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어쩌면 영원히
누구를 좋아하는지, 혹은 어디를 좋아하는지에 따라서 종종 팬으로서의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경우가 생긴다. 열렬히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눈에 들어올 수도 있고, 때로는 많은 시간과 돈을 통해 알게 되기도 한다. 덕질도 하나의 산업을 통하는 행동이라는 것에 있어서, 더 많은 노력을 기할수록 상위의 존재가 될 수 있음이 자연스러운 경우가 있다.
보통 팬은 다수의 존재가 하나의 무리로서 존재하는 경우가 많고, 한 명의 개인으로서 나타나기에는 각자의 선택이 요구된다. 그리고 나는 그 한 명이 되기를 극도로 꺼려하는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도 한 명이 되기 쉬웠으나 그러지 않았다. 부담스러웠다. 좋아한다는 마음은 표현할수록 커지고, 서로에게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으나 어려웠다. 넓은 온라인 세상 속, 익명 뒤에 숨어서도 부끄러워서 그저 하나로 집계되는 하트에 기댈 뿐이었다.
한 곳의 덕질 속에서 나를 인지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이 붙는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지만,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마음은 또 다르다. 나를 한 번 알렸다고 그 사람에게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을 거란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혹시라는 생각이 든다. 별생각 없이 뱉는 말 한마디, 글 몇 자들도 그 대상 앞에선 큰 효력을 보일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나를 알지 못하기를 바란다. 딱히 알릴 생각도 없지만 바라지도 않는다.
반면 팬 속의 개인을 자처한 이들은 나에게도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나쁘게 바라보지는 않는다. 자주 만날 수록 친해지는 게 사람인데, 덕질이라고 안 그러겠는가. 그저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을 뿐이다. 나의 덕질이 온라인 공간을 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팬은 대부분 익명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가명이자 별명이다. 내가 선택한 공간 속에서 내가 선택한 이름을 사용하는 덕질이기에 그 자신을 나타내기가 더 편하다. 그리고 다른 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도 덜 부담스럽다.
덕질의 이런저런 특성에 나를 나타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때가 있다. 아마도 이름 한 번 불러주세요와 같은 어리고 철없는 마음이었겠지만 그럼에도 좋았기에 기대했었다. 지금은 이름을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쏟은 시간을 보답받기를 원한다. 물론 직업에 충실하게 임함으로써 보답해 주기를 바란다. 누가 봐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하는 말 같지만, 다른 방법은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느 정도의 거리감은 나에게 안정을 주고, 나는 그 안정성이 마음에 든다. 이미 몇 번의 덕질을 거쳐감으로써 그 선택이 더 가볍고 쉽기도 하다. 영원히 좋아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를 알리지 않는 선에서, 나를 알지 못하는 덕질을 통해서 시간을 보낸다. 언젠가 이 생각이 바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바뀌지 않음을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