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모의고사 보는 날

사실은 이미 지났지

by 민이

고등학생이 되었음을 느끼게 하던 순간들이 몇 있다. 그중 모의고사를 보는 날은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수능까지도 봐야 하는 그 순간을 미리 예견해 주기 십상이었다.


수능 연습이라던 모의고사는 선택 과목이 생기기 전인 일학년에게 학교 시험과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다만 시간표가 달라졌다는 사실만이 신기했다. 한 시간을 훌쩍 넘는 시험 시간에 왜 이렇게 긴 것인지 의문을 가졌던 것도 같다. 수학은 100분이나 되고, 두 과목을 본 후에는 밥을 먹을 시간이 된다. 영어 듣기 때 졸지 말라는 말을 드디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첫 모의고사의 첫 과목인 국어 시험을 볼 때에는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얀 것은 종이고 까만 것은 글자이니, 글을 열심히 읽었다. 말로만 들었던 지문이 정말 길어서 놀랐고, 관심도 없고 어렵기만 한 내용도 많아서 즐겁지는 않았다. 그래도 계속 읽고 문제를 풀다 보니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심지어 기억상으로는 아주 조금의 시간이 남기도 했다. 물론 모르는 문제나 헷갈리는 문제들을 대충 풀고 넘어가긴 했었다.


수학은 솔직히 말해 첫 페이지를 다 푼 적이 있었나 싶다. 고삼 때까지도 문제를 풀었던 기억이 없다. 첫 모고날도 기억나지 않는다. 긴 시간을 무얼 하며 보냈을까. 아마 대부분의 날에 나는 잠을 잤을 것이다. 문제 푸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말라며, 차라리 잠을 자라고 권유까지 받았으니 굳이 안 잤았을 것 같지는 않다.


영어 듣기도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점심시간 교실에서 갑자기 흘러나오는 안내 방송에 당황했던 기억도 있고, 정말 저렇게 듣기 평가를 보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시험 때야 매번 그랬지만, 복도의 소음에 주의를 주는 선생님도 계셨고, 그럼에도 여전히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있었다. 어찌 되었든 시험은 시작했고, 영어를 정말 대강 알던 나는 대충 풀고 옆으로 치워뒀다. 그리고 또 엎드려 잠을 잤고, 혹은 적어도 잠들려고 노력했다.


한국사나 탐구 과목은 배운 내용들로만 나와서 아직 수능 같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는 않았다. 나에게 수능은 선택 과목의 이미지가 컸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과목을 스스로 선택해 시험을 본다는 것과, 그 시험이 학생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수능이라는 사실이 신기하고 또 대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에는 시험 시간이 30분이기는 했다. 이때에는 뭐 이리 시험 시간을 다르게 잡아 놓은 것인지, 그 와중에 문제 수는 왜 30개나 되는지 같은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제2 외국어 시험도 당연히 보는 줄 알았다. 그래서 평소보다 한참은 늦게 끝날 것이라 예상하고 싫어했었는데, 막상 시험이 없었기에 끝나는 시간도 비슷했던 것 같다. 그때마다의 시간표를 보며, 일찍 끝나는 요일에 모의고사 날이 겹치면 강제로 늦게 끝나 짜증 냈고, 늦게 끝나는 요일에 겹치면 수업 대신 하는 것이니 꽤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하니 무슨 초등학생 정도의 사고방식인 것 같지만, 실제로 이랬다. 나뿐만 아니라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우리들은 대부분이 비슷한 심정이었다.


학교 시험은 성적표가 나오기 전 각자 점수를 체크하고, 문제가 있으면 말하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첫 모의고사도 그 많고 긴 문제들을 일일이 다 채점해 봤던 기억이 있다. 물론 여긴 채점을 해봤자 이의를 표시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성적표가 나올 때 즈음 이미 채점 결과를 다 잊어먹기도 했다. 한편 모의고사 성적표는 복잡하게 생겼었다. 그 많은 칸과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가 있었겠지만, 기억할 수는 없었다. 설명해 주실 때 듣고,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아직은 중요하지 않다 싶었다. 물론 나에게는 나중 가서도 그리 중요하지는 않았다.


모의고사는 전국의 모든 학생들과 겨루는 시험이다. 그래서 낮은 점수에 선생님들께서 뭐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다. 나만의 점수가 아니라 우리 학교의 평균을 보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때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공부할 사람들은 나중 가서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지금 일 학년이니까요, 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절대 입 밖으로 내지 않을 소리들을 삼켰다. 공부를 할 생각이 없던 나에게 공부 좀 하라는 잔소리는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의고사는 그저 간혹 있는 이벤트였고, 그 중요성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온전히 시험만으로 하루를 보내는 시간은 나름 즐거웠고 대부분은 지루했다. 보통 풀 수 있는 건 풀고, 풀 수 없는 건 넘겼다. 그럼에도 고등학교 생활 동안 한 번은 모든 과목을 열심히 풀어도 봤고, 한 번은 모든 과목을 일자로 찍고 자기도 했다. 정말 공부 빼고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다. 기록이 남지 않는 모의고사는 학교 시험보다 덜 긴장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수능에 관심이 없었기에 그랬던 듯하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소중했을 하루의 경험이, 다만 누군가가 아닌 나에게 와서 별 일 아니게 되어버렸을 뿐이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