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바라도 될까요

가까운 사람들만이라도

by 민이

덕질이 내 인생에 자리를 차지한 순간, 딱히 숨길 의지가 없던 나로 인해 내 주변 사람들은 나의 덕질을 간접적으로 보게 된다. 뭐가 그렇게 좋냐고 종종 물어볼 때면, 최대한 쉽게 왜 그렇게 좋은지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아직까지 상대가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함께 덕질을 하는 그런 날이 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해 정도에 만족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덕질에 시간을 쏟는 과정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낭비 혹은 쓸모없는 일이라고 보일 수 있다. 실제도 나에게 행복을 주는 대상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이해는 그것만으로 힘이 된다. 그리고 서로 좋아하는, 각자의 취미, 덕질, 습관 등을 가볍게라도 알고 있다는 것은 애정에 기반한 관심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덕질을 겪어보며 나의 주변인과 같은 종류의 덕질을 하게 될 때도 있었다. 어떤 종류,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방식이 달라진다. 개인으로서 즐기는 덕질의 경우에는 은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각자의 덕질을 할 뿐, 직접적으로 함께하지는 않는다. 반면 함께 하면 더 즐거운 덕질은 적극적으로 같이 하자고 말하게 된다. 드라마나 웹툰 같은 매체의 경우에는 한 번 보면 어떻겠냐고 슬쩍 물어보기도 하고,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경우에는 같이 보러 가자고 말하는 것이다.


언젠가 들었던 네가 이걸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내심 뒤에 그래도 네가 좋아하니까 좋다는 말이 붙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진 못했다. 그런 사람도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해를 해주는 사람의 소중함을 안다. 같이 하는 즐거움을 알려준 사람들이 좋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을 좋아한다. 덕질의 행위에 행복의 결괏값이 따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좋다.


아직까지 주변인에게 함께 덕질을 하자고 요구한 적은 없다. 인터넷에서 조차 함께할 사람들을 찾은 적이 없다. 내 덕질은 주로 그런 성격을 보였다. 혼자 하기 쉬웠고, 혼자 함으로써 부족함이 없는 덕질이었다. 물론 같은 덕질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사람에게 둘러싸인 것을 좋아할 수도 있고, 원할 수도 있다. 주변인에게 이해를 바라는 것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것 중에서 뭐가 더 쉬울지는 각자 다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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