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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vera Nov 10. 2020

[임신 일지/#11] 우리만의 답

만약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면

  온 지구가 옆 동네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건 물론이고 우주까지 탐사한다는 이 최첨단 시대에도 생명의 영역은 아직도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연임신의 경우 난자와 정자의 결합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고 어떤 조합이 최상인지 알 수 없다. 남편의 이런 모습, 나의 이런 부분들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지만 사실 아기는 랜덤박스다. 그것도 태어나면 모두 개봉되는 게 아니라 커 가면서 내용물을 하나하나 풀어볼 수 있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생각한 랜덤 중 다운증후군은 없었다. 유전자 결함으로 인한 장애는 아예 후보로조차 생각해보지 않았다.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막연하게 아이가 건강할 것이라고 믿어왔고, 적어도 신체적으로 '정상'의 범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여태까지 겪어온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 세상이었고 그렇게 태어나도 쉽지 않은 세상이니까.

  상담 후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어렵게 입을 뗐다.

  "만약에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면 어떻게 할 거야?"

  "넌 어떤 생각인데?"

  "난 정말 솔직히... 키울 자신이 없어. 건강히 태어나도 서로 힘든 세상인데, 그 아이를 내가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아이를 원망하지는 않을지. 난 그런 그릇은 못 되는 거 같아."

  남편은 조용했다. 고위험군 소식을 듣자마자 만약의 경우를 먼저 생각한 나와 달리 남편은 여태까지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겠다고, 상상조차 하기 싫다고 피해 왔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떤 방향이든 우리가 합의한 결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만약에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아이에게도 너에게도 너무 미안할 것 같아."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에 이렇게 자세히 글로 남겨도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나의 기록에서 빼지 않기로 했다. 이것이 현실이고 가족 모두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임신, 출산, 육아를 막연하게 '정상적으로 행복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이런 상황에서 부부간에 합의점과 대책을 찾는 과정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 모두가 최대한 상처 받지 않도록 충분히 고민하고 답을 내야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 너무 쉽게 조언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 어떤 선택도 자신의 상황이 아니라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부부가 그들의 신념에 따라 신중하게 결정했는지,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

  무거운 이야기에 대한 결론을 도출했지만 우리 부부는 여전히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0.4%라는 확률은 여전히 낮아 보였고 아이에 대한 믿음이 더 강했다. 양수검사 위험성이 사랑이의 다운증후군 확률보다 더 높기에 우리는 NIPT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위험군으로 확진되다면 확률은 사실상 의미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의학적으로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에라도 NIPT에서 또 고위험이 나올 경우 결국 양수검사를 진행해 확실한 결과를 받아야 하는데 그런 상황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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