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가난의 순간

가난을 뒤집으면 난가..?

by 미니

웨이브에서 역주행하며 화제를 모은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진 10명의 사람이 나와서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서바이벌 형식으로 다룬다. 사상은 크게 4가지 항목에서 분류된다. 좌파(L)vs우파(R), 페미(F)vs이퀄(E), 서민(W)vs부유(U), 개방(O)vs전통(C). 실제로 사상을 이렇게 네 가지 항목으로만 분류할 수 없겠지만, 유행하는 MBTI의 방식을 빌려 간단하게 표기한 게 아닐까 싶다.


시청자들이 사상검증을 진행할 수 있는 링크*가 있었는데 시간 될 때 해보니 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예상하지 않은 부분에 점수가 매겨져서 출연자들도 사상점수 결과가 조금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서 말했듯 몇 가지 질문으로 한 사람의 사상을 완벽하게 표기하기는 어려우니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프로그램은 꽤 다양하고 민감한 주제에 대해 스스럼없이 논한다. 물론 방송에 비치는 모습을 조금은 의식하게 되어 온전한 자기 생각을 피력하지 못한 이들도 있겠지만! 이토록 다양한 주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테스트 링크

https://the-community-survey.web.app/home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 있게 봤고, 여전히 생각나는 담화 주제는 ‘빈곤’이다. 특히 하마(하미나 작가)의 글**을 보고 무척 놀랐다. 빈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데, 글 자체에 찐하게 공감이 되는 걸 보니 간만에 ‘내가 커 온 환경이 생각보다 어려웠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다. 방송을 보면서 떠오른 가난의 순간들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된 순간들이다.


**[신민호의 에이포인트] 빈곤은 개인의 책임일까?

https://www.headlinejeju.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2261

위의 기사 링크를 클릭하면 하미나 작가의 빈곤에 관한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 나는 우유를 무상으로 먹었다. 이건 학기 중에는 그렇게 티가 나지 않지만, 방학 때 무상 수급자라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게 되는 형식이었다. 방학 중에 마실 우유를 주는데 특정 인원에게만 박스째로 지급하기 때문이다. 땀을 흘리며 우유를 가져가면 친구들은 ‘왜 쟤만 저걸 받지?’하는 순수한 궁금증을 내비치기도 했는데, 명확한 대답 없이 얼버무렸던 기억이 스쳐 간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우유가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가난은 이렇게 남과 다르게 티가 나는 구나.’ 하는 얄팍한 생각과 함께.


또 생각나는 건 급식 카드인데, 당시 집 근처에 있는 김밥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종이 쿠폰 방식으로 지급됐다. 음식을 먹고 금액에 맞는 쿠폰을 내밀면 공짜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언니와 함께 김밥 몇 개와 돈까스, 약간의 쫄면으로 구성된 스폐셜 정식을 시켜 먹고 쿠폰을 내밀면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가게 사장님도, 식당 안의 그 누구도 관심이 없을 텐데 말이다.


흔히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리고 가난은 네 탓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어떤 집안에서, 어떤 부모의 밑에서 자랄 건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기에. 그렇지만 그 사실만으로 가난의 무게가 덜어지지는 않는다. ‘내 인생의 일꾼은 나 뿐’이라는 무게감을 다소 이른 나이에 짊어져야 한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는 보다 넓은 선택지가 주어졌는데, 내게는 손가락으로 헤아려지는 몇 안되는 선택지가 남은 상황이 반복되기도 한다. 가장 마음이 아픈 건 나름의 경제활동을 하는 어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어딘가 결핍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난 여전히 가난한가? 객관적인 수치로 보자면 그럴 것이다. 흔히 말하는 고소득자도, 주택 보유자, 외제차를 가진 사람도 아니니까. 나름의 경제생활을 하며 나만의 산수를 해나가는 중이기 때문에 당장 의식주에 불편을 겪는 극한의 가난은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편하게 돈 걱정 없이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이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건 또 어쩔 수 없나보다.


또 내게 어떤 순간이 '가난의 순간'으로 자리 잡을지 모른다. 다만 가난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물질적인 영역이 덮을 수 없는 부분의 결핍이 더 무섭다는 인생의 교훈을 차차 깨달아간다. 정신적인 결핍이 가져오는 무게감이 훨씬 크다는 사실들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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