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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 Nov 11. 2017

모든 타인의 삶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잖아요.

'땐뽀걸즈' 이승문 PD

  정말 오랜만에 만난 이야기였다. 전문직 이야기 아니면 사극이 주류인 요즘 스크린에 땐뽀(댄스스포츠)를 추는 학생들이라니.


  4월 KBS 스페셜로 방송됐던 다큐 ‘땐뽀걸즈’는 하필 같은 시간대 대선 토론이 편성돼 잊혀질 뻔 했다. 그러다 상상마당 시네마의 눈에 띄어 김사월과 윤중의 노래를 입혀 9월 상영을 시작했고 며칠 전 관객 5000명을 넘겼다. 전국 영화관에 걸리는 상업 영화에 비하면 소박한 성적이지만 통상 다큐 영화 관객이 1000명~2000명 언저리를 맴돈다고 한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9점 10점 평점 세례를 퍼붓고 있다.


  영화의 매력은 있는 그대로의 학생들이다. ‘학창시절이 가장 좋을 때’라는 말은 때로 그 시절 겪는 어려움이나 고민이 별 것 아니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렇다고 ‘입시 지옥 때문에 고생한다’는 말은 왠지 ‘학생은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못박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 사실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중에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재밌게 보낼 때도 많으니까.


  땐뽀걸즈는 그렇게 마냥 불쌍하지도, 아름답지만도 않은 거제여상 땐뽀반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연출한 이승문 KBS PD를 만나봤다.




- 거제여상은 어떻게 찾아가게 됐나요?


“지난해 6월 KBS 스페셜로 발령이 나고, 소위 ‘입봉작’을 찍어야 했어요. 새로운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박했죠. 그래서 아이템을 찾다 조선업이 쇠락해 거제가 유령도시가 된다는 기사를 봤어요. 저긴 누군가 가서 찍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 생각한 형식은 ‘거제 200일의 기록’이라는 르포 형식의 다큐 였어요. 노동자의 삶을 기록하겠다고 아이디어를 내고, OK 받아서 갔는데 막상 갔더니 이야기를 잘 만들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2박 3일 일정으로 내려갔는데 둘째날 ‘어떡하지’라는 생각만 났어요. 그러다 렌터카 사무실 지도에 ‘거제여상’이란 이름이 보이더라고요. ‘여상’이란 단어 자체가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었고, 이 친구들은 졸업하고 취업을 할테니 연관이 있을 것 같아 전화해서 찾아갔죠. 


처음엔 학교의 모범생,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을 만났어요. 뭔가 다른 게 없을까 계속 고민했는데 교감 선생님이 마침 학교 명물이라며 ‘땐뽀반’을 소개해주었습니다.”


-거제를 기록하겠다가 난데없이 땐뽀반을 찍겠다고 했을 땐 반응이 어땠나요?


“사실 내부에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거기다 저희 팀장이 일본 영화 덕후여서 훌라걸즈랑 스윙걸즈 얘기를 해주셔서 쉽게 채택됐죠.”


- 저는 영화를 보면서 풀 몬티나 빌리 엘리어트도 생각났어요. 그런 영화들이 감동인 이유가 아이러니가 드러나서잖아요. 밖에서 보면 울기만 하는 상황인데 그 안에서 오히려 웃고 있으니 더 감동적인..


“땐뽀반 친구들을 처음 봤을 땐 개별 사연을 모르고 시작했어요. 차차 알아가자고 생각을 했고. 사연을 알게 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중학생 때 IMF를 겪었는데. 외부의 거대한 충격이나 위기가 개인의 삶에 드러날 때는 꼭 극적이고 선명하게 드러나진 않잖아요. 복잡하고 알 수 없는 부분에서 그런 것들이 드러나죠. 이 친구들에게도 그랬던 것 같아요. 단지 극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인데 그래서 오히려 진실에 가깝죠.”


영화에서 아이들은 조선소에 취직하는 걸 당연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불황으로 누군가의 부모님 식당엔 손님이 줄고, 또 다른 아이의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두고 식당을 차리기 위해 서울의 학원으로 떠난다. “왜 회사를 그만두느냐”는 딸의 질문에 아빠는 “아빠는 관두면 안되나?”라고 되물으며 웃고 만다.


- 클로즈업 신이 많아서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감정을 잘 보여주려는 의도인가요?


“기술적 한계가 있었어요. 영화가 아니니까. 촬영감독이랑 보조 3명이 촬영했어요. 모든 장면이 약속된 영화였다면 그런 클로즈업 신이 많지 않았을거에요.


그런데 이규호 선생님(땐뽀반 지도 교사)과 친구들을 데리고 1박 2일로 테스트 촬영겸 답사를 갔는데. 촬영감독과 찍고 올라와서 모니터를 보는데. 사람들 눈이 카메라에 찍히면 진짜인지 아닌지 느껴지거든요. 사실 이규호 선생님 같은 분은 처음에 의심을 해야 하잖아요. 방송을 본인의 성과로 삼을 수 있는데. 춤출 때 눈빛이 정말 진지하고 재밌어보였어요. 그런 눈빛을 많이 담고 싶었던 것은 있죠.”


- 손 잡는 장면도 많이 나와요.


“전국 여상에 사실 힙합 동아리가 많아요. 이 친구들도 힙합을 잘 추는, 기본적으로 춤을 잘 추는 애들이에요. 무슨 차이냐. 땐뽀는 파트너가 있어요. 대부분의 노래가 사랑이 테마고 서로의 윤리 예의 거리 이런 얘기들이라 춤 동작 하나하나가. 서로 이렇게 풋풋한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귀엽잖아요. 그걸 실제로 많이 찍었고 많이 넣으려고 했어요.”


20년 동안 학교에서 눈에 띄는 학생들을 데려가 '땐뽀'를 가르친 이규호 선생님. 영화에서 아이들 주라고 치킨 한 마리를 더 가져다준 배달부도 그에게 예전에 땐뽀를 배웠던 학생이다


- 사실 감동의 중심에는 이규호 선생님이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의 개인사를 거의 못 담았는데, 본인도 그걸 원치 않으셨어요. 개인사도 질곡이 있으시고. 본인이 이미 자기 경험들에 대해 정직한 것 같아요. 스스로가 고등학생 때 스무살 때 느꼈던 것들을 왜곡하지 않고. 친구들이 그런 상황에 있을 때 같은 시선에서 바라보셨어요. 고등학생이 담배 피고 그런 것에 대해서 봐준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일단 이해를 하는거죠. 그럴 수 있지. 그런게 일단 있는 거 같고.


이규호 선생님을 보면서 평등한 사제관계가 뭘까 생각했어요. 저는 그런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나에게 중요한게 이 사람한테도 가장 중요한거야. 서로 지켜야 하는 게 같은 거죠. 그래서 땐뽀하면서 화도 낼 수 있고. 연습에 빠지면 섭섭할 수도 있고. 열심히 하고 이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됐고.


선생님이 그렇게 해도 결국은 선생님이니까 조금만 잘못 내딛으면 아이들이 문을 닫을 수 있는데 선생님이 괜히 먼저 사연을 캐고 다닌다던가 그런 일을 안했어요. 아마 지금도 아이들 사연에 대해서 저보다 모르실거에요. 일부러 안 물어보신대요. 그런 걸 듣게 되면 다르게 행동하니까. 다만 먼저 다가오면 아낌없이 다 내어 주시고.


20년 전부터 땐뽀를 가르치기 시작하셨는데. 처음에는 남고에서 벌서고 맞고 있는 애들을 데려다가, 쟤네는 절박하니까 내가 데리고 가르치면 되지 않을까 해서. 그 친구들에게 “4대1로 당구를 쳐서 이기는 사람 소원을 들어주자. 너희가 이기면 술도 사주겠다” 이러면서 다가갔고, 그렇게 땐보를 시작했대요. 사실 선생님이 당구를 엄청 잘 치시거든요(웃음)


- 땐뽀반 엠티 장면에서, 한 아이가 "내가 어떤 동작을 계속 연습해서 결국에 해내는 때 느끼는 감정, 그걸 뭐라고 해야되지?"라고 하자 누군가 "오르가즘?"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정말 재밌었어요. 근데 단순히 웃긴게 아니고 뭔가 신선하고 통쾌한 느낌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혹시나 시사 과정에서 그 장면을 갖고 뭐라고 하면 내가 이건 끝까지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어떤 충만한 느낌을 자기 언어로 표현한 거잖아요. 그게 마치 그런 것 같아요. 말 실수가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 거 같아요. 그런 걸 느끼면서 살아간다는 게 즐길 줄 알고 느낄 줄 아는 거잖아요."


교권 침해라는 단어는 교권의 입장에서 쓰는 것이잖아요. 주류 미디어 산업에 있는 대부분이 40-50대 남성이니까. 학습권 침해나 학생 인권 침해라를 말을 타이틀로 뽑진 않아요.


- 학생들을 대하는 방식이 편견이 없어서 좋았다는 평가가 많아요.


"교권침해라는 단어는 교권의 입장에서 쓰는거잖아요. 쉽게 얘기하면 저를 포함해 실제로 주류 미디어 산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은 40-50대 남성이에요. 학습권 침해라는 말을 쓰거나 학생 인권 침해라는 말을 타이틀로 뽑진 않죠.


이 친구들을 하나의 인격으로 보는 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거고. 저는 그보다 불량 청소년이 스스로 변화하는 이야기라는 형식 안에 안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 친구들이 불량하지 않으니까요. 공부 잘하고 모범생인 친구의 마음 속에 악마가 있을 수 있고 사고치는 친구들 마음에도 천사가 있으니까. 어른들도 그렇고요.


언론인이 전문가일 수 있었던 시간은 이미 지나갔어요. 결국 나도 모든 일에서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고, 내가 알아낸 것을 찍어서 "국민들아 이거야!"라고 얘기하는 시대는 끝난거죠. 저같은 휴먼 다큐 하는 사람은. 사실 저는 모든 사람의 인생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편견 덩어리죠. 모범생으로서 살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 사람들을 똑바로 바라볼 자격이 없어요.


그래서 작업 자체가 친구들의 뭔가를 계속 찾아내고 캐내는 작업이기보다는. 나를 깨우치는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 저라고 왜 그런 친구들에 대한 편견이 없었겠어요. 그런데 가뜩이나 언론이 비대해진 세상에서 많은 엘리트들이 언론에 흡수되고 있는데. 다 함께 특권이고 한계임을 인식할 수 있는 고민을 해본다면 어떨까요."



땐뽀는 파트너가 있어요. 대부분의 노래가 사랑이 테마고 서로의 윤리 예의 거리 이런 얘기들이라 춤 동작 하나하나가. 서로 이렇게 풋풋한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귀엽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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