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삼 여름 방학, 한 달의 시간
공부를 한 적이 없다. 해야 한다는 생각도 고등학교 들어오고 나서는 접었다. 매번 그래도 내년에는 공부를 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살아왔으나,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할 생각이 없는 나를 보며 졸업 때까지도 공부는 안 하겠구나 싶었다.
시험을 앞두고는 항상 벼락치기였다. 다른 이들의 벼락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하루였다. 그마저도 밀려서 당일 새벽에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몇 시간 동안 교과서 시험범위를 달달 외우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성적이 나왔고, 그래서 더 공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3학년 1학기까지 모든 내신을 벼락치기로 채웠다. 수능이 필요 없는 나에게 공부는 의미를 잃었지만 그때 나는 마지막이 될 공부를 시작했다. 수능 선택 과목 두 개를 인강을 보며 공부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가입해 두었던 이비에스를 졸업이 가까워지고 나서 다시 접속했다.
두 과목의 수능 강의를 한 달 동안 전부 들었다. 2배속으로 강의를 듣고, 영상을 멈춰가며 필기를 하고, 문제를 푼 후에 답을 들었다. 강의의 끝에 치르는 간단한 쪽지 시험에서 내가 아는 내용이 나오는 것을 즐거워했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필기 자료를 뿌듯해했고, 그렇게 지나는 시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강의 영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딱히 기출문제를 찾아 풀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방학이 끝나고 보는 9월 모의고사가 내 공부의 결실을 보일 유일한 것이었다. 매번 대충 아는 것 만을 풀다가 그때 처음으로 몰입해서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모의고사에서 처음으로 2와 1이라는 숫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 달 바짝 공부하고 이 정도의 성적이라면 다른 과목들도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시도하지는 않았고, 방학 중 했던 공부도 잊었다. 얻을 게 없었던 투자였고, 기대하기엔 너무 높은 목표였다. 그저 9모의 성적을 추억 삼을 뿐이었다.
언제 다시 그렇게 집중하여 공부를 하는 날이 올까 싶다. 정말 좋아하는 과목을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영상을 찾아가며 공부했다. 한 여름의 더위와 높은 습도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특정 성적보다 강의 수강 자체를 목표했고, 그래서 더 부담 없이 이룰 수 있었다. 생활기록부라는 기록에는 담기지 않을 시간이었지만, 적어도 내 인생에는 즐거운 기억을 남겼다. 그래도 졸업 전에 공부를 하기는 하는구나 라는 웃음 나는 생각도 가볍게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