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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Sep 18. 2018

Minimize Impact의 출발


리빙 그린(Living Green)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에서 무심결에 빼어 든 책의 제목입니다. 세계 최대 건강 보조 식품 회사의 최고 경영자(저자 소개에서 이걸 왜 강조했는지는 모르겠어요)였던 저자가, 어느 날 새로 리모델링한 자신의 럭셔리한 사무실에서 새집증후군을 겪으면서 인생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며 시작되는 책입니다. 자전적 수기라고 할 수 있지요. '새집증후군'이라는 사건은 저자가 살고 있는 생활환경, 일상에서 쉽게 쓰고 버리는 소비제을 둘러보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건강만 아닌, 지구의 건강까지 헤아려 보게 하는 눈을 갖게 되었지요.

사실 이 책을 후루룩 읽었기 때문에, 생각나는 대목을 따로 메모하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책의 대부분이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찾을 수 있는 '친환경적 삶'을 살기 위한 입문서 같은 정보들이었지요 (혹시 친환경 삶에 대해 알아가고 싶은 입문자라면 추천드립니다). 다만, 굳이 이 책을 언급한 이유는 저자인 '그레그 혼'이 환경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꼭 제 이야기 같아서입니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온 불행이 어떻게 삶의 방향타가 되었는지에 대해 말이지요.


먼저 온 미래를 사는 사람들

올해부터 구독하기 시작한 생태잡지(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1월호에 실린 에세이 꼭지 제목입니다. 제주도 남단의 강정마을에 사는 평화활동가가 쓴 글이었지요. 제주 강정마을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해군기지 폐쇄를 외치는 활동가에 대한 주류 세계의 무관심과 박대와 조롱.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하루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게 될 어떤 미래의 날 가운데 한 날임을 믿어 '평화'를 행동으로 지켜나가겠다는 글이었지요. 리빙 그린에서부터 강정에서 온 어느 활동가의 글의 제목까지, 문득 제가 삼십넘는 세월 동안 앓아 온 아토피가 생각났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사람들은 '아토피'라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있어봤자 전교 또는 한 학년에 한두 명 정도였습니다(초등학생일 당시, 피부과에서 우연찮게 마주친 같은 반 친구가 배에 아토피가 있다고 고백해서 어찌나 동료애를 느꼈던지요). 당시에 저는 '아토피'라고 하는 희귀한 질병의 산증인이었던 셈이지요. 몇몇 친구들은 아토피가 옮을 수도 있는 피부병이라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때에 비해 지금은 '아토피'는 건너 건너 주변인 누군가는 꼭 앓고 있는 흔한 질병이 되었지요(18세 미만 아동의 8/1이 아토피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경우도 있지만, 저는 그렇질 못했습니다. '아토피안'중에서도 '성인기'까지 전환이 된 극소수 케이스 중에 한 명이 된 거지요. 학창 시절에 앓은 아토피도 괴로운 일이었지만, 성인기로 넘어왔을 때에는 또 다른 양상의 괴로움이 연속됩니다. 직장생활-사회생활을 한다면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외부적인 요인이 삶 속에 파고들기 마련이지요.

저의 경우는 아토피가 만성적으로 악화된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울의 어마 무시한 전셋값을 피해, 서울 변두리 동네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푹 자고 병원 몇 번 다녀오면 관리 가능한 아토피라 새집증후군이라는 것에 대해 심각히 받아들이지 않을 때였지요. 더군다나 제가 이사 간 곳은 20년은 족히 된 낡은 다세대주택. 새집증후군이랄 것도 의심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새로 이사 간 집의 주변 환경(대로변과 가깝고, 교통량이 많음. 낙후지역이라 새로운 건물 공사를 심심찮게 볼 수 있음)과 새로 들여온 가구, 새 벽지 대신에 칠한 페인트(친환경 페인트로 칠했지만 말뿐이었나 봅니다)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아토피 부위가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당시에 다니던 회사가 새로운 사옥을 사들여 리모델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덕분에 출근해서도 모든 것이 새롭게 단장한 '쌔삥'냄새나는 환경 속에서 근무를 해야 했지요. 가장 먼저 공사를 끝낸 7층으로 이사하고, 3층 공사가 끝나면 다시 내려가 임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비효율적인 한 건물 내 이사를 여러 번 다녔습니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칸칸이 옮겨 다니며 몇 개월 간, 새로운 자재에서 나오는 독소에 그야말로 '몸빵'했지요. 그야말로, 실내에 있는 모든 시간은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환경독소에 모두 노출되어 있던 시기였습니다. 입 주변 쪽으로 머무르던 아토피가 얼굴 전체, 상체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씩은 눈도 뜰 수 없을 지경이었지요. 그러면서 제 주변을 둘러싼 환경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손에 쉽게 잡히고, 값싸고 보기에는 예쁜 인테리어 재료들. 다른 사람들은 '겉으로' 무난하게 잘 견디는 환경적 독소들을 견뎌낼 능력이 저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기 시작했지요. 원가절감이라는 이름하에 포름알데히드, 다이옥신, 벤젠, 라돈 등 1급 발암물질을 내뿜는 재료들이 턱없이 부족한 규제 속에 사용되며, '예쁘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인테리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밥을 먹으러 가도, 카페에 가도, 마트에 장을 보러 가도 코가 시큼 거리는 새 건물 냄새 투성이었지요. 살면서 처음으로 몸 상태 때문에 단체생활/직장생활 유지할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지요,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 성인이 되어 이런 '환경병'을 앓으며 제 의지와 관계없이 다른 선택을 해야 할 사람들이 많아지겠구나. 어릴 적, 저는 극소수의 아토피안에 불과했지만 지금 전체 인구의 8/1에 해당하는 아토피 아이들이 자라나면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될 테니까요. 저는 그 아이들에게 '먼저 온 미래를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낯간지러운 단어들

다행히도 문화가 잡히려나 봅니다. 사람은 바닥을 한 번치면(거대한 홀로코스트 후) 거대한 성숙을 이룬다고 했던가요? 봄/가을이면 끊임없이 찾아오는 미세먼지와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그리고 플라스틱 대란이 일어나면서 환경문제를 개인의 차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지요.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로우 임팩트 무브먼트(Low-Impact Movement), 플라스틱 프리(Plastic-Free), 비거니즘(Veganism) 등 환경을 필두로 한 운동들이 (80년대 초반부터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밀레니얼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지요. 베이버 부머였던 부모 세대들의 소비주의적 문화에 반하여 새로운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추구하는 것이 밀레니얼들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물론, 베이비 부머였던 윗 세대에서도 끊임없는 생태운동이 있었습니다. 저도 86년생, 밀레니얼 치고는 늙다리 같은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이러한 시대적 흐름이 비켜나간 사람은 아닌지 내가 살고 있는 사회, 내가 영향을 미치는 자연에 대한 생각을 곱씹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제로 웨이스트, 로우 임팩트 무브먼트, 비거니즘과 같은 운동이 일종의 패션 트렌트처럼 보여주기 식으로 승화된 것 같아, (가끔은 힙스터들의) 낯간지러운 단어들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이를 'I am cooler than you'식의 문화라고 비판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소비주의'문화에서 '지속 가능한 소비'문화 아니면 '소비' 자체를 근절하는 문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관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오히려 '멋짐'을 표방하는 그들 식의 트렌디한 환경 캠페인이 사람들의 의식을 보다 빠르고 넓게 전파할 수 있다는데서 고무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요.


'왜'라는 질문의 끝점

돌아와, 제 브런치의 제목인 'Minimize Impact'는 환경적 발자취를 최소화하자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솔직히 말해, 아직까지 '제로 웨이스트'나 '비건', '비 전화'를 말할 깜냥은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아직까지 실천의 방법을 하나둘씩 익혀나가는 중이고, 삶의 작은 부분들을 고쳐 나가는 중입니다. 제가 실천할 수 있는 범위에서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들을 실제로 줄여보자는 것이지요. 한 단계가 익숙해지고 습관이 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 최소화를 시작합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일종의 환경실천에 근육을 키우는 중이라고 해야 할까요. 얼마 전 참가한 어느 블록체인 워크숍(워크숍 다녀왔지만 블록체인 1도 모릅니다)에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풀어고자하는 문제를 정의하기 위해선,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다섯 번을 물어보라고요.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이거야 > 왜 이렇게 생각했어? > 그건 또 왜 그렇게 생각해?라는 질문을 다섯 번 정도는 해보라는 말이지요. 솔직히, Minimize Impact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다섯 번의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끝 점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고 있지요. 저는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몸의 기질을 가지고, 우리가 마주한 환경 문제에 대한 '먼저 온 미래를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개인화한 문제에서 출발하면 오래도록 Minimize Impact를 실천할 수 있는 동력이 지속되지 않을까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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