 피해 주지 말고 빨리 죽으라고 했다. 나는 비록 우울증이었지만 누워지내지 않았고, 집안일도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의 시간을 조금씩 줄여가는 틈새를 남편은 귀신같이 알아챘고 그 간극을 용납하지 못했다. 남편은 틈만 나면 미흡한 부분을 찾아내 지적을 해댔고, 저항할수록 나는 미친년 취급을 받았다. 매일같이 들려오는 ‘그냥 빨리 죽으라’는 남편의 말이 비수가 되어 마음에 꽂혔고, 내 귓가에 울렸다. 나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술과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남편을 찾아가 남편이 보는 앞에서 팔목을 그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됐지?’ 그 때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살아 남았고 남편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독한년이라고 나를 대놓고 비난했다.


급기야 남편은 우울증은 나르시스트의 핵심이니 회개하고 죽으라고 말했다. 그러나 10년간이나 우울증을 알았던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에게는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기겁했다. ‘그럴수도 있다, 아플 수도 있다, 죽지말고 살아만 있으라며 어떻게든 도와 주겠다’고 했다. 나는 10년넘게 친구들과 연을 끊고 잠적한 그 친구보다 못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 친구는 심지어 신용불량 상태였는데 은행원의 지위를 남용해 대출까지 받아 주었다. 아직 그에 대해서 놀랄일이 남아 있다는게 신기했다. 그렇게 달라진건 아무것도 없는 일상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날 내가 썼던 유서였다.


이제와 미안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또 미안하다는 말 말고 무슨말을 할 수 있을까.

다정한 아빠가 있다면 인생이 참 든든할텐데, 그런 아빠를 만들어 주지 못해 무엇보다 미안해

행복한 가정, 화목한 가정 만들어 주지 못해 늘 미안했어.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그래서 그안에서 마음껏 신나게 뛰어놀길 바랬는데 늘 내 간절한 바램은 현실에 가 닿지 못한거 같아.

너무 불행한 관계는 끊어내도 된다는걸 그 땐 몰랐어

그런 관계에서 오는 고통이 사람을 병들게 한다는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어. 이미 신뢰를 잃은 사람과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는건 고통을 줄 뿐이야.

결혼생활에 실패한 내가 사랑에 관해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해줄수 있을까.

그렇지만 너희들이 좋은 사람들과 웃는날이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래

헬렌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에는 이런 말이 나와

훌륭한 수프에는 조건이 있다. 아주 뜨겁거나 차거나 둘 증 하나여야 한다. 미지근한 수프보다 형편없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건 없다고 말하고 싶어

가짜 사랑도 진짜 사랑의 모습을 하고 오지만 금방 들통날 수 밖에 없어

가짜는 즐거울 때 같이 웃을 수 있지만 아플때 같이 울 수는 없어. 진짜는 힘들때도 지속되지만 가짜는 기꺼이 불편함을 견디는 선택을 하지 않아. 가짜는 감언이설로 자신도 진짜라고 속이겠지만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일은 너무 오래 하지 않았으면 해. 진짜와만 함께 하기에도 인생은 짧으니까. 가짜는 미련없이 그냥 보내주어도 괜찮을 것 같아.

나는 정말 기댈데가 없었어 친정엄마는 오래 아프고 아버지는 일찍이 돌아가셨고 일찍 결혼한 나와 다르게 친구들은 연예하느라 바쁘고 남편은 대놓고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고 독립적인 여자가 좋다고 말하고, 사는게 너무 외로웠어. 너희들은 그렇지 않기를, 좋은 사람들과 많이 웃으며 언제나 나를 이해하고 아껴주는 사람과 함께 이기를 바래

누나에 대한 부탁, 동생에 대한 부탁은 따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너희의 관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짜니까. 너희는 따뜻하고 정이많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들이지 그런 너희를 만나 나는 많이 배우고 성장했어. 고마워 내게 와줘서.

감정에 지고 싶지 않아, 너희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 내가 죽는건 너희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그것만은 진심이야.

역설적이게도, 살아야지 하고 결심하면 할수록 사실은 살고싶지 않다는 마음에 더욱 시달렸어.

나는 항상 버터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오래 버티느라 너무 힘이 들어간 나머지 부러져 버린 것 같아.

나는 미로에 갖혔고 빠져나갈 길을 잃었어.

자꾸만 자신이 없어져. 내가 죽어야 끝날거라는 확신만 강해져.

내가 이미 사라져 버린 것 같아. 나는 나를 되찾을 수 있을까.

지속적인 긴장은 불안감으로 이어졌고 우리는 쓸데 없이 너무 일찍 억업되었어 이제야 이렇게 사는건 아니라는걸 알았는데 빠져나갈 수가 없어.

너희들만은 진짜 자신을 찾아가기를 그래서 사는게 신이나기를, 훨훨 나는 듯 행복해지기를 바래.


나는 이 글을 쓰며 종이가 다 젖을 정도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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