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똑같은 학번을 받을 확률

같은 학년, 같은 반, 같은 번호

by 민이

학년 반 번호를 나열한 숫자는 매 년 나에게 부여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주어진 나의 학번은 3년 전과 동일했다. 학교가 작은 편이기에 반도 몇 없었고, 이름순으로 나열된다는 점에서 비슷한 번호를 받기란 쉬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정확히 같은 번호를 받은 것은 우연임에도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중학교 1학년을 돌아보자면 나름 나답게 잘 지냈지만, 그래서 아쉬웠던 해였다. 하고 싶은 일에는 거의 모두 망설임이 존재했고, 그렇기에 하지 않았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번이 마지막 학창 시절이 될 거라는 생각에 여러 다짐을 하였었다. 보통의 새 학기 목표 정도의 열의를 품고 있던 나는 학번을 받고서 정말 이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과 함께 더 큰 마음을 품게 되었다.


정확히 같은 학번은 나에게 후회되는 과거를 다시 살아보라며 말해주는 듯했고, 나 또한 다시 주어진 기회라는 생각에 열심히 임했다. 하고 싶은 일들은 여전히 주저하게 되었지만 결국은 도전했고 성공했다. 중학교 1학년 때를 포함하여 학창 시절 내내 생각만 하던 일들은 학급 회장, 학생회 임원, 동아리 부원 등이었으므로 고등학교에 와서도 이룰 수 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학급초에 몰아치듯 선거와 지원서 제출, 면접을 치르고 며칠이 지나자 나는 그토록 생각만 해봤던 자격들을 얻을 수 있었다. 도전에 의의를 두자던 마음이 무안하게도 전부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내가 한 시도의 결과는 좋았으나, 결국 주어진 자격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결론적으로 한 학기 내내 여긴 나와는 맞지 않는 곳이구나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해였다. 갑작스레 넓힌 세상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들었고, 일상에서 벗어난 것들에 적응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나의 직책이 끝나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기엔 나름의 책임감은 있어 도망치지도 못했다.


주어진 일은 잘하려고 노력하는데, 막상 자격을 얻고 난 후에는 일이 주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찾아내야 했고 그래서 힘들었다. 공동체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언제나 주변을 빙빙 도는 나에게, 반친구 1이 아닌 다른 역할을 맡는다는 것 자체도 부담이었다. 또한 정신에 안 좋은 영향을 주는 일들까지 발생하며 자퇴 생각이 간절해졌다. 물론 이뤄지지 못할 걸 알고 하는 도피성 발언일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살아본 같은 학번의 나는 이번이 더 만족스럽냐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룬 게 있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시도를 해봤기에 그렇다. 3년 전의 내가 잔잔하게 행복한 삶을 살았다면, 3년 후의 나는 요동치는 세상에 던져졌을 뿐이었다. 행복을 말하자면 과거보다 못하지만 다신 할 수 없는 경험을 정말 마지막으로서 해봤기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엄청 힘들었고, 지금 와서도 좋은 기억까지는 아니라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다시 돌아가면 똑같은 짓을 다시 할 듯하다. 어찌 되었든 잘 끝마쳤다는 뿌듯함과 처음의 이루었다는 감격의 감정이 또렷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일로 남은 고등학생 생활을 더욱더 조용히 지내는 부작용을 얻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운 경험이 되었다. 할 수 있을 때 해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