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번 용서하라

by 유나

그리고 이것은 딸아이가 가정 법원 판사에게 재출해 주길 바라며 쓴 글이다.


옛말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힘을 합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 습니다. 힘 없고 순수한 아이를 어른으로 키워내기까지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지요. 부모의 사랑과 안정을 기반으로 온 마을이 뜻을 모아 키운 아이는 높은 자 존감과 바른 애착관계를 바탕으로 정서적으로 안정된 어른이 된다고 합니다.


반대로 부모의 방임과 폭력 속에 자란 아이는 다양한 정서적 문제를 겪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버지의 폭력은 더 치명적이라고 하죠. 신체적 폭력부터 정서적 폭력, 위협, 방임까지. 이러한 일들은 자녀에게 장단기적으로 매우 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우울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같은 정신적 질환부터, 불안정한 애착관계로 인 한 인간관계의 어려움, 만성적인 신체 통증 등을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이는 아동이 직접적인 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버지가 지속적 으로 어머니를 학대하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 또한 비슷한 증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두 경우를 모두 직접 경험한 아이는 어떨까요.


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어머니를 학대하는 것을 보며 자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도, 제 동생도 아버지의 학대의 직접적인 피해자였습니다.


아버지는 늘 특별한 이유없이 습관처럼 화를 내셨습니다. 때문에 저는 아버지가 집에 있는 날이면 오늘은 또 어떤 이유로 화를 낼까, 몇시간이 지나야 끝날까 그런 걱정부터 하곤 했습니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아버지가 집에 있으니 같이 놀러가자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을텐데 말이죠. 아무리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애를 써도 문제는 생겼습니다. 어떤 날은 집에서 밥을 먹는데 젓가락을 하나 모자르게 가져왔다며 자신을 무시한다고 어머니와 동생에게 몇시간을 내내 소리를 질렀습니다. 또 어떤 날은 같이 보드게임을 하는데 규칙대로 아버지에게 패널티를 부여하자 화를 내며 새벽까지 화를 내며 잠들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상식적인 사람들이라면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일상적 인 일들이었습니다. 사소한 말, 사소한 행동, 사소한 실수 하나하나가 다 아버지에겐 화 풀이할 수단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저와 동생에게 화를 내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자식들 에게 그러지 말라며 아버지를 말리셨고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는 어머니를 물 어뜯었습니다. 그러고는 몇시간을, 때로는 몇일을 자신의 화가 다 풀릴때까지 막말을 해 댔습니다. 그만하라는 애원도 소용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지쳐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면 문이 부서질정도로 두드렸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미안하다고 사 과하고 그렇게 어머니가 방에서 나오면 또 막말을 일삼는 일들의 반복이었습니다. 단지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욕설부터, 인격모독, 가스라이 팅까지. 제 어머니는 지난 20년을 말도 안되는 괴롭힘, 정서적 학대를 당했습니다.

길거리 깡패도 아이에게는 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아버지는 두 어린 자녀를 앞에 두고 쌍욕을 밥먹듯 했습니다. 미친년, 병신, 나가 죽어라 이런 말들을 수도 없이 들었 습니다. 자기 자식의 엄마에게, 그리고 본인 자식에게 이런 말들을 하는 것에 대해 부끄 럼도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사람이 바로 제 아버지입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해 매일 사과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동생이 아버지 에게 마음 닫지 않도록 애쓰셨습니다. 자녀들이 좋아하는 클래식 공연을 예매해 다 같 이 보러가고, 좋은 전시, 박물관, 미술관부터 놀이동산, 스케이트장, 공원 소풍, 유명한 식당까지 찾아 다니며 아버지와 좋은 기억을 쌓길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아버지는 늘 트집을 잡아 그 시간들을 모두 망쳐놓았습니다. 여행을 가서도 마찬가지였 습니다. 공항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여행지에서 사람들이 다 보는데 욕설을 하고, 숙소에서,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늘 아버지는 불만이 많았고 자신의 분이 다 풀리기 전 까지는 그 행동을 절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버지 본인과 자식들의 관계를 망쳤다고 되려 덮어 씌웠 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제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를 망쳤다고 화를 내더군요. 아버 지는 늘 그런식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잘못해서, 제가 잘못해서, 동생이 잘못해서 자신이 화가 났으니 화를 냈을 뿐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음식에 머리카락이 나와 다 먹지 않고 남겼습니다.

계란을 구웠는데 어머니가 저와 동생에게 좀 더 예쁘게 구워진 계란을 줬습니다. 공부를 하는데 티비 소리가 시끄러워 낮춰 달라고 했습니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말고 라테를 먹자고 했습니다.


이런 일들에 분개할 이유가 있나요? 그것이 정당한 분노인가요? 만에하나 정당하다면 그렇다고 아내와 자녀에게 욕하고 폭력을 써도 되는지요.


저는 어디서나 칭찬 받는 아이였습니다. 어른들에게 예의를 갖출줄 알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으며, 음악, 체육, 미술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아이였습니다. 학교에서 학부모 면담을 하면 성실하고 공부잘하는 보기 드문 학생이라고 선생님들이 칭찬을 하셨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때는 전교 회장직을 맡았고, 매년 다독상을 받았으며, 토론대회, 독서감상문 대회 등등 나가는 대회마다 상을 받아왔습니다. 중학교에 가서도

모든 수행평가에 최고점을 받았고, 지필고사에서도 항상 좋은 성적을 받는 모범생이었 습니다. 고등학교때까지 사교육 없이 공부했고 자사고에 입학했습니다. 정말 피 터지는 내신 경쟁 속에서 지쳐 집에 오면 또 아무것도 아닌 일에 소리 지르는 아버지가 있었습 니다. 대입 스트레스와 지긋지긋한 아버지의 히스테리로 저는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학교에서는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애가 왜 이거 밖에 못하냐는 피드 백을 들었고 집에서는 매일같이 아버지에게 넌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 대학 떨어지면 재수 못하게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라, 이때까지 키워준 값을 갚으라는 협박부터 이유 없는 욕설(병신, 미친년, 멍청한년…)까지 들으며 무너질대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인생에서 단 한번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늘 노력했지만 아버지는 항상 저 를 몰아세웠습니다. 결국 죽을 생각으로 약을 과다복용하고 응급실에 실려갈때 아버지 는 감히 부모한테 도전한다고 했고, 애미나 딸년이나 똑같다는 믿기지 않는 발언을 했 습니다.

그 후 3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수차례 입원까지 했습니다. 저는 어린시절 내내 아 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자리잡은 학습된 무력감, 자기비난, 폭력에 대한 플래시백, 이유 없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고자 갖은 노력을 했지만 조금 나아지려 하면 아버지는 다시 저 를 쓸모없는 인간 취급하며 다시 나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저의 정신질환은 환경적 요인 으로 발병한 것이기 때문에 약물 치료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회복을 위해서는 과거의 일들이 반복되지 않아야 하는데 아버지는 저를 이해하고 도울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왜 그랬냐고, 미안하긴 하냐고. 하지만 아버지는 그 런적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욕설을 한 적도 없고, 폭력을 쓴 적도 없다고. 자기는 그저 부모로서 훈육을 했을 뿐이라고. 그런 일들은 모든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제가 과민한 것이고 어머니에게 문제가 있는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가 피해를 봤다고 말 했습니다.


학창 시절 내내 이유없이 학교를 빠져 본 적이 없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그냥 등교하기 싫어서 편법으로 하루 이틀씩 학교를 빠지는 것이 만연했는데 저는 단 한번도 그런 적 이 없습니다. 항상 선생님들보다 일찍 등교해서 교실 문을 열고 아침 공부를 했고 수업 시간에 졸거나 딴 공부를 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 저를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그림 같은 학생이라고 생기부에 적으셨습니다. 다른 아버지라면 칭찬해 줬겠죠. 좀 덜 노력 하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딸이 소중했다면 격려하는 말을 해줬겠지요. 당연히 아버지께 그런 말을 들어본 적 없습니다. 단지 내신 성적이 왜 이따위냐, 니 인생 망했 다, 앞으로 모든 지원 끊을거니 알아서 살아라 이런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글로 다 표현되지 않는 이 막막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일 지도 모른다는 공포.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공공장소에서 소리지르는 아버지를 보며 사람들이 수군대고 쳐다보며 지나갈때 느끼는 수치심. 그만하라고 말려도 끝나지 않는 화풀이에 대한 무력감. 아버지로 인해 우는 엄마를 향한 측은지심. 아버지에 대한 분노. 다정한 아버지를 가진 대부분의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 내가 큰 죄를 지은듯한 죄 책감. 지긋지긋하다는 생각. 아버지는 절대 바뀌지 않을테고 이 꼴을 더 보느니 그냥 죽자 하는 충동.


삶에서 어려운 순간이 오면 인간 관계가 정리된다고 합니다. 제가 3년 동안 수도없이 병원을 다니는 동안 아버지는 세컨폰으로 수도없이 모르는 여성들과 채팅을 했습니다. 한 앱을 이용한 것도 아니고 다양한 앱을 사용하며 유료 결재한 내역까지 있었습니다. 조건만남, 유흥 업소를 소개하는 사이트에 다양한 아이디와 비번으로 로그인 한 기록도 있었습니다. 불법 음란물 사이트에 드나든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모텔에 2인 숙박을 예약해 체크인한 기록도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가족 공용 노트북에서 그 내역들을 보고 별로 놀랍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 아버지라는 사람의 밑바닥이 정말 어디까지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면 어머니의 이혼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밑바닥을 딸이 봤단걸 알고도 아버지는 뻔뻔했습니다. 어머니와 저와 동생이 자신을 따돌렸다고 주장하더군요. 자신을 무시했다고요. 그래서 외로워 채팅을 좀 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제가 까마득히 어렸을때부터 채팅을 하고 술을 마시 고 여자들과 밤을 보냈습니다. 본인을 따돌렸다는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 모든 만행을 듣고 보고 자라면서 그래도 아버지라고 수도없이 덮고 용서하고 친해지려 애썼습니다. 싸운 직후에도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서 그 런거라는 변명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교회에 가면 아버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영혼을 불쌍히 여겨달라 기도했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아버지가, 돌이키길 바랐습니다.


제가 살려고 애쓰는 동안 아버지는 매일 집안일을 하던가 공장이라도 가서 돈을 벌어서 쓸모있는 자식이 되라는 폭언만 내뱉었습니다. 단 한번도 제가 얼마나 힘든지, 나아지려 고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병원에서는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어떤 약물을 복용하 는지에 대한 질문은 한 적이 없습니다. 대학병원에 4번 입원하면서 단 한 번도 아버지는 저를 만나러 오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제 유년시절의 대부분동안 아버지를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용서하려 애썼습니다. 아버지가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깨달을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저는 무너졌고 아버지는 더하면 더했지 단 한뼘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에게 더 악독한 말만 내뱉었습니다. 저를 때려 죽여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만들겠 다거나 평생 정신병원에 가둬놓겠다는 협박을 했습니다.


저는 평생 아버지를 이해하려 애쓰며 마음에 돌을 쌓았는데 아버지는 단 한순간도 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그런 뻔뻔함에 저는 더 오래 헤맸습니다. 진짜 다 내탓인가 하고요. 생판 모르는 남이 던지는 돌에 맞아도 아픈데 부모가, 아비라는 사람이 던지는 돌은 저에게 낫지 않는 상처를 잔뜩 만들었습니다.


아버지로 인해 저는 평생 힘들고 아팠고 앞으로 남은 생을 사는 동안에도 그 기억들로 인해 괴로울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아버지로 인해 무너졌고 아버지와 비슷한 연령대의 어른을 보면 반사적으로 아버지의 폭력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버지와 갔던 식당, 백화점, 공원에 가면 아버지가 욕하고 소리지르는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학창시절 친구들을 보며 제가 가장 부러웠던것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만 고민하면 된 다는 것이었습니다. 진학 문제, 또래 갈등, 사춘기에 짜증낼 수 있는 부모님. 그저 누구 나 하는 고민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휴일에 학교 가지 않는것이 좋고 가족과 여행가는것은 즐거운 일이고 아버지와 고민을 나눌 수 있는것. 제가 바라 는 것은 정말 그게 전부였습니다. 저는 인생에서 없어도 되는 일을 정말 많이 겪었습니 다. 평범한 또래들이라면 겪지 않았을 일들을 아버지로 인해 겪고 살았습니다.


아버지에게는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뉘우칠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많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추억을 만들어 주려 할 때, 자녀가 뭣도 모르고 용서해줄 때, 딸이 제발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엄마 그만 괴롭히라고 무릎 꿇고 애원하며 울 때,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왔을 때, 딸이 자신 때문에 죽으려고 했을 때. 무수한 시간 동안 저는 아버지에게 무한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노 력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남탓만 했습니다.


아이는 부모를 보고 배운다고 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무례하고, 이기적이고, 화 밖에 낼 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그 아버지 밑에서 제가 바르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머니의 덕입니다. 제가 엄마에게 배운것은 마음이 큰 사람이 속 좁은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 없어도 배풀고 살아야 한다는 것, 뭐든 도전해 보라는 것, 고마운 사람에게 편지 쓰는 법,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얻으라는 것,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법, 책을 가까이 하는 버릇 등등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무형의 삶의 지 혜입니다. 내가 좀 손해보는것 같아도 기꺼이 마음을 넓게 가지는 것. 거기에서 오는 기쁨이 있다는 것을 저는 제 어머니를 보고 배웠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멍청하 고 순진하다고 폄하했지만,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제 아버지도 아비 노릇 할 무수한 기 회를 얻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본인이 무가치하게 여긴 것들이 본인에게 기회였다는 것을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열여덟이 아니라 열살쯤에 죽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아버지가 없는 휴일이면 어머니는 저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작은 선물 을 주며 미안하다고도 하고, 고맙다고도 하고, 기특하다고도 하셨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선물도 좋았지만 소리지르는 아버지가 없어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게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도 행복해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 옷 하나 사입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자녀들에게 그리고 매일 자신을 괴롭히기만 하는 아버지에게는 계절마다 필요한 옷을 사입혔지만 정작 어머니 본인은 한 계절이 가는 동안 옷 하나를 교복처럼 입고 다녔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제 가 예쁜 옷 좀 사 입으라고 하면 어머니는 그저 웃기만 하셨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아 버지는 어머니가 입은 옷이 새 옷인거 같다 싶으면 얼마냐고 물으며 왜 샀냐고 반품하 라고 어머니를 괴롭혔기 때문에 어머니에게는 옷 하나 사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에 저와 동생, 아빠는 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는데 어머니 혼자 얇은 점퍼를 입고 있던 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립니다.


아버지가 저를 때려 죽이겠다고 할 때 저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뺨 한 대 맞고, 던진 물건에 맞고, 머리채 좀 잡힌걸로는 증거도 되지 않으니까요. 더군다나 아버 지가 여짓것 한 폭언들 중 제대로 녹음 된 것은 몇 개 없으니까요. 죽도록 맞아서 병원 에서 깨어나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정서적 학대를 주장한들 경찰과 법은 보이는 증거를 원하니까요. 그리고 맞아서 몸이 아픈게 제가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보다 낫겠 다고 생각 할 만큼 저는 괴로웠습니다.


딸이 아픈것도 제 아버지에게는 어머니를 공격할 수단이었습니다. 제가 보는 앞에서 어 머니에게 “자식 오냐오냐 키우더니 꼴 좋다. 니가 잘한게 뭐가 있어? 너 복수당하는거야. 애들은 원래 나를 더 좋아해.” 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어떤 친아버지가 아픈 딸을 둔 친어머니에게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는지요. 이 말을 듣고 저는 정말 비참했습니다. 제가 아픈것도 어머니의 약점이 되다니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동생이 목을 맸을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전화해 집에 좀 와서 도와달라 했지만 아버지 는 끝내 집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괜찮냐는 안부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 새벽에 전화기 너머로 여자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일 동안 밤을 새며 동생 이 위험한 행동을 하진 않는지 지키는것 밖에 없었습니다.


심한 우울증을 겪을때 가장 힘든것이 시간을 견디는 것입니다. 어느 일에도 집중할 수 없고, 무기력이 심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자기 파괴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뭐라도 해서 플래시백과 충동을 흘려보내야 하는데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때 저는 어머니가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같이 카페에 가고, 쇼핑을 가고, 맛집을 다니며 혼자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옆에 있어주셨습니다. 수능을 봐야하는데 아무리 문장을 읽어도 외워지지 않고 이해도 되지 않아 절망할 때마다 그깟 대학 좀 늦게 가도 된다고 다독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의지박약, 나약한 새끼, 너 같은건 어디서 받아주지도 않는다고 악담을 하셨습니다. 동생이 저와 비슷한 증상을 겪으며 시간이 안가서 힘들다고 울 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고통이 뭔지 잘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동생이 집에 오면 같이 게임을 했습니다. 평생 pc게임을 해본적도 없고 저도 여전히 힘든 상태였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익히는 것이 어려웠지만 그래도 동생이 좋아했기에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해줄수 있는 것이 있어 정말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아버지는 너네는 하루종일 게임만 하는 기생충이냐고 악담을 퍼부으셨습니다.


저는 동생이 죽으려 했을때 너무 마음이 아팠고, 미안했고, 뭐라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아버지가 더 괴물처 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생판 모르는 남에게라도 아버지처럼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 주변의 모든 어른들은 하나같이 자식이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부모니까 효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자식을 이해하라고 하는 어른은 없었습니다. 저에게 자살은 죄악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아버지에게 불륜이 죄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아버지는 더 당당했습니다. 밖에서는 그 누구도 아버지를 질책하지 않았기에, 아버지에게는 집에서 고통받고 울부 짖는 가족들이 별나고 미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저는 아버지를 용서하려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이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행동은 애당초 이해받아서는 안되는 행동들이었습니다. 좋은게 좋다고 넘어간 저와 제 어머니의 관용이 아버지를 더 악마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지 금이라도 그만하고 싶습니다. 매일 불안에 떨며 살던 시간들을 끝내고 싶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부디 저희를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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