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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힐 Jul 08. 2021

귀 빠진 날

자궁이 작아진 느낌이 들어서 아래 구멍으로 나가고 싶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날따라 답답한 기분이 들어서 아주 잠깐 아래로 내려간 건데 그게 어머니를 굉장히 고통스럽게 했나 봐요. 신음소리를 내시더라고요. 저도 놀랐지만 어머니도 상당히 긴장상태인 거 같았어요. 저와 어머니는 연결돼 있어서 어머니의 감정 상태를 잘 느꼈거든요. 몇 시간 소리를 지르시더니 어디론가 향했습니다. 아마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나 봐요. 어머니는 병원에 꽤 오래 계셨어요. 컨디션이 안 좋으셨는지 힘이 없으셨고 저도 같이 축 늘어졌지요.


어머니는 배에 손을 대고 기도하셨어요. 어머니가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을 때 저도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자궁 밖으로 나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어요. 어머니는 아주 있는 힘껏 힘을 주시더라고요. 한 다섯 번 만에 제가 나왔던 거 같아요.


그날은 아주 정신없었어요. 좁은 공간을 빠져나가는 것도 무척 어려웠지만 나온 뒤에도 당황의 연속이었죠. 낯선 공기, 낯선 목소리, 낯선 환경에 무척 놀랐지요. 그나마 어머니의 심장 소리를 듣고 안정을 찾았었답니다.


그때부터 초능력으로 주변을 탐색하고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눈도 잘 안 보이고, 소리도 잘 안 들렸거든요. 대신 희미한 오로라 형체를 보며, 또 냄새를 통해 공간의 분위기를,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인식하고 판단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빠르게 신생아실로 옮겨졌어요. 짙은 안개 같은 오로라가 가득했고 쏴한 냄새가 났어요. 약간의 긴장감이 돌더라고요. 제 주변 아기들도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도 같이 있으니까 많이 외롭지 않았어요. 우린 배고프거나 졸릴 때 함께 울었지요. 그때는 정말 죽을 정도로 배가 고팠습니다. 자궁 속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허기의 공포였어요. 어머니 뱃속에서는 그때그때마다 배를 채울 수 있어서 늘 포만감이 있었거든요.


제가 울면 간호사 언니들이 맘마를 줬는데 달달하고 맛있었어요. 젖병 빠는 게 힘들긴 했지만 열심히 물고 먹었지요. 힘드니까 자꾸 먹다 잠이 더군요. 그 시절엔 계속 잠만 잤던 거 같아요. 계속 졸렸거든요.


가끔 어머니, 아버지가 저를 보러 내려왔어요. 냄새를 통해 바로 알 수 있었죠. 아버지는 그 유명한 딸바보였습니다. 아버지 주변이 온통 핑크빛 오로라가 가득했어요. 뭔가 서툰 손길이었지만 아버지의 울렁이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의 핑크빛 오로라를 본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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