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제가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행복을 바라줄 사람들이 참 많기도 하다. 가족과 친척, 친구, 지인. 또는 선후배, 직장 동료,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물론 행복이 닳는 것도 아니기에 마음껏 빌어줄 수야 있지만 전해지지 못할 것이라면 약간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소리로 내지 않고, 글자로 보이지 않은 행복을 빈다는 나의 소원은 수 없는 시간 속에서 공기 중에 흩어져 갔다.
덕질하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저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매번 다른 방식이었지만 그 본질은 같았다. 선택의 결과가 항상 좋기를 바랐고, 준비한 것들이 가장 좋게 보이기를 바랐다. 과정이 보일수록 간절히 바랐고, 못 미친 결과마저 좋다고 긍정했다. 그 무엇이든 행복과 이어지기를, 가장 행복하고 많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행복이라는 비물질적 가치는 내게 가장 의미 있는 것이었기에 그토록 바랐었다.
때로는 심지어 나의 행복까지 가져가길 바랐다. 내게 행복은 당신이었지만 당신의 행복이 나는 아닐 거라 예상했기에 그랬었다. 팬의 관점에서 자신의 존재가 도움이 된다거나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수많은 팬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희미했기에 그냥 조금 더 빌기만 했다. 나 하나만큼의 행복이 더해지기를 빌었고, 내가 받은 행복만큼을 돌려줄 수 있기를 바랐다.
지금 생각하면 잘 되길 바란다거나 성공을 기원한다는 조금 더 실용적인 소원을 빌걸 그랬나 싶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무의식 중에 떠오르는 생각은 저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덕질을 통해 얻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이 행복이라 그런 걸까, 매번 내가 받는 것이 행복이기에 어떤 방법으로든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인 걸까. 정확한 사고방식의 체계를 알 수는 없지만 그게 무엇이든 진심을 담은 기도였다.
의미 없는 일일까, 쓸모없는 짓일까. 누군가에게는 둘 다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둘 다 아니었다. 의미야 찾으면 그만이고 쓸모야 만들면 되는 일. 나의 행복에 의미를 두고, 상대의 행복에 쓸모를 둔 채 살아왔다. 내가 행복했으니 그 행복을 돌려주고 싶다는 것에 무슨 말을 더 달 수 있을까. 행복의 제공자에게 보답을 주고 싶으나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다시 행복을 전하고자 하는 단순한 마음을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어차피 전해지지 못할 거 되는대로 바라고 또 바랐던 날들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순수하다 싶다. 해줄 수 있는 게 없기도 했었지만 그래서 찾은 게 행복을 바란다는 것이라니. 이뤄진다면 좋기야 하겠지만 자신의 행복은 자신이 찾는 것이므로 아마 내 덕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좋다. 나의 소원은 정말 간절했다기보다는 행복함에 내뱉는 감탄사였고, 나는 매일 그 사람의 행복을 보며 살았으니 절반은 이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행복을 바랄 것이다.
사실은 내 선택의 문제가 아니긴 하다. 정말 일종의 표현 방법이자 나도 모르는 사이 시작되는 반사 행동이므로 내가 행복해지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럼 오히려 계속되는 게 좋은 거 아닐까. 그럼으로써 미래의 나에게도 행복이 약속되어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