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입은 사람의 마음 씀씀이도 아주 중요한 에티켓이다
패션을 표현할 때 다양한 주장이 있다.
“누가 뭐래도 패션의 표현은 디자인이야.”
“무슨 소리, 컬러에 있어.”
“다 틀렸어. 패션의 궁극적 표현은 옷을 입는 사람의 몸매와 얼굴이야.”
옷차림 즉 옷의 디자인과 컬러도 중요하지만 옷을 입는 사람의 몸매, 인상, 키를 무시할 수 없는 점도 사실이다.
패션의 완성에 관해서도 이렇게 얘기한다.
“패션의 완성은 모자야.”
“아니야, 가방 또는 신발이야.”
“뭔 소리? 헤어스타일이지.”
“잘 모르시네. 선글라스야.”
“아니, 전부 틀렸어. 매니큐어 칠한 손톱과 발톱이야.”
당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느 하나라고 단정할 수 없다. 옷과 함께 멋을 내는 데 모두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
옷을 잘 차려입고 명품으로 둘렀는데, 식당 종업원의 실수에, 웨이터의 법칙이 무색하리만큼 화를 낸다면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된다. 결국 패션의 완성은 그 사람의 인격, 인성으로 대표되는 에티켓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는 옷차림도 에티켓이라면, 옷을 입은 사람의 마음 씀씀이도 아주 중요한 에티켓이다.
직장여성 P는 옷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다.
패션을 본다. 다른 사람에 비해서 조금 유별날 수도 있다.
P에게 있어서 패션은 사회생활에서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한다. 비싼 명품 옷을 입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옷 입는 스타일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나오는 에티켓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P는 직장에서도 누가 어떻게 옷을 입는지가 눈에 들어온다. 일부러 보려고 하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직원들의 옷차림을 보고 ‘디자인 촌스럽네, 컬러 매칭이 안 되잖아, 옷도 잘 입고 매너도 좋은 사람이야. 옷은 잘 차려 입었는데 나오는 말마다 빈정대잖아, 어휴, 일주일 내내 다 낡은 저 옷이네.’ 이렇게 생각한다.
다른 직원들은 자신의 옷 입는 스타일을 P가 보고 있는 줄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P는 직원들 중에도 자신이 옷을 어떻게 입는지 눈여겨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해본다. P의 눈에 들어온 직원들의 옷 입는 스타일과 행동은 저마다 달랐다.
P가 본사에 들어가서 간부회의를 마치고. 전무와 팀장 몇 명이 근처 잘 아는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들어갔다. 종업원에게 주문을 시켰고 식사가 나오기 전에 얘기를 나누었다. 종업원이 다가와서 반찬을 식탁위에 놓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때 발생했다. 종업원이 반찬그릇을 올려놓으면서 실수로 전무의 와이셔츠에 음식물이 튀었다. 전무는 옷을 잘 차려입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인물도 좋고 옷도 깔끔하게 잘 입어서 P는 전무를 멋쟁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옷에 신경 쓰는 전무가 그런 일을 당했으니 화를 내는 일은 당연하다며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팀장들이나 옆 식탁에 앉은 손님들은 이제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종업원에게 불호령이 떨어질 거라 예상했다. P도 이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종업원은 연신 죄송하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전무는 괜찮다면서, 물수건으로 와이셔츠를 닦으며 얘기를 계속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팀장 한명이 이렇게 물었다.
“전무님, 이런 질문을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까 종업원을 왜 나무라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거요. 김팀장, 그건 그냥 단순한 실수잖아요.”
P는 전무의 말을 듣고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전무는 옷도 잘 입지만 인격도 풍부한 사람이었다.
웨이터의 법칙이 있다.
이 법칙의 요점은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라는 것이다. 이해관계가 있는 당신에게는 친절하지만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옷 안에서 그 사람의 감추어진 인격이 드러난다.
P의 시야에 들어온 남자 직원들의 옷차림과 에티켓을 보자. 첫 번째 직원은 같은 팀에서 근무한다.
아직 젊고 미혼으로 매번 똑같은 양복 하나로 출근한다. 양복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그 양복이 이미 10년 이상 입은 양복처럼 색깔이 바래 있었다. 개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돈 벌어서 뭐하는지, 젊은 남자가 옷에 대한 투자를 전혀 하지 않는다. 패션 감각이 무딘 사람이었다.
P는 그건 절약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이 간소한 삶은 아니다.
그 남자 직원과 지나가다 마주쳤을 때, 웃으면서 ‘옷 살돈 없어요?’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매일 오래된 같은 옷을 입고 오는 남자에게서 무슨 호감이 생길 수 있을까? 소박하거나 검소하다고 생각하는 여자들도 있지 않을까?
P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상이 좋다는 것은 얼굴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옷차림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P였다.
이 직원은 업무 얘기 외에는 말이 없는 편이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 엘리베이터 앞에서의 예절, 식사할 때 등의 예절이 돋보이는 직원이다, 아직 여자 친구는 없는 듯하다.
P는 이 직원과 비슷한 또래인 자신의 아들을 떠올렸다.
아들 옷 입는 스타일에 대해서 거의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아들은 옷에 대한 욕심이 많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알고 잘 챙겨 입는다. 버릴 옷은 제때 처분하고, 살 때 좋은 옷을 사서 입는다. 집에 있을 때도 옷을 갖추어 입는다. 아무렇게나 입지 않는다.
P의 레이더에 잡힌 또 한명의 젊은 직원.
이 직원도 같은 팀 소속이고 기혼자다. 평소에 양복을 입고 다녀서 옷 스타일을 잘 몰랐다. 하지만 워크숍 가서, 옷 입은 모습에 살짝 실망을 했다. 지난번 워크숍에는 유행이 한참 지난 옷을 입고 왔다. 주머니 여러 개 달린 펑퍼짐한 면바지를 입고 왔다. 바지 길이는 어찌나 길던지 땅에 끌릴 정도였다.
이번 워크숍에 입고 온 옷은 더 우스꽝스러웠다. 옷의 수명은 대략 2년이라고 했다. 유행이 한참 지난 밤색 계열의 코르덴바지에 빨간 운동화를 신고 왔다. 유행은 돌고 돈다지만 이건 아니었다. 빨간 운동화가 걸작이었다. 거기다가 웃옷은 검정색 난방을 빨간색 카디건에 받쳐 입었다. 패션테러였다. 빨간색은 노란색이나 흰색을 받쳐 입으면 잘 어울리지만 빨강과 검정은 둘 다 어두워 안 어울린다. 본인은 좋아서 입겠지만 보는 사람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옷 입는 스타일이 뒤쳐질수록 젊음도 가려진다.
P는 혼네와 다테마에 사이에서 갈등하며, 그래도 이건 아니라며 조심스럽게 얘기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마음에도 없는 “오늘 워크샵 옷차림 잘 어울리네요.”라고 말했다. 다테마에를 선택 했다.
순박한 인상에 잘 웃고 성격도 온화하다. 상사에게도 인정받고 아랫사람들에게도 존중받고 있다. 작은 일에도 직원들을 잘 챙겨주는 매너 좋은 상사다.
P의 눈에 포착된 세 번째 남자 직원은 지난달에 경력직으로 들어온 팀장급 직원이다.
기혼이고 키도 크고 인상도 좋았다. 일단 옷 입는 스타일이 P의 마음에 들었다. 몇 벌 안 되는 옷으로 잘 받쳐 입었다. 두세 벌을 번갈아 입고 오는데도 세련되어 보였다. 자기 컬러가 분명하게 있는 사람이었다. 일단 옷 입는 태도는 합격점이다.
P는 점심시간에 이 팀장과 함께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이 팀장은 P에게 올리비아 핫세를 닮았고 옷도 잘 입는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칭찬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냥 예쁘다는 말보다는 이렇게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면 여자들은 더 좋아한다. 이 팀장의 인간적인 호감도가 더 상승했다.
문제는 이후 발생했다.
두 번 가볍게 만나 식사를 했을 뿐인데 10년 살은 부부처럼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호감도가 급락했다. 남녀 간에 시간이 지나 친해질수록 예의를 벗어나면 사람이 달리 보인다. 관계가 오래가려면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수다. P의 눈에 비친 이 사람은 옷만 잘 입는 남자였다. 아니 칭찬도 할 줄 아는 남자였다. 하지만 인간관계의 에티켓은 부족한 사람이었다.
P는 직장에서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서 남편의 옷차림에 신경을 썼다.
남편의 옷 입는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 코디에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 그런 덕분인지 요즘은 남편의 옷 스타일이 젊다고 직원들에게 칭찬을 듣는다고 했다,
처음에 남편은 인격이 중요하지 옷 잘 입는 게 무엇이 중요하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옷이 자신감과 개성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