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지구상의 그 어디에도 레시피가 없는 요리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by 미니

우리 할머니는 요리왕이다. 특히 마늘, 고춧가루가 들어간 K-양념! 빨간 류의 음식을 잘한다. 예를 들자면 제육볶음, 오징어 두루치기, 닭볶음탕 등. 늙으면 입맛도 함께 늙어서 간을 못 보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가시적인 부분에서만 노화가 오는 게 아니라 온 몸 구석구석에 찾아오는 세월. 나이가 들면 우리가 젊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자기들이 제 역할을 했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아우성을 치나 보다. 그런 것 치고 아직까지 할머니의 음식은 맛있다! 할머니는 늘 요리를 못한다고 칭하지만..


두 번째 회사인 이 곳 역시 중소기업이라 물가 상승률이 전혀 반영 안 된 식대 포함 연봉을 받는다. 식대로 밖에서 맨날 사먹으면 남는 것도 없으니까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다. +급식 세대라서 급식실 공사할 때 도시락 싸는 게 마지막이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각자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잘해주려고 한다는 문장을 본 기억이 있다. 일례로 할머니는 평생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식사니까 식생활과 관련된 안위를 많이 묻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내 도시락 메뉴에 유독 골치 아파한다. 잠들기 전 ‘내일은 뭐 싸줄까?’를 반복하는데 주로 제안하는 메뉴는 비슷하다. 그녀의 알고리즘에서 가장 밥반찬으로 적합하며, 저렴한 가격으로 만들 수 있지만 영양가 있는 메뉴가 나오는 것이다!




vegetables-1006694_1920.jpg 출처 : 픽사베이


문득 ‘만일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면 어떤 메뉴가 가장 많이 그리울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지구 어디를 뒤져도 레시피가 없는 우리 할머니의 음식에 대해 끄적여보려 한다.


1. 볶음밥

학창 시절 소풍을 가면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싸주던 어머니가 계셨다면, 우리 집에는 스팸을 넣고 특식으로 볶음밥을 해주던 할머니가 계신다. 할머니는 이 음식을 수능 날에도 손녀의 요청으로 만들었다지! 감자와 양파, 당근, 그리고 절대 잘라서 구워 먹지는 않아도 볶음밥에는 인심 좋게 넣는 스팸과의 조합은 기가 막히다. 다른 부가 재료는 필요 없다. 단지 메인 재료가 ‘그녀의 손맛’일 뿐.


2. 동그랑땡

다음은 동그랑땡이다. 과거 우리 집은 1년에 제사를 4~5번 지냈다. 명절이 아니더라도 제사가 있어서 중고등학생 때는 밤늦게 제사 지내고 일어나면 꽤 피곤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졸린 눈을 억지로 떠가며 절을 했던 흐릿한 기억. 무튼 제사음식 중 동그랑땡은 할머니의 대표작 중 하나다. 두부랑 고기의 비율을 적당히 맞춘 후 적절한 간을 하면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할머니표 동그랑땡이 탄생한다. 비비고, 동원 등 대기업 동그랑땡 물론 맛있지만 정여사의 동그랑땡은 넘볼 수 없는 담백함이 일품이다.


3. 시래기국

어렸을 때는 이 국 발음도 어려워서 ‘쓰레기국? 엥? 뭔가 이상한데?’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듯. 원 명칭은 ‘시래기국’이다. 된장과 나물을 풀어 푹 끓여낸 시래기국은 고기가 안 들어가서 마가린을 타면 살짝 기름기가 돈다. 시래기국에 마가린을 타먹는 조합은 아는 사람만 아는 꿀조합!


사실 요즘은 인터넷, 책 등을 통해 음식의 레시피를 알아내는 건 정말 시간문제다. 하지만 할머니의 요리에는 명확한 레시피가 없다. 아빠 숟가락, 티스푼, 계량컵을 동원해도 단 한 가지! 그 손맛을 구현해 내기는 어려운 것이다.


음식은 생각보다 다양한 기억을 불러온다. 그래서 얼마 전 MBC의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비비고와 함께 할머니의 손만두 맛을 재현하는 프로젝트(할머니 손만두*)를 했다.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출시된 만두는 한정으로 판매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의미로 남았을 것이다. 그리운 사람의 요리를 먹고 싶었던 이에게는 위로가 되었을 것이고, 현재는 자각하지 못하더라도 손맛이 담긴 요리를 접하고 있다면 그 소중함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기회이지 않았을까.




오늘 당신 앞에 차려진, 누군가의 고뇌가 담긴 음식은 폐업이 정해진 유명 맛집의 메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언제까지나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고 음식의 맛을 나름의 방법으로 기록해두는 것도 좋겠다. 언젠가는 기억 속에서 희미해질 그 맛이 사진에서, 문장에서 기억될 수 있도록! 기억 서랍에 소중하게 보관해둔 뒤 그리운 마음이 들 때 한 입씩 꺼내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CJ제일제당, ‘비비고X<놀면 뭐하니?> 할머니 손만두’ 8분 만에 ‘완판’

https://cjnews.cj.net/cj제일제당-비비고x놀면-뭐하니-할머니-손만두-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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