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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 Nov 21. 2017

스타트렉 51년 역사상 첫 한국인 작가를 만나다

'스타트렉:디스커버리' 작가 김보연이  들려주는 미국 드라마 제작 과정


1985년 태어난 김보연은 스타트렉:디스커버리 Writer's room에서 executive writer로 일하고 있다. (미국 드라마에서 작가의 직함은 1~2년차 staff writer, 3년차 executive writer 등으로 나뉜다) 국적은 한국인이지만 그녀가 가진 문화적 배경은 사실 좀 독특하다. 우선 3년 주기로 나라를 바꿔가며 살았고, 이번 인터뷰도 한국어보다 더 익숙한 영어로 진행했다. 그녀는 '어떤 언어도 내가 마스터했다고 느낀 적이 없던 것 같다'고 털어 놓는다.


그런 그녀를 헐리우드로 데려간 것은 '내 주변 어느 누구도 나보다 TV쇼를 많이 본 사람이 없다'고 말할 정도의 애정과 대학에 입학하며 '3년 뒤에는 꼭 TV작가로 활동하겠다'며 장기/단기 계획을 세운 치밀함이다. 그런 그녀에게,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기에 짜임새있는 논리가 꼭 필요한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라는 장르가 딱 맞았다는 점도 유리한 지점이었는지도 모른다.


트위터에 커피잔에 꽂힌 연필을 픽셀로 그린 프로필 사진을 걸어놓고 '오늘은 반지의 제왕 사운드트랙을 몇 시간 째 들으며 집필 중'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스타트렉: 디스커버리'의 뒷이야기와 미국 드라마 작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타트렉:디스커버리'의 김보연 작가


- 미국 드라마의 작가팀은 어떻게 드라마를 만드나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쇼를 만드는 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요. 텔레비전 쇼에서 그 마을의 시작점은 작가죠. 통상 작가 6~12명이 ‘작가진(writers room)’을 구성해요. 여기 소속된 작가들은 TV쇼를 집필하고 제작하는 모든 과정에 관여해요. 작가진의 보스인 쇼러너(showrunner)는 제작 전 후 모든 상황을 처리하죠. 


작가들은 ‘마을’의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일해야 해요. 거기엔 연출자, 프로듀서, 네트워크/스튜디오 경영자, 에디터, 배우 등등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죠. TV쇼는 수백 명을 고용하는 대규모의 작업이니까요. 작품마다 작가진 구성이나 운영 방식이 달라요. 하지만 대부분 각자 다른 백그라운드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골고루 배치하려고 해요. 작가들 사이에 경력 차이에 따른 구분은 있지만, 모든 작가들은 동등하게 집필에 참여해요. 고도의 협력이 필요한 과정이고, 여기서 가장 좋은 아이디어만이 살아남죠. 


작가들은 직장인들과 똑같이 매일 큰 회의실에 모여요. 그리고는 이야기를 ‘돌파(break; 브레인스토밍을 의미하는 작가들의 은어)’하기 위해 계속 아이디어 회의를 해요. 캐릭터, 주제, 플롯에 대한 깊은 토론과 논쟁의 연속이죠. 플롯을 짰다가도 완전히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해요. 모두가 동의하는 최고의 스토리를 만들 때까지요.


보통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쓰기 전에 시즌의 얼개, 캐릭터의 스토리 전개 라인을 먼저 정해요. 에피소드는 각 작가들이 나눠서 하나씩 쓰게 되죠. 보통 경력순으로 에피소드가 분배돼요. 그러니까 한국과는 다르게 작가진에 있는 작가라면 누구나 하나의 에피소드를 쓸 기회를 갖게 되는거죠. 내가 쓸 에피소드가 정해지면, 나는 그 에피소드의 집필, 수정, 프로듀싱까지 책임지게 돼요. 그리고 그 에피소드가 완성되면 내가 모든 크레딧을 가져요.


한 에피소드의 큰 주제를 브레인스토밍 하는 데만 보통 1~2주가 걸려요. 에피소드를 맡으면 5~10일 정도 집필 기간이 주어지죠. 스크립트를 써서 넘기면 수많은 승인과 회의 절차를 거쳐요. 그 다음에 촬영을 시작하는 거죠. 일반적인 TV쇼의 한 에피소드 촬영 기간은 8~9일 정도 걸려요.


미국의 TV쇼 집필과 제작과정은 아주 다양한 파트가 맞물려 돌아가는 복잡한 기계와도 같아요. 제가 설명한 것은 아주 표면적인 것들에 불과하지만, 작가룸이 돌아가는 대략적인 과정은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 2017 CBS Interactive. All Rights Reserved.


- 작가로서 스타트렉을 한국 팬들에게 소개해주세요.

인터뷰를 하는 지금 ‘스타트렉: 디스커버리’가 미국 캐나다를 비롯한 전세계 188개국에서 성공적인 첫 방송을 마쳤어요! 디스커버리는 12년 만에 TV로 돌아온 스타트렉 시리즈에요. 스타트렉 프랜차이즈는 51년의 역사를 자랑하죠.


디스커버리는 스타트렉의 오리지널 시리즈(그 유명한 캡틴 커크와 스포크가 출연했죠!)의 10년 전을 배경으로 해요. 행성 연합이 클링온들과 전쟁을 하던 시절이죠. 이야기의 중심은 소네쿠아 마틴 그린이 맡은 마이클 번햄이에요. 소네쿠아는 한국 팬들에겐 ‘워킹 데드’의 사샤로 익숙할거에요. 마이클 번햄은 스타십의 일등 항해사에요. 


디스커버리는 새로운 등장인물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텔링을 통한 스타트렉의 현대적 재해석이라고 보시면 되요. JJ 아브람스의 스타트랙 영화에 더 익숙할지도 모를 한국 팬들에게 디스커버리는 스타트렉의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 줄 관문이 될거에요. 물론 하드코어 팬들에게는 12년 동안 기다린 만큼, 기대에 부응하는 쇼가 되길 바라고요. 


또 아시아 여성이 선장으로 출연한다는 것도 한국 팬들에겐 반가운 소식이 될 거에요. 여성 선장은 스타트렉 역사상 최초에요. 


CW 채널의 역사드라마 Reign


- 어떻게 드라마 작가가 되었나요?

전 항상 창조적인 일을 사랑했지면, 글쓰기를 업으로 삼을 수 있다고는 절대 생각 못했어요. 학부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나서야 작가의 길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죠. 당시 저는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 TV를 많이 봤고, TV쇼들의 온갖 뒷 이야기를 찾아보고 읽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텔레비전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거죠. 


제가 쓴 대본이 이런 저런 공모전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 ‘아 내가 제대로 선택했구나’ 느끼기 시작했어요. 얼마 안가서 미국의 톱 필름 스쿨에 지원 했고 USC와 UCLA에 합격했어요. 2014년에 UCLA에서 극작가 MFA를 받고 졸업했어요. 제가 경험한 UCLA의 스크린라이팅 교육은 세계 최고급이었다고 생각해요. 


졸업한 다음엔 CBS 작가 멘토링 프로그램에 선발되었어요. 지원자가 수천명에 달한, 경쟁이 치열한 프로그램이었어요. 이 프로그램이 저에게 많은 기회를 열어주었고, 할리우드에서 작가로 바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어요.


저의 첫 작품은 CW채널의 ‘레인(Reign)’이에요. 3~4시즌에서 스태프 작가로 활동했어요. TV쇼 제작 과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엄청난 경험이었죠. 하지만 저의 꿈은 스타트렉처럼 사이언스 픽션쇼를 쓰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 꿈이 현실이 되었네요!


- 미국에서 일하는게 어렵진 않나요?

헐리우드에서 외국인, 아시안, 여성 작가로 일하는 것, 물론 어려움이 많아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다양성은 카메라 앞이든 뒤든 정말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죠. 비록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싸움이에요. 


운좋게도 제가 속한 두 단체가 큰 힘이 되어주고 있어요. CBS 다양성 인스티튜트와 CAPE(아시아 태평양 엔터테인먼트 연합;Coalition of Asian Pacifics in Entertainment)가 그곳이에요. 다양성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단체이고, 덕분에 제가 하는 싸움이 외롭진 않아요.


더 문제는 미국에서 살고 일할 수 있는 비자를 받는 일이었어요. 저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비자를 받기까지 아주 길고 지루하고 스트레스 받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어요.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드는 과정이어서 다른 사람은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전 다행히 아티스트 비자를 받을 수가 있었어요. 미국에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저 자신이 엄청나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프리랜서들은 누가 뭘 하라거나 언제 해야하는지 알려주지 않잖아요. 글쓰기를 커리어나 사업으로 삼는 건 오로지 자신의 몫이니, 자발성과 도전정신이 필요하죠. 


-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어떻게 미국 드라마 작가가 되었나요?

사실 제 삶이 좀 비정상적이에요. 저의 아버지가 외교관이었기 때문에 어릴 때 3년 마다 이민을 다녔어요. 포르투갈, 브라질, 일본, 베트남에 살고 고등학교만 한국에서 다녔어요.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어떤 언어도 내가 마스터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항상 받았어요. 그래서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이 저 개인에게도 큰 목표에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경험은 성공하고자 하는 열망과 그것을 위한 절제를 배우게 해줬어요. 이게 작가가 되기 위해서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왜냐면 작가는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만 하거든요. 프리랜서들은 누가 뭘 하라거나 언제 해야하는지 알려주지 않잖아요. 글쓰기를 커리어나 사업으로 삼는 건 오로지 자신의 몫이니, 자발성과 도전정신이 필요하죠. 


전 그저 좋은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았고, 내가 하는 일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어요. 미국의 필름 스쿨을 지원할 때도 유명한 학교에만 우선 지원했어요. 내가 가야할 길이 먼데,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그래서 극작가가 되기 위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작가 일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UCLA에 입학하게 된 것이 판을 바꾼 하나의 계기라고 생각해요. 학생 비자로 학교에 갔는데, 그 비자가 끝나는 3년 안에 뭐라도 해야했어요.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과 절박함 때문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입학할 때부터 3년 뒤에는 TV 작가가 된다는 걸 목표로 삼았어요. 만약 실패하면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항상 플랜을 생각하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플랜이 항상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준비하는 것도요. 제가 만약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를 나눠서 준비하지 않았다면 첫 작업을 따내거나 예술가 비자를 제 시간에 받지 못해 아주 곤란해졌을 거에요.


물론 미국에서 취업 비자를 받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아요. 계획대로 움직인다 해도 잘 안될수도 있어요. 그래서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하는 한국계 미국인은 많아도 한국인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죠. 하지만 그게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 한국 드라마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영화 중 좋아하거나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주로 미국 드라마를 보지만 작업할 때는 미드가 지긋지긋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한국 버라이어티를 많이 챙겨 본답니다. <쇼미더머니>는 매 시즌마다 너무 재밌게 보고 있구요, 최근엔 <효리네 민박>과 <미운 우리 새끼>가 너무 새롭고 흥미롭게 제작된 거 같아요. 한국이 많이 그리워서 특히 버라이어티를 봐요.


한국 드라마는 <미생>을 보고 감탄했었죠. 아! 그리고 <그들이 사는 세상> 보고 작가로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절대 미드에서 존재 할 수 없는 한국 특유의 찡함이 있었어요. 한국 영화는 LA 한인타운에 CGV가 있기 때문에 시간 날 때마다 보려고 노력해요. <곡성>이 최근 본 영화 중 최고였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설국열차’ 같은 사이언스 픽션 영화도 써보고 싶어요.  


미국은 지금 TV 컨텐츠의 황금기에요. 위기이자 기회죠. 그래도 좋은 작품은 입소문을 타고서라도 인정 받는다 생각해요.


- 요즘 미국 컨텐츠 업계의 이슈는 뭔가요?

미국은 지금 TV 컨텐츠의 황금기에요. 오리지널 콘텐츠가 정말 많이 쏟아지고 있잖아요. 제작자에게 다양한 플랫폼이 있다는 건 컨텐츠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어려움도 있죠. 수많은 콘텐츠들 중에서 눈에 띄기가 더욱 어려워지니까요. ‘히트작’이 된다는 게 거의 도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작가에겐 아주 신나는 상황이면서도 리스크도 커진 상황이에요. 게다가 시청자들도 점점 더 섬세하고 다양해지고 있잖아요. 그냥 텔레비전을 틀면 나오는 걸 보는게 아니라 ‘좋은’ 걸 찾아서 보니까요. 


그래도. 좋은 작품은 입소문을 타고서라도 인정 받는다고 생각해요. 시청자들이 전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작가로서 좋은 작품을 만든다면 사람들이 꼭 찾아줄 거라는 신념을 갖고 있어요.


- 마지막 한마디

스타트렉은 휴머니티에 관한 긍정적인 미래를 이야기하는 작품이에요. 스타트렉 최초의 아시아 여성, 한국인 작가로서 이런 주제를 다루게 됐다는 것이 무척 기쁘고 자랑스러워요. 한국에 계신 팬 여러분들도 51년 역사의 스타트렉의 ‘디스커버리’ 첫 시즌을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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