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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힐 Mar 13. 2020

[책] 프랑켄슈타인 : 욕심이 낳은 괴물

프랑켄슈타인/메리 셀리 지음/더 클래식 출판사

생각했던 것보다 우울했고, 깊고 다크한 문학 작품이었다. 한 인간이 과하게 무언가에 몰입하고, 성취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 질서와 기본과 평범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반문하고 있다. 또한 한 생명체가 희망을 품다가 좌절을 하고, 우울해하며 어떻게 괴물이 되어주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외로움, 절망, 죄책감, 우울 등은 한 생명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충분하다.


항해자 왈튼이 누이 마가렛에게 쓴 편지글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왈튼은 항해 중 프랑켄슈타인을 만나게 되고 그의 기이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괴물을 만들고, 괴물에게서 도망쳤으며, 다시 괴물을 찾아 죽이려고 하는 그. 왈튼은 그의 이야기를 메모해 놓고 누이에게 편지를 보낸다. 


프랑켄슈타인


제네바 공직자 집안에서 태어난 프랑켄슈타인. 그의 어린 시절은 행복하고 유복했다. 호기심 많은 그는 자연철학에 꽂히게 되는데 훗날 그를 고통으로 이끈 학문이 되고 만다. 기이한 연구와 실험에 흥미를 느끼고 밤낮 그 작업에 몰두한다. 나중에 대학에 가서 좋은 교수를 만나 현대 과학을 공부하게 되는데 그의 과학 실험은 더욱더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된다. '생명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부터 시작해 생식과 생명의 근원까지 발견하게 된 프랑켄슈타인. 그 연구에 몰두하는 동안 그의 삶은 무너졌다. 불규칙한 삶으로 야위어갔으며, 가족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 

"네가 즐겁게 잘 지낸다면 애정 어린 마음으로 우리를 잊지 않고 연락도 꾸준히 할 것이다. 만약 네게서 연락이 끊기면 해야 할 다른 일들도 방치하고 있다고 여길 테니 그리 알고 나를 원망 말거라."

나는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할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일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를 않았다. 그 일 자체가 혐오스럽기는 했지만 내 마음은 온통 그 일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 본성이 따르던 모든 것을 집어삼켜 버린 그 위대한 목표를 이룰 때까지 애정, 혹은 그 엇비슷한 감정들은 모두 뒷전으로 미루고 싶었다.

드디어 그가 만들고자 했던 생명체가 탄생한 날! 그는 자신이 만든 괴물을 보고 도망치게 된다.

내가 그동안 들인 노고의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은 11월의 어느 음울한 밤이었다. 불안하다 못해 극도의 고통마저 밀려오는 상황에서 나는 내 발 앞에 놓인 결과물에 연결시켜 번득이는 불꽃을 가하기 위해 생명장치를 내 곁에 가져다 놓았다. 벌써 새벽 1시였다. 빗방울이 유리창 위로 타닥타닥 떨어졌다. 촛불도 거의 꺼져갔다. 바로 그때 꺼져 가는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내 창조물이 그 누런 눈을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숨을 거칠게 쉬더니 사지는 경련을 일으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대재앙 앞에서 느낀 감정을 어찌 설명할 수 있으랴. 영원할 것만 같았던 고역과 염려 속에서 부단히 애를 쓰며 탄생시킨 그 가엾은 존재를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그의 팔다리 비율도 괜찮았고, 각 신체 기관들도 아주 보기 좋은 것들로 골랐었다. 그런데 보기 좋기는커녕! 오, 하나님! 근육과 혈관들이 누런 피부 위로 훤히 내비쳤다. 새까만 머리카락은 풍성하고 윤기가 흘렀으며 이빨은 진주처럼 새하얀 빛이었다. 그러나 그런 화려한 치장은 오히려 허연 눈동자와 창백한 흰자위, 쭈글쭈글한 얼굴, 일자로 쭉 찢어진 시커먼 입술과 대조를 이루어 더욱 끔찍할 뿐이었다.
-(생략)-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사라지만 인간의 마음만큼 자주 변하는 것이 또 있을까? 나는 2년 동안 그토록 열심히 일해 왔다. 쉬지도 못하고 건강도 잃었다. 이 일을 이루고자 하는 내 열정은 정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모두 끝나고 나니 꿈에 그리던 아름다운 창조물은 온데간데없고 숨 막힐 듯한 공포와 혐오감만 차올랐다. 내가 만든 그 생명체를 견딜 수 없었기에 나는 침실로 달음질쳤다.


죄책감과 우울의 터널


무책임하게 도망친 프랑켄슈타인은 죄책감과 우울감에 미쳐갔다.

지나치게 불안해하기만 하고 열의는 사그라졌다. 내 모습은 정말 좋아하는 작품에 열중하는 예술가가 아닌, 광산이나 건강에 해로운 직업군에서 일할 운명을 타고난 노예 같았다. 밤마다 미열에 시달렸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신경이 예민해졌다. - (생략) - 클레르발이 그토록 오랫동안 극진히 나를 간호하지 않았다면 난 분명히 죽고 말았을 것이다. 내가 세상에 존재케 한 그 괴물의 형상이 끊임없이 내 눈앞에서 어른거렸고 나도 쉬지 않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생략)- 클레르발은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친구. 나를 어찌 그리 진심으로 아껴 줄 수 있을까? 자신이 건강한 만큼 내 마음도 건강하게 해 주려고 그토록 노력을 하다니. 이기적인 연구는 나를 구속하고 편협하게 만들었다. 클레르발의 관대함과 애정이 내 몸을 녹였고 내 감각을 활짝 열어 놓았다. 나는 그제야 모든 이를 사랑하고 그들로부터 사랑받았던, 슬퍼하지도 걱정하시도 않았던 몇 년 전의 나로 되돌아갔다. 

클레르발 덕분에 잠시 정신을 차리지만, 괴물은 끔찍한 살인사건을 가지고 와 그를 괴롭힌다. 프랑켄슈타인의 사랑하는 가족들, 지인들을 하나씩 죽이기 시작한다.

그가 생명을 얻은 지 거의 2년이 지났다. 그것이 그가 처음으로 저지른 범죄일까? 신이시여! 제가 대학살과 재난의 맛을 즐기는 타락한 악마를 세상에 풀어놓았나이다. 

그야말로 지옥 속으로 들어가는 프랑켄슈타인. 다시금 죄책감과 우울감에 빠져든다.

진짜 살인자인 나는 가슴에 영원히 죽지 않는 벌레를 품고 있었고, 벌레는 내게 희망도 위로도 느낄 수 없게 했다. -(생략)- 평온한 마음으로 지난 일을 만족스럽게 돌아보고 새로운 희망을 가지는 대신에, 회한과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나를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지옥 속으로 급히 몰아갔던 것이다.


버림받은 괴물


괴물은 괴물 나름대로 억울한 입장이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고, 버림받았다. 세상에, 사람에게 희망을 품고 다가갔지만 흉측한 모습 때문에 배척받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목적지는 어디인가? 이런 질문들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나는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지. -(생략)-  내게 정보를 줄 만한 인간이란 단 한 사람도 없었어. 하지만 나는 절망하지 않았지. 비록 내게 남은 건 당신을 향한 증오심뿐이었지만,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도 당신뿐이었어. 무정하고 냉혹한 창조자 같으니라고! 비록 내게 지각과 감정은 부여해 주었지만, 날 무시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만 모여 사는 먼 타국 땅으로 결국 내쳐 버렸지. 하지만 동정과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도 당신뿐이었지. 비록 내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난 그때 인간의 탈을 쓴 어떤 존재로부터 정의를 구걸하고 싶었던 거야.

괴물의 처지도 이해가 간다. 너무 외롭고 비참했을 것이다. 자신을 만든 창조자를 증오할 만하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제안한다. 자신과 똑같은 여자 괴물을 만들어 달라고. 그러면 더이상 악한 일을 하지도 않고 여자 괴물과 조용히 숨어서 지내겠다고 한다. 

책임감을 느꼈다. 그가 사악하다고 비난하기 전에 먼저 그를 행복하게 해 줘야 했다.

괴물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 프랑켄슈타인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다시 새로운 괴물을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곧 또다른 '살인자 양산'이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작업을 중단한다. 결국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아들, 친구, 아내까지 살인하며 분노를 표출한다.


열망과 창조의 끝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잡고자 항해를 떠나고, 우연히 편지의 화자인 왈튼을 만난다. 왈튼의 배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곧 그 배에 괴물이 출몰해 자신의 유언을 남기고 사라진다. 결국 프랑켄슈타인의 죽음과 동시에 괴물도 죽음을 예고하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프랑켄슈타인의 교훈


자기 분수에 넘치는 야망을 품기보다 지금을 행복하게 누리고 사십시오. 내면의 평정과 평화를 유지하면서 말입니다.

나에게 배우시고. 내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내가 겪은 일을 보면서라도 꼭 배웠으면 하오. 지식을 습득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자기 분수에 넘치는 야망을 가진 사람보다 태어난 곳이 세상의 전부라 믿는 사람이 훨씬 행복하다는 사실을 말이오.
완벽한 인간이란 늘 내면의 평정과 평화를 유지하며 열정이나 찰나의 욕망으로 자신의 평정을 잃지 않는다. 나는 지식을 쫓는 경우에도 이 '법칙'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헌신하는 학문이 사람에 대한 애정을 식게 하고, 그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단순한 즐거움을 갈구하는 마음을 파괴해 버린다면, 그 학문은 분명 부정하다고, 즉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법칙'만 잘 지켰다면, 그래서 가족애를 지킬 평정을 깨뜨리는 일만 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는 포로가 되지 않았을 것이며 카이사르는 나라를 구했을 것이다. 신대륙의 발견도 더욱 천천히 이루어져 멕시코와 페루도 파괴되지 않았을 것이다.


작가 메리 셸리의 기구한 운명


모성에 대한 갈망, 자신이 낳았던 아기의 죽음, 남편의 전처의 자살 등 그녀가 경험했던 수많은 죽음과 탄생의 경계. 생명체에 대한 죄의식과 공포가 그녀의 소설에 고스란히 묻어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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