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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힐 Jun 04. 2020

[책]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선과 악에 대한 고찰

스크루테이프의 편지/c.s. 루이스 지음/김선형 옮김/홍성사

늦은 북리뷰.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기독교 책이다. 읽은 지 꽤 지났지만 이제야 정리해본다. 친구들이랑 함께 읽으며 한 달 동안 31개의 편지를 꼼꼼히 읽었다. 첫 장부터 c.s 루이스의 역발상, 선과 악에 대한 고찰에 감탄했다. 매일매일 책을 읽고 나눔을 하며 친구들과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너무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악'과 '선'의 새로운 정의도 정립됐고, 배후의 '악'에 대한 휘둘리지 않을 기준도 생겼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악마가 악마의 제자에게 조언하는 편지글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매 편지마다 주옥같은 글과 날카로운 진리가 담겨 있다. 메모해 놓은 주요 내용을 공유해 본다.


#1 첫 번째 편지 :

- 악마는 '현실성'을 굉장히 중요한 무기로 쓴다. 인간의 사고와 논리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것을 즐기고, 정신없게 하는 게 주무기.

- 현실과 눈에 보이는 상황에만 집중시켜  진리와 논리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자잘한 세상적인 지식이 중요하다고 주입하고, 바쁜 현실성을 보여주는 게 그들의 계략이라는 것. (소름)

- 가끔 진리와 논리는 덜 중요해 보이고 사치라 여겨진다. 그것은 이상적인 삶이라고 고개 젓고, 바쁜 현실을 살아간다.

수세기 동안 우리가 쉬지 않고 공작해 온 덕분에, 이제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친숙한 일상에 눈이 팔려, 생소하기만 한 미지의 존재는 믿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니 계속해서 사물의 일상성을 환자한테 주입해야 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중 악마


#2 두 번째 편지 :

- 악마는 초신자 또는 모태신앙에게 실망감, 맥 풀리는 느낌, 형식적인 예배를 통해 진정한 예배의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 단순한 감정과 습관에 좌지우지하게 만들고, 겸손과 회개는 절대 하지 못하게 하는 것.

- 교회가서 을 판단하고, 하찮고 가엾게 여기고, 미워하게 만드는...그래서 결국 사랑이 아닌 판단과 비난으로 이끄는 악마의 계략.

- 나 또한 하나님이 아닌 것에 마음을 많이 빼앗겼었다. 예배가 아닌 사람에 집중하고, 실망하고, 판단하고 비난했던 시간들...그리고 지금도 ing... 진정한 예배를 사수해보자!


#3 세 번째 편지 :

- 누군가를 미워할 때 그 배후엔 악마가 심히 활동하고 있음을 새삼 느. 오해, 피해의식, 자기 성찰 없 자기만의 합리화. '어라? 나도 악마가 주입한 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미워했던 거 같은데...나 속은 거임?' 당황스러웠다. 나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들보만 크게 보는 죄인스...ㅜ


#4 네 번째 편지 :

- 기도의 자세를 돌아보게 됨.

- 경건한 '기분'만 내는 기도하지 말기

- 육체의 자세도 중요하단 점. (무릎 꿇고 기도하기)

- 감정을 꾸며서 하는 기도 경계.


#5 다섯 번째 편지 :

- 의무가 쾌락을 앞선다는 것. 의무> 쾌락. 마음만 먹으면 쾌락을 절제할 수 있다.

- 공포심, 자기 연민, 두려움-> 악마가 좋아하는 것.

- 전쟁 또는 힘든 상황 가운데 오히려 하나님 만날 수 있다. 자아보다 중요한 가치, 명분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 세속에 만족하는 마음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

- 끔찍한 전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다.

- '고난'은 '구원'에 꼭 필요한 부분.


#6 여섯 번째 편지 :

- 나의 심리상태가 아닌 예수님 자체에 관심을 두기! 그렇다면 두려움 조차 극복할 수 있.

- 나의 상태를 인식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 내 안에 분노가 일고 있는지 정욕을 느끼고 있는지! 분별하고 돌이키는 것!

- 공상보다 현재, 의지를 중점을 두고 살아가기.


#7 일곱 번째 편지 :

- 사단의 교활하고 무시무시한 영적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바로 깨어있는 것. 또 이는 경각심을 일으키는 데 있어서는 도움이 됨.

- 사단은 무지하고, 극단적인 경향을 좋아한다. 균형 고 편 가르기 좋아하는 사단.

- 파당의 특성, 파벌> 종교> 하나님. 곧 주님 이용하고, 종교는 대의명분이 된다.

- 주님을 이용하지 말자!


#8 여덟 번째 편지 :

- 영원한 대상, 주님을 원하는 영, 그 반대로 시시각각 변하는 육체, 정욕, 상상력. 인간의 기복.

- 주님은 깊은 골짜기를 통해 우리를 성장시킨다. "아끼는 인간들은 그 누구보다 길고도 깊은 골짜기를 통과해야 한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로 인간 스스로 걷길 원하신다. 그래서 때론 손을 놓고 지켜보시는 것.

- 우리가 계속 걷겠다는 '의지'와 하나님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의문이 계속 생겨도 여전히 '순종'한다면 주님은 기뻐하시고 사단은 포기한다.


#9 아홉 번째 편지 :

- 사단의 방식참과 거짓 명백한 것이 아니라 진보, 발전, 성장기, 역사적 관점, 단계, 성장기 등 교묘하고 아리송한 표현을 좋아한다.

- 주 안에서는 참과 거짓 명백한 대립만 있다는 것!!!


#10 열 번째 편지 :

- 열 번째 편지를 읽고...정말 고지식하고, 재미없어 보였던 그 청교도적인 생활의 시절이 떠올랐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때의 정결, 절제, 거룩나를 보호하고, 나를 존귀하게 이끌어줬었다.


#11 열한 번째 편지 :

- 경박함과는 차별된, 웃음, 재미, 기쁨. 천국에도 그 비슷한 것이 가득하다.

- 기쁨은 자비나, 용기, 만족을 조장한다.

- 농담으로 자기 책임 회피, 수치심, 잔인함 등을 회피하는 것 그리고 남을 상처 주는 농담은 경계해야 된다!

- 매사를 농담으로 처리하는 사람. 진정한 회개와 자아성찰 도달하지 못할 것.

- 사단이 최고로 좋아하는 경박함! '기쁨과 한참 떨어져 있는 데다가 지성의 날을 벼리는 대신 무디게 만들며, 그렇다고 웃는 사람들 사이에 애정을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닌 것.


#12 열두 번째 편지 :

- 진로를 틀어 놓는 사단. 매일 깨어서 인식해야 한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사단은 그리스도인의 습관만 유지한 채 겉과 속이 같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 모호한 불편함을 너무 심화시키지도 완전히 억눌러 버리지 않고...주님을 더 꺼리게 되는 경향으로 만들어 회개하지 못하게 한다. 후에는 죄의식을 심어서 주님을 꺼리는 마음 열 배 심하게 만드는 것.

- 나중에는 스스로 종교적 의무도 싫어하게 되고, 스스로 더 무뎌지길 원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더 확고해지면 쾌락을 통해 해방하려 한다.

- 회개와 불편함을 꺼리며 진짜 행복에서 멀어져 허영심과 흥분과 경박함을 습관화함.


#13 열세 번째 편지 :

- 주님의 임재가 있을 때 사단이 다가가지 못한다는 사실. 그러므로 매일 주님의 임재에 둘러싸인 자에게사단이 접근할 수 없음.

- 진짜 좋아하는 것, 긍정적인 진짜 쾌락은 사단의 쾌락과 분명히 구분된다.

- 감수성에 덮여 있는 를 벗겨 내고, 제 모습을 되찾아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 사단은 인간 자신이 자신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작업을 좋아한다. 그러고 나서 진정한 고통이 아닌 상상 속 걱정거리, 자기 연민에 빠지게 하는 것.

- 하나님도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격리시키길 원하지만 사단과 방향이 다르다. 오직 아집을 버리는 훈련일 뿐. 아집을 버리면 진짜 각자의 개성을 돌려준다!

- 인간이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될 때, 그 어느 때보다 더 진정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취향과 충동은 하나님이 준 원재료이자 출발점.


#14  열네 번째 편지 :

- 건강한 겸손, 건강한 자기 가치, 건강한 자기 계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됨.

- 은혜받은 후 성숙해진 사람은 자신만만한 결심들을 남발하지 않는다. 계속 선한 일만 하겠다는 약속도 펑펑하지 않는다. '은혜'가 평생 지속되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매일 매시간 닥치는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그 매일 매 순간에 해당하는 만큼의 은혜만 바란다. -> 곧 겸손해진 것.

- 사단은 '세상에, 내가 이렇게 겸손해지다니!' 하는 식의 만족감을 슬쩍 밀어 넣고, 즉시 교만하게 만듦.

- 주님은 겸손을 통해서 인간이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원수와 이웃을 향하게 되길 바란다.

- 인간이 계속 자기 생각에 갇히게 된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경멸을 출발점으로 하여 다른 인간들을 경멸하는 자리로 나아가며 우울함과 냉소주의와 잔인함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사단의 승.

- 사단은 어떤 자질에 대한 '진실'보다 '평가'를 더 중요시하게 함.

- 사단은 미덕의 싹이 나타날 때마다 거짓과 가식의 요소를 그 중심에 주입.

- 반면에 주님은 인간이 자신에게 유리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이웃이 가진 재능을 볼 때와 똑같이, 해 뜨는 광경이나 코끼리나 폭포수를 볼 때와 똑같이, 자신의 재능 또한 솔직하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기뻐할 수 있길 바란다.


#15 열다섯 번째 편지 :

- 인간은 시간 속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영원'을 예비해 두었다.

- 하나님은 인간이 '영원'과 '현재'에 관심 갖길 원한다. (ex) 주님과 영원히 하나 되는 일, 현재 들리는 양심 소리, 현재 주어진 십자가, 현재 주어진 은혜, 현재의 즐거움, 현재의 감사.)

- 사단은 한정된 과거를 이용해 과거에 파묻혀 살게도 하지만 미래의 비현실적인 허상을 더 많이 이용한다.

- 감사는 과거를 바라보고 사랑은 현재를 바라보지만 두려움과 탐욕과 정욕과 야망은 앞을 바라본다. 이것이 간과하기 쉬운 미래의 부정성. 막연한 불안, 희망, 걱정보다 현재를 그저 충실히 사는 것이 베스트. 

- 하나님은 내일 실천해야 할 정의나 자비의 행동을 계획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만큼'만 생각하길 바란다.

- 하나님의 이상형은 하루 종일 후손의 행복을 위해 일한 다음 (그 일이 자기 소명이라면) 그 일에 관한 생각을 깨끗이 털고 결과를 하늘에 맡긴 채 그 순간에 필요한 인내와 감사의 마음으로 즉시 복귀*하는 것.

- 사단은 인간이 무지개를 잡으려고 끝없이 쫓아가느라 지금 이 순간에는 정직하지도, 친절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하게 사는 것이며 현재 제공되는 진정한 선물들을 미래의 제단에 몽땅 쌓아 놓고, 선물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

- 막연히 미래는 좋을 것이라는 것 잘못된 희망이나 주문일 수 있다.


#16 열여섯 번째 편지 : 진정한 '겸손'의 덕목은 정말 영혼을 가난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풍성하게 만드는 거 같다. 거짓된 것은 거부하고, 내게 양분이 될 일이라면 토를 달지 않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내게 생겼으면 좋겠다.

- '맞는' 교회를 찾다 결국 교회 감별사 내지 감정사가 될 수 있다.

-  계급이 다르고 심리가 다른 인간들이 하나님이 원하는 종류의 연합을 이루는 곳, 교회.

- 거짓된 것이나 무익한 것들을 거부한다는 점에서는 진정으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판단하지 않는 것 = 자신이 거부하는 대상에 관해 생각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앞으로 양분이 될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토를 달지 않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 ->> 이런 자세로는 어떤 설교나, 책을 읽어도 영혼의 울림을 누릴 수 있다.****


#17 열일곱 번째 편지 : 겉으로 보이는 화려하고, 과하고, 높은 것만 추구하는 게 탐식이 아니라 검소하고 작아 보이더라도 그것에 집착하고, 욕심부리고, 나만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단이 좋아하는 나의 탐식. 내 삶에서 내 고집, 내가 원하는 것만 추구하는 태도가 얼마나 많은지...

- 인간의 영혼을 낚는 수단, 탐식.

- 아무리 검소하게 먹는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을 번거롭게 하면서까지 원하는 걸 먹으려는 결심이야말로 탐식.

- '그저 내가 원하는 것'만 추구 -> 배후에 자기만 생각하는 욕구와 지금에 감사하지 않는 불만, 불평.

- 사단은 원하는 것이 주어지지 않을 때 '짜증' 나게 한다.

- 날마다 실망하면 날마다 짜증도 늘어나게 되는 법.

- 사단은 올바른 자아성찰 못하게 하고, 책임전가 등 원인과 출처를 알지 못하게 한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나의 마음이 자만하고 믿음이 부족해서 악마의 손에 걸려들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게 만듦.)


#18 열여덟 번째 편지 :

- 하나님이 요구하는 상반된 두 가지, 철저한 금욕과 일부일처제. 사단은 금욕을 아주 어려운 일로 만들어 놓았고, 일부일처제로 탈출해 가지 못하도록 애쓰고 있다.

- 사단은 '사랑에 빠졌다' 이런 흥분 상태, 이 감정만이 결혼의 근거, 결혼한 후에도 지속돼야 하고, 그렇지 못한 결혼생활은 할 필요가 없다고 속삭인다.

- 지옥의 철학 :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과 별개' 자기가 확장되려면 다른 사물을 밀어내거나 흡수해야 한다. '존재한다'='경쟁한다'

- 하나님의 철학 : 여러 개인 동시에 하나, 한 자아한테 좋은 것은 다른 자아한테도 좋은 것.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사랑* 때문.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도 하나인 동시에 셋.

- 유기체 : 각 요소들이 서로 경쟁하게 되어 있는 자연의 숙명을 거슬러 서로 협력하게 되는 것.

- 가족도 이와 같은 유기체, 서로 의존하고 부양하려는 욕구로 더 독자적이면서도 뚜렷한 의식, 책임감 있게 연합. 가족 시스템, 이 또한 사랑을 배우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

- 결혼 = 한 몸. 한 몸은 성교의 진짜 의미를 알기 쉽게 표현한 말. 남녀는 잠자리 후 '애정과 가정'*을 가진 초월적인 관계가 성립된다. 한 몸은 하나님과 내가 애정과 가족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듯, 신랑과 신부가 하나가 되는 것.(바울은 부부 사이 외에도 '한 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음.)

-  하나님은 결혼을 '행복하게 결혼한 부부' 내지는 '사랑에 빠져 결혼한 부부'라고 말한적 한 번도 없음. '사랑에 빠졌다'는 결혼 전이 아니라 결혼 후 더 깊어지면서 약속*된 애정과 가정(가족)의 사랑인 것.

- 고로, 결혼에 있어서 감정적, 흥분, 사랑이라는 것만으로 결정해서는 안된다. 사랑에 빠지지 않아도 주님이 예비한 신랑, 신부가 있을 수 있고, 감정적으로만 끌려도 결혼의 근거는 아니라는 거.


#19 열아홉 번째 편지 :

- 사단은 하나님이 인간을 사심 없이 사랑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진짜 동기가 숨겨져 있을 거라 생각한다.

- '사랑', '애국심', '독신생활', '금주', '교육' 등 '좋으냐' '나쁘냐'의 토론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주어진 상황의 심리 경향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느냐, 사단에게 더 가까이 가느냐 하는 것뿐.

- 사단은 인간의 성향에 따라 콧대 높은 금욕주의를 주입하거나, 냉소적인 형태의 관능을. 감정적이고 잘 속아 넘어가는 사람에게는 문학 작품을 이용해 감정적이고 비극적인 간통 관계의 '사랑'을 가치 있게 주입.

- 사단은 '사랑에 빠진다'의 감정을 이용해 자살, 살인, 비극적인 결혼생활로 몰아간다.

- '사랑에 빠진다', '건강과 질병', '늙음과 젊음', '전쟁과 평화' 등 영적인 삶의 관점에서 볼 때 가공되지 않은 원료일 뿐 -> 우린 하나님 안에서 원료를 좋게, 건강하게 사용해야 된다?!


#20 스무 번째 편지 :

- 사단은 '순결', '사랑'에 대한 오해를 만들고 주입시킨다.

- 사단은 오래전부터 성적 '취향'을 총체적으로 오도하는 작업을 해왔음. 대중 예술가, 의류업자, 배우, 유행을 통해. -> 이는 배우자를 영적으로 도와 행복하고 풍성한 결혼생활을 높이는 신붓감이나 신랑감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 사단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갈망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 남자가 어떤 비너스를 상상하냐에 따라 욕망도 질적으로 달라진다. 지상의 비너스와 지옥의 비너스, 지상의 비너스는 언제라도 사랑할 준비, 결혼할 준비, 상호 존경과 자연스러움의 황금빛 욕망. 지옥의 비너스는 동물적으로 갈망하는 욕망. 여자를 노예나 성적으로만 취급.


#21 스물한 번째 편지 :

- 인간은 권리의 침해를 느낄 때 분노한다. 자기의 정당한 요구가 거절당했다는 느낌에서 나오는 것. 삶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할수록 분노도 높아지고, 성질도 나빠진다.

- 사단은 인간에게 내 시간은 나의 것, 내 몸은 내 것 등등 내가 주인이라는 의식을 심어준다.

- 결국, 인간들은 자기 영혼, 자기 육체가 누구 것인지 알게 되는 날이 온다. 마지막 날, 지옥과 천국 앞에서.


#22 스물두 번째 편지 :

- 사단의 웃음거리를 찾아낼 수 있는 그리스도인!!

- 그 그리스도인의 가정에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사단이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신비로 감싸여 있다.


#23 스물세 번째 편지 :

- 사단은 인간의 영성을 없앨 수 없다면 부패시키는 쪽을 택한다. ex.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기독교에 관심 있는 자들의 가필과 왜곡으로 기독교 전통과 대조되는 '역사적 예수'로 영성을 부패.

- 말씀 자체로의 기록에서 뭘 덧붙이고, 묵살하고 과장하며 추측성의 '역사적 예수'를 만든다.

- '예수'를 현대적 의미에서 위인, 만병통치약을 파는 기인으로 만들어 '예수' 자체에 대한 인물과 가르침은 알 수 없게 함. 단지 다른 모든 위대한 도덕적 스승 정도로 여기게 함.

-  '역사적 예수'를 구성함으로써 그저 있을 법하고 막연하며 그림자 같은 기괴한 인물, 낯선 언어를 쓰는 인물로 대체해 '헌신의 삶'을 무너뜨린다.

- 예수의 전기를 단순한 전기로 취급해 진정한 믿음과 회개, 구속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함.

- 초창기 인간들은 단 하나의 역사적 사실 (부활)과 단 하나의 신학적 교리(구속)만으로 회심했다.***** (어떤 정치적, 사회적, 지식적 의미보다 말씀 그대로의 진리 그대로의 핵심 복음, 십자가만 제대로 알아도 회심이 가능??!!)

- 하지만 기독교가 정치적 삶에 제대로* 흘러가게 된다면 정말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 (왜곡과 가감이 없다면?)

- 사단이 간절히 바라는 바! 인간들이 기독교를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 출세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것! 하다못해 사회 정의를 위한 수단로라도!


#24 스물네 번째 편지 :

- 사단은 무지와 순진함으로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를 즐거운 집단과 지루한 집단, 지적인 집단과 무식한 집단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 교만이 들어면 공동체나 믿음 생활 안에서 자신의 위상,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 자기한테 걸맞은 수준에 집중해 외식하는 자의 수준으로까지 갈 수 있음.

- 우리 그리스도인, 내 편 = 사회적 허영심의 조장.

- 겸손치 않으면 자기의 위상만 누리고 느끼고 싶어 하며 사랑과 용서, 용납에 대해서는 무뎌지게 된다.

-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보고, 그 외의 허영심, 외식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함.


#25 스물다섯 번째 편지 :

- 사단이 바라는 바, '기독교와 무엇 무엇'이라는 심리상태를 유지. 신앙이 있어야 할 자리에 무언가 기독교적 색채를 띤 유행을 앉히기.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무조건 질색하게 만들기.

- 인간들이 열정이 식었을 때는 열정의 위험성을 폭로하는 사조를 유행시키고, 잔인한 시대에는 감상을 경계하게 하고, 나태하고 게으른 시대에는 체면을 경계하게 하는 식.

- 하나님은 인간이 먹는 걸 즐기듯이 변화도 즐기게 해 놓았다. 그러나 먹는 것이 그렇듯이 변화 역시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곤란하니까 불변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어 변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균형*을 맞추어 놓은 것.

- 하나님 안에서 불변과 변화를 사랑하며 균형을 맞추면 새로움과 친숙함을 동시에 맛보며 만족할 뿐 아니라 황홀감까지 느낄 수 있다.

- '옳은 일인가', '신중한 일인가', '가능한 일인가' <-> (반대) '우리 시대의 전반적 조류에 부합하는 일인가?', '진보적인 일인가, 반동적인 일인가', '역사에 흐름에 맞는 일인가"

- 사단은 진짜 필요한 질문들은 무시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

- 사실 미래의 모습이란 상당 부분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는데 미래에 기대어 지금 선택을 내리려고 든다***

- 사단은 '불변하다'라는 기술적 형용사를 '정체되다'라는 감정적인 형용사로 바꾸어 버렸다.

-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숭고한 가치와 진리를 잘 보호하고, 유행에 동조하는 것이 아닌 균형에 맞는 삶을 살아내자!


#26 스물여섯 번째 편지 :

- 연애기간, '사랑'이라는 모호한 뜻으로 문제들을 보류하거나 연기한 상태면서도, 정작 본인은 사랑의 힘으로 이미 해결했노라고 착각할 수 있는 시기.  (문제들을 은밀하게 악화시켜 고질병으로 만들 기회)

- '사랑'이라는 적극적 개념이 '비이기주의'소극적 개념으로 바뀐 것.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자기 이익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이익을 포기하는 것. (진정한 포기가 아닌 체면?! 가면?!)

- 사단은 내 뜻을 양보하는 데서 오는 진정한 기쁨*을 '비이기주의'로 겉치레만 흉내 내 누리지 못하게 하고, 결혼 후 희생을 의무와 답답한 법칙으로 정하게끔 유도.

- 건강한 의사소통은 각자 자기 뜻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

- 소소한 진짜 이기주의보다 자의식*이 강한 비이기주의**의 초기 징후들이 더 악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 우리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 우리 스스로 힘으로는 그것을 채울 수 없다는 것. 주님의 사랑*을 구해야 된다는 것.


#27 스물일곱 번째 편지 :

- 사단은 '자기 의지의 힘으로 마음을 추스른 후, 아무 일도 없었던 양 평상시처럼 기도하도록 부추겨' 진솔하고 솔직한 기도를 방해한다.

- 사단은 '겉보기 경건한 근거'에 속아 넘어가 일용할 양식과 이픈 이웃들을 기도하라는 명령을 어기게 한다.

-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도 고차원적인 양식이 아닌 현실적이고 노골적인 간구만 하게 만든다.

- 또 사단은 기도가 부조리하고 객관적인 결실을 하나도 맺지 못한다는 의혹과 의심을 심는다.

- 기도한 대로 되지 않으면 간구해 봤자 소용없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설사 기도한 대로 이루어져도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 인간은 시간을 궁극적 실재로 믿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식과 시선은 다르다. 시간과 공간의 매 지점에서 창조 전체가 작동하고 있다. '한없는 현재'속에서 지금을 보고 있는 것!!!***

- 인간은 영적인 세계 전체를 육체의 세계 전체에 끌어다 맞추려 든다.

- 책을 볼 때 시대적 흐름 '이것이 진실인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원천인가'. '행동을 바꿀 수 있는 것인가'의 질문보다 '이 문제의 현 단계', '이 사람의 말은 일관성 있는가'. '전반적인 단계에서 어느 부분의 단계인가', '후대의 저자들에게 어떤 영향 끼쳤는가', '얼마나 잦은 오해를 받았는가' 등

- 이런 흐름 때문에 옛날 책에서 지혜를 얻는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현시대의 평가'를 중요시하기 때문?!

- 사단은 각 세대를 단절시키고, 배움이 세대 간 자유로운 교환의 장이 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끝내 지혜와 진실이 막히고, 수정되지 못하게 한다.


#28 스물 여덟째 편지 :

- 사단은 '중년'이라는 길고 지루하고 단조로운 세월을 세상에 안위하고, 집착하게 만든다.

- '풍요로운 중년기'는 '세상에서 내 자리를 찾았다'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은 세상이 자기 속에서 자리를 찾은 것.

- '이 땅이야말로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고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천국 소망을 없앤다.

- 사단은 남은 시간을 활용해 불행의 연속, 쇠락, 수없이 넘어지는 유혹을 이길 수 없는 절망감을 계속 심는다. 그래서 무미건조함, 모호한 원망, 영혼을 마모시켜 소진케 한다.

- 사단은 천국 소망을 정치나 우생학, 과학, 심리학 기타 등등의 힘으로 이 땅의 천국으로 대체하려 한다.

- 경험은 착각의 어머니. 사단은 '경험'을 이용하고 왜곡해 천국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29 스물아홉 번째 편지 :

- 사단은 미덕을 생산해 낼 수 없다. 다만 하나님이 준 자질들을 이용할 뿐.

- 증오는 그럭저럭 만들 수 있다?! 증오심을 끓어 올려 자신의 증오가 아니고 남을 위한 증오로 속이고 또 대신 '용서'할 수 없게 한다.

- 비겁함은 순수하게 고통스러운 악덕. 미리 생각할 때도 막상 겪을 때도 나중에 돌아볼 때도 끔찍한.

- 증오는 두려움이 강해질수록 심해진다. 용기를 꺾어 증오와 두려움을 만든다.

- 하지만 하나님은 비겁함 앞에 용기를 부어주신다. 그리하여 미덕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깨닫게 하신다.

- 비겁함 ->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혐오하게 됨 -> 회개와 겸손으로 갈 수 있음.

- 위험과 위기 속에서 자신의 비겁함, 중요성, 용기를 발견할  있다. 평화로운 평상시엔 선과 악이 분명하지 않고 무시할 수 있다. ex. 빌라도도 위기가 닥치기 전까진 자비로운 인간이었다.

-  겁과 두려움, 비겁함은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게 될 수도 있다. (죄인, 연약함, 부족함 등 깨닫고 회개로 나가면 베스트) but 겁, 두려움만 자극받아 커지면 절망으로 끝난다. 회개로 방향을 돌려야 하는 것!

- 절망을 일으키는 죄보다 절망 그 자체가 더 큰 죄.

- 끊임없이 막연한 생각만 부추겨 간단한 규칙, 진리는 잊게 하는 게 사단의 전략.

- 용기가 아닌 미신에 기대게 하는 것, 자기의 의지와 결심에 기대게 하는 것. -> 사단의 전략


#30 서른 번째 편지 :

- 피로는 극도의 온유함과 마음의 평정과 심지어 비전 같은 걸 만들 수도 있지만 분노와 악의와 조바심으로 인도되는 경우도 있다.

- 피로를 이용해 예기치 못한 요구를 받을 때 화를 내게 만들고, 피해의식을 만들어 버린다.

- 거짓 희망, 본인이 만든 거짓 희망, 한계선을 정해놓고, 실제로 한계치가 넘어갔을 때 '이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라고 느끼게 만든다.

- 사단은 인내, 순결, 강건함 등 구원이 코앞에 이르는 순간에 그리스도인을 굴복시키는데 재미를 느낀다.

- 물리적 사실만이 '실제'이며 영적인 요소들을 모두 '주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사실은 인간을 좌절시키고 타락시키는 모든 것이 영적인 요소들이 주된 '실제'고 그 요소들을 무시하는 인간은 현실도피주의자가 된다. (ex. 아이를 낳을 때 피와 고통은 '실제', 출산의 기은 주관적인 관점에 불과)

- 사단이 만들어 놓은 '실제'와 '영적인 요소' 뒤틀린 시선을 회복하자!


#31 서른한 번째 편지 :

- 사단의 사랑은 , 서로를 잡아먹으려는 탐욕과 욕망일 뿐...

- 하나님을 만난 사람, 두 눈이 갑자기 환해지면서 사단이 이제껏 자기 속 어느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깨닫는 동시에 사단이 더 이상 그 어느 곳도 차지할 수 없게 된다. (할렐루야! 사단을 간파, 나 자신을 분별?!)

- 오랜 상처에서 딱지가 떨어져 나간 듯, 조개껍데기처럼 흉측한 허물을 벗은 듯, 젖은 채 몸에 착 달라붙어 있던 더러운 옷을 영원히 벗어던진 듯 시원함, 궁극적으로 다 벗어던진 채 완전하게 씻는!!!! 순전하고도 즉각적인 해방 ->>> 하나님 안에서 영안이 열리고 치유받았을 때???!!!

-  공포*란 처음엔 악화일로를 치달으며 병목같이 좁다란 궁지로 밀려들어가지만 막상 '끝장이다'하는 그 순간! 보란 듯이 병목에서 빠져나오면서 모든 게 갑자기 순조로워지는 것. (ex. 이를 뽑을 때도 통증이 점점 심해지다가 한순간에 끝나 버리는 것처럼. 꿈도 악몽으로 변하는 순간 깨게 되는 것처럼.)

- 하나님을 만난 인간, 신이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대화를 나눈다!!! ("당신은 누구시죠?"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었군요"로 말한다.)

-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 오랜 기억들을 일깨우며...아기 때부터 고독한 순간마다 경험했던 느낌, 어떤 친구들이 자기 주변에 함께 있어 주는 듯한 그 아련한 느낌*이 드디어 이해가 되는 것! -> 이런 깨달음은 하나님의 영과 자유롭게 사귈 수 있게 해 준다.

- 하나님을 맛본 자, (자신을 혐오하며 자기 죄를 낱낱이 인식하고 고백_회개와 은혜를 맛본 자) 계속해서 고통을 겪어야 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 고통을 이 땅의 어떤 쾌락과도 바꾸려 들지 않을 것.

- 회심과 변화된 삶. 천국의 삶. 곧 고통과 쾌락이 유한한 가치를 뛰어넘은 세계, 사단의 산수가 먹혀들지 않는 세계로 휩쓸려 들어간 것. (ex. 평생 사랑했던 여자가 죽은 줄만 알았더니 사실은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지금 바로 문 앞에 와 있다는 소식을 막 들은 남자한테 시뻘건 연지를 덕지덕지 바른 창녀의 유혹은... 메스껍기 그지없는 유혹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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