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짜 대학 못 갈 줄 알았다

작은 교실 안에서 수십 명의 삶이 정해지던 그 시절

by 민이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높은 대학의 꿈을 꾸고, 시간을 써가며 그보다 낮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일반적인 경우일까. 그렇다면 나는 정확히 반대였다.


살면서 내일보다 더 미래의 날들을 딱히 생각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중요한 사항이라 여기는 것들을 부러 더 멀리했다. 그래서 목표도, 목적도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가고 싶은 대학도 없었고 이루고픈 성적도 없었다. 사실 애초에 대학이 가고 싶었냐면 그것도 모르겠다. 앞서 말했듯이 나에게 대학은 너무 먼 미래였고, 오지 않을 것 같았기에 정하지 않았다.


다만 보통의 길과 평범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에는 두려움이 있었으므로 대학은 갈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대충 저 어딘가 내가 갈 곳 하나쯤은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학생이 적어 대학이 문을 닫는 지금 시대에, 저곳에서는 학생들을 모으기 위해 지원을 엄청나게 해 준다던데 라는 말과 생각들을 흘려보내며 갈 곳이야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방 국립대를 꿈꿨다. 이왕이면 학비가 저렴한 편이 좋았으니까. 인서울이 목표라는 말은 곧, 서울과 멀어질수록 가기 쉽다는 말처럼 들렸고, 그 말인즉 내가 갈 곳은 지방에 가깝겠구나 하는 추론이었다. 학교생활을 보내며 차차 나의 성적과 등급을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대학을 찾아보지 않았다. 내가 가진 목적이라고는 나의 성적에 맞는 대학을 가는 것뿐이었는데, 아직 확정되기도 전에 섣불리 찾아봤다가 이 모든 게 의미 없는 일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대학에 대한 모든 눈을 감은 채 사는 것도 찰나였다. 3학년이 되어서는 대학을 확정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을 나누고, 갈 수 있는 곳 중에서도 상향 적정 하향을 나누는 그런 작업을 하기 위해 나는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내 성적과 학과에 맞춘 열 조금 넘는 정도의 대학 리스트가 나왔다. 말하자면 나는 인서울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마냥 신이 났다. 대학의 이름을 들어봤자 그 수준을 알 리 없었던 나에게는 인서울이라는 단어만이 나름 괜찮은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다고 말해주는 듯 보였다.


아마 될 거라는 불투명한 생각과 근거 없는 긍정들로 수시 결과 발표를 기다렸고, 나는 이때 재수 생각을 했다. 물론 이마저도 흐릿하게. 나는 진짜 대학 못 갈 줄 알았다. 정확히는 모든 대학에 떨어질 줄 알았다. 여섯 장의 원서 중 앞선 다섯 곳의 소식을 들으며 나는 내년을 생각했다. 생활 패턴만 잘 유지하면 혼자서도 공부할 만하지 않을까. 집 근처 도서관을 매일 드나들게 될까. 요즘은 인강도 잘 나오던데, 다들 인강으로 공부하지 않았던가. 할 수 있을까, 뭐든 되겠지. 같은 생각들. 재수라고 불리는 행동을 위한 준비를 마음속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제목의 뉘앙스에서 알 수 있듯 나는 대학을 붙었다. 여섯 개 중 여섯 번째에서 붙었다. 가장 마지막 날 발표였던 대학이자 그래서 더 기대가 없었던 대학이었다. 나는 가장 보통의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고, 스무 살에 대학을 입학한다는 것은 그 삶에 포함되어 있었다. 재수를 하기엔 노력이 부족할 것임을 알고 있었고, 다른 일을 선택하기엔 열정이 없었을 것임을 짐작했기에 나는 대학 합격에 기뻐했다. 내 고등학교 생활이 부정당하지 않아서 기뻤고, 그 쓸모를 입증해 주어서 기뻤다.


인생에 대학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고삼에게 대학은 인생의 전부다. 마치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살아온 양 모두가 힘을 쏟는다. 우린 분명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다른 인생을 살아갈 텐데 그 순간에는 같은 목표가 주어진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신기한 광경이라 느껴지지만 당시에는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다. 당연했고 또 당연했다. 당연히 대학을 갈 줄 알았던 나는 끝에 와서야 당연하지 못했었고, 다행히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작은 교실 안에서 수십 명의 삶이 정해지던 그 시절은 정말 뭐였을까.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