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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를 배웁니다

by 미니멀랑이



요즘 다시 살이 찌기 시작하더니 무릎에 통증이 생겼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다이어트를 하기로 했어요.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식단인데요. 그래서인지 밥보다는 샐러드를 먹는 날이 많아졌네요.


그런데 매일 대접에 샐러드를 먹다 보니 양조절이 쉽지 않더라고요. 야채도 살이 찐다는 말은 사실인 거 같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샐러드용 접시를 하나 구입했어요. 하얀색의 아무런 모양이 없는 접시였는데요. 그 모습에 살짝 놀랐습니다.


왜냐고요?

사실 전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릇들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그릇들이 눈에 안 들어오는 거 있죠. 아마도 미니멀라이프를 살다 보니 자연스레 취향도 바뀌었나 봅니다. 한때 알록달록한 그릇들을 세트로 사기도 했었는데.


그렇게 취향은 바뀌었지만 맘에 드는 그릇을 세트로 구입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습니다. 그래도 필요한 샐러드용 접시 하나만 구입했다는 거. 딱 그것만. 이런 걸 보면 스스로가 참 많이 변했다는 걸 느낍니다. 역시 미니멀라이프 덕분이겠죠?


그런데 어제저녁, 같이 식사를 하던 딸아이가 새로 산 샐러드 접시가 너무 좋다는 거예요. 깔끔하고 담백하다나 머라나. 그러더니 집안의 모든 그릇을 같은 종류의 그릇으로 바꾸고 싶다는 겁니다. 아이쿠야! 누가 엄마딸 아니랄까 봐. 이런 건 배우면 안 되는데. 큰일 났다 싶었습니다. 사실 살짝 흔들리기도 했고요.


그러나 더 이상 불필요한 물건을 들이는 일은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캐릭터 그릇들로 밥을 먹는다고 해서 적게 먹는 것도 아니고요. 오히려 맛있게 잘만 먹고 있거든요. 그릇세트를 살 돈도 없을뿐더러 굳이 바꿀 필요가 있을까 합니다. 혹시 설거지를 하다 실수로 그릇을 깬다면 모를까..



며칠 전 설거지를 하는데 고무장갑에 구멍이 났더라고요. 설거지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고무장갑은 왜 이렇게 빨리 구멍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말에 자주 사용해 봤자 2~3번. 그나마 평일엔 저녁식사 후 한번 설거지를 하기 때문에. 이 정도면 많이 쓰는 거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혹시 고무장갑 쓰는데 주의할 점 같은 게 있는 걸까요? 휴~


결국 또 고무장갑을 구입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재고가 하나도 없는 건지. 이때다 싶어 설거지 수세미랑 같이 주문을 하려고 했어요. 근데 이게 무슨? 인터넷은 거의 묶음으로 판매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저 당장 사용 할 고무장갑과 여분으로 1개 더 구입을 하려고 했을 뿐인데. 수세미도 마찬가지였고요.


하는 수 없이 집 앞 슈퍼에서 분홍 고무장갑과 초록이 수세미를 샀습니다. 고무장갑도 취향이란 게 있는데 참. 너무도 아쉬웠지만, 설거지하는 내내 분홍 고무장갑이 촌스러워 보였지만. 깨끗하고 말끔하게 설거지를 끝냈어요. 주방마감까지 해버렸고요.


그럼에도 스스로 뿌듯하다는 생각이 든 건 인터넷으로 묶음 고무장갑과 수세미를 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절제라는 거 이렇게 하는 거 맞죠? 또한 만약에 묶음 물건들을 사게 되었다면 생각지도 못한 기회비용까지 발생했을지도 모르고요.


여분의 물건들이 차지하는 공간에다, 지출 안 해도 될 금액이 나가고. 결국 대충 쓰다 버려지게 될 테니 차라리 분홍 고무장갑이 나았다는 확신이 듭니다.


혹시나 언제가 어쩔 수 없이 묶음 물건을 들이는 경우가 생기면 꼭 이것만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려고요. 묶음으로 사서 재고로 남겨도 되는지, 재고로 남긴다면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어디에 보관할 건지까지. 이렇게 질문을 함으로써 조금씩 제 안에 절제를 만들어 갑니다.



물건을 비움으로서 빈 공간의 여유와 홀가분함을 배웠고요. 물건을 채움으로서 절제 또한 배웠습니다. 여전히 물건에 혹해 마음을 빼앗기면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그 물건만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그것뿐인가요?

되도록 물건을 구입하는 것을 절제하며 집안에 있는 물건들로 대체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 보기도 합니다. 어느새 없으면 없는 대로라는 생활 철학이 생긴 거 같기도 하고요. 이것이 지금의 저의 미니멀라이프인가 봅니다.


물론 살아가면서 어찌 물건만 비울 수 있을까요? 필요한 물건이라면 채워놓는 게 맞는 거고요. 그래도 갑작스러운 물건의 방문은 너무도 당황스럽습니다. 왠지 조금 더 절제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내일은 조금 더 가벼워진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있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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