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문이과가 통합되었다는 말은 여전히 어색하게 들렸다. 그 영향으로 명확한 문과반, 이과반이 나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기도 했다.
선택 과목이라는 분류에 속한 과목은 말 그대로 직접 선택하여 듣는 형태였지만, 생기부와 성적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에 정말 듣고 싶은 과목만을 들을 수는 없었다. 희망하는 직업과 연관이 되어야 했고, 내가 못하는 과목은 나의 내신을 낮출 것이기에 들을 수 없었다.
나의 희망 진로는 예체능 쪽이었기에 큰 상관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과목 선정 전 학교에서 들은 바로는 사회 과목이 과학 과목에 비해 점수 따기가 쉬우니 사회 과목을 선택하라고도 했었고, 내 직업이 요구하는 과학 과목이 있으니 그 수업을 선택하라고도 했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을 것이고, 약간의 연관성만 있어도 생기부를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택할 때는 내가 듣고 싶은 과목을 골랐다. 물론 듣고 싶은 과목에는 직업적 연관이 있는 과목이 있었다. 다행히도 흥미가 있었고, 그래서 선택했다. 다 선택하고 보니, 나는 사회 과목과 과학 과목을 절반씩 듣게 되었다. 딱히 문과도 이과도 아닌 채로 남았다. 반의 대부분이 그랬다. 점수 따기 쉬운 과목을 고르기도, 생기부 내용을 위해 고르기도 했으니 명확하게 문이과가 나뉘지 않았다.
그래서 각 분야의 과목만을 듣는 이들은 오히려 다른 이의 관심을 끌었다. 수 개의 반 중 특정 분야의 반이라 할 수 있었던 곳도 이과 반 한 군데뿐이었다. 그마저도 은연중에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뿐, 실제로 그렇게 불리진 않았다. 잦은 이동수업과, 때마다 반과 수업을 듣는 이들이 바뀌는 상황에, 같은 학급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수능 과목을 사회 하나, 과학 하나 듣는 이는 거의 없었지만 수업은 정말 문이과 상관없이 섞어서 듣는 경우가 많았다. 선택 과목에 의해 반이 나뉘었음에도 항상 같은 반 수업을 듣지는 못했고, 각 과목마다 몇 명씩 마주치는 정도가 전부였다. 선택 과목을 맞춰서 같은 반이 되고자 했던 이들은 만족했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고등학교에서 나뉘는 이과와 문과는 입시가 더욱 가깝게 다가오도록 만든다. 선택 과목에서부터 진로에 따라 어느 정도의 갈림길이 나오는 현실에 고등학교의 과정은 정말 대학을 위한 발판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비록 문이과가 통합되며 고등학교에서 확실한 절반이 갈린 분위기를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선택의 과정 속에서 약간의 강제성을 경험했다. 선택이지만 선택이 아닌, 그런 애매한 자유 속에 놓여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내 선택과목에 만족했다. 사회과목은 나에게 높은 등급을 안겨주었고, 과학 과목은 나의 생기부를 채워주었다. 무엇보다 나의 관심분야에 속한 영역에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아무리 진로에 맞춘다 한들 흥미가 없으면 공부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나는 그 덕에 문과도 이과도 아닌 채로 보낸 고등학생 시절이 그 나름대로 즐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