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으로써 행복을 쟁취하는 일
온전한 타인이 나와 같은 대상을 좋아한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공통점 삼아 경계가 흐릿한 하나의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신기한 현상을 덕질하며 매번 마주친다. 경우에 따라 정말 돈독한 무리가 형성될 수도 있겠지만, 각자의 독백이 뭉친 정도가 더 많을 것이다. 주위의 사람들을 궁금해하기보다 하나의 대상을 중심으로 알게 된다.
나의 덕질은 많은 경우가 인터넷 속에 있었고, 그렇기에 사람들의 반응을 찾아보는 것도 인터넷을 통한 때가 잦았다. 그리고 쉬웠다. 막 덕질을 시작했을 즈음에는 정리된 정보를 찾아보다가 더 많이 관심이 생길 무렵에는 다른 사람들이 가볍게 적어놓은 인터넷 글들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검색을 통해 알 수 있었고, 그 내용이 꽤 많을 때도 있었다. 필터링이 되지 않아 모든 부류의 글을 보게 된다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보통은 좋은 글이 훨씬 많기에 찾아보는 과정이 즐거웠다.
사람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을 덕질의 이러한 부분을 통해 느끼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 주면 좋겠고, 다른 사람이 좋아해 주는 모습을 보고 싶어진다. 스스로 공유하거나 자랑할 만큼의 재주는 없어서 직접적으로 하지는 못하지만, 그만큼 더 찾아보게 된다. 타인의 말로, 글로 전달되는 작은 관심들은 나의 행복이 되어 덕질의 일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덕질을 하다 보면 내가 그 대상을 온전하게 바라보는 순간보다 다른 경로를 통해 보게 되는 시간이 더 많았나 싶기도 하다. 비치는 때는 순간이고, 그 순간을 영원토록 곱씹는 게 덕질이다. 모든 순간을 사랑하지만 아끼는 때는 분명 있고, 언제나 지금의 새로운 덕질을 꿈꾸지만 과거에 매여있는 것도 확실히 존재한다. 때로는 과거를 얘기하고, 종종 미래를 기원한다. 덕질 대상이 하나일지라도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수 명이기에 어쩌면 다른 이의 말로 듣는 때가 더 많기도 하다. 심지어는 내가 놓친 시간들, 좋아하기 전의 기록들은 전부 다른 이를 통해서만 알 수 있기도 하다.
가끔은 주객전도가 되기도 한다. 내가 보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는 게 더 즐거울 때가 있다. 물론 한 순간이지만 그래도 신기하긴 마찬가지다. 각자의 애정도를 가지고,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차이가 난다. 그 차이가 즐겁다. 혹은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좋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할 시기에는 대상만으로는 부족해서 타인의 관심까지 찾아보지만, 시간이 지나며 관심은 사그라진다. 그저 대상만으로 충분해질 때가 온다. 어쩌면 덕질의 끝이 다가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덕질의 중심을 찾아가는 거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결국 타인의 관심은 덕질의 목표가 될 수 없고,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기에 선택하고 말고는 자신에게 있다. 형식이 자유롭다는 것은 덕질의 특징이니, 그 자유를 마음껏 누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