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덜 좋아할 수는 없을까요

적당히 좋아하고 싶은 마음

by 민이

왜 마음은 내 뜻대로 되지 않을까. 무엇이든 적당히를 바라는 나의 바람은 마음에도 적용된다.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슬퍼하는 그런 적당한 덕질을 꿈꿨으나, 현실은 항상 과하고 가끔은 덜한 그런 삶이었다. 아마 감정을 조절할 수 있었다면 행복에 가득 붓고 슬픔은 아주 조금 채웠을 것이다. 기쁨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고, 슬픔은 겪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놓치고 싶지는 않았기에. 다만 그럴 수는 없으니 중간 선에서 적당함을 바랐으나, 막상 행복의 상한선이 정해진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남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란 말은, 남의 슬픔도 나의 것이라는 뜻. 불필요하고 의도치 않은 슬픔을 몇 번 겪고 나서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물음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좋아서 하는 덕질, 좋아만 하면 안 되는 걸까. 감정을 다루고 마음을 쏟는 행위는 그럴 수가 없었다. 온전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간접적인 고통마저 감수해야 했다. 정말 좋아하는 대상을 앞에 두고서 특정 부분에서만 눈을 돌릴 수는 없다. 모든 걸 보면서도 더 많은 걸 바라는 나에게 일부를 놓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무엇이든 장단점이 있다. 하다못해 취향의 범주에서도 호불호가 갈린다. 덕질도 그렇다. 대상에서 보이는 단점이나 불호는 분명 존재한다. 처음 봤을 때야 당연히 좋은 점만 보이지만 시간을 써갈수록 더 많이 알게 된다. 한쪽 면만을 알 수는 없다. 전부를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슬퍼질 때가 있다. 좋아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슬프고, 그런 나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 가는 나는 출처 없는 억울함을 얻는다. 물론 이도 일시일 뿐. 싫어하는 점이 더 많은 덕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좋아하는 날이 더 많았다. 그래서 놓지 못했다.


기대를 한 채 부담을 쥐여주고 덧없는 미래를 그린다. 덕질이 그렇다. 좋아하는 대상에게 기대하는 건 당연한 일일까, 그 기대가 부담된다 해도 정말 어쩔 수 없었을까,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건 헛된 꿈일까. 질문에 답은 없으나, 오답도 없다. 그냥 그런 덕질일 뿐이다. 남모를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부담이 상처가 될지 걱정한 적도 있다. 정할 수 없는 미래는 그리는 것도 꿈꾸는 것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래도 좋다. 이 모든 감정의 배경에는 대상을 향한 애정이 있으므로, 관심조차 없었다면 가지지 않았을 생각이기에 좋아한다. 덕질은 미완성의 기억들도 하나의 조각이 된다.


덕질을 위해 감정을 사용하며 내 삶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기만을 바랐으나, 안타깝게도 그러진 못했다. 그래도 다양해졌다는 것은 확실하다. 여러 색깔이 내 인생에 들어와 저마다 자리를 차지했다. 이제 와서 몇 가지를 골라내어 나가라고 할 수는 없는 법. 지금은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나의 슬픔, 화, 억울함 등. 덕질을 통해 얻은 마냥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기억들도 그냥 그렇게 있다. 결국은 순간이었고, 나의 덕질 전체에 영향을 준 적도 없으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직은 뒤돌아보면 추억이라고는 못하겠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아름다운 기억으로 바뀌어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이전 02화남의 행복을 바라는 그런 쓸모없는 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