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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Mar 15. 2020

요리와 식재료에 대해

이거 나중에 먹을 수 있을까?

나는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것과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 두가지를 구분한 것은 가끔씩 '요리'랄 것도 없는 굉장히 간소한 절차를 거쳐 마련된 식사로 끼니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생채소를 양념 없이 그냥 대강 썰어 먹거나, 고구마를 구워 먹는 것 등이 그렇다. 하지만 요리를 할 때는 건강한 재료를 활용해 처음부터 뭐가 들어갔는지 안심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즐거워하는 편이다. 명상에 대해 잘 모르지만, 요리하는 행위가 가끔 명상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식재료를 씻고 다듬고 조리하고 그릇에 담기까지 '요리' 외에 다른 잡념이 껴들지 않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먹을 생각에만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생브로콜리, 바나나, 구운 고구마, 물 (간소하게 먹을 때)


너무 생각이 많은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요즘에는 요리를 할 때 지금 손에 쥔 이 식재료를 내가 할머니가 되거나(그러니까 30-50년 지나서) 아니면 나중에 나의 삶의 방식이 변경되거나(그러니까 조금 더 자립적인 생활을 하거나), 주거지의 위치가 도시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때도 지금처럼 심심찮게 먹을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할머니가 됐을 때(예를 들어, 2050년-2070년)는 사회환경이나 기후가 지금으로서는 예측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할 것이고(이제는 과거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세상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으니), 당연히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식재료의 폭이나 종류도 굉장히 달라질 거다. 굳이 할머니가 된 시간까지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보다 가까운 미래에, 도시에 사는 지금의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 조금 더 자립적인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게 될 때는 좀 더 더 한정된 식재료 내에서 식사를 마련하는데 익숙해야 져야 할 것이다(100% 완전 식재료의 자립은 아니더라도). 자립이라는 건 의존성을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니까.


팔라펠(병아리콩으로 조리된 음식), 씨겨자, 김치와 청국장을 넣은 비지찌개 그리고 듬성듬성 썰은 생채소와 양념 없이 구운 버섯, 쌀


특히, 베이킹을 할 때 이런 생각이 더욱 극명하게 드는데 이유는 빵 굽는데 들어가는 재료가 우리나라 기후나 식생에서는 재배하기 어려운 '아몬드가루'나 '코코넛 오일', '메이플 시럽', '스테비아' 같은 게 심심찮게 들어가기 때문이다. 갈수록 음식/식성에 대한 개인의 기호가 세분화될수록(글루텐프리, 채식주의, 고지방 저탄수식 등), 이를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찾는 기술이나 정보도 발달하는데, 수급되는 대부분의 재료가 내가 사는 지역의 경계를 초월할 때가 많고, 그런 면에서 요리할 때 손에 쥔 재료를 바라보노라면 개인이 누릴 수 있는 럭셔리(호사) 중에 이런 것이 또 따로 없겠다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끔씩 베이킹에 사용되는 각종 가재도구에 혹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거품기로 새 빠지게 휘저어야만 만들 수 있는 크림을 금세 만들어주는 전자 휘핑기 같은 게 그런 것이다(아직까지 없지만(그래서 이런 공정이 들어가는 베이킹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런 가재도구야 중고로 구매한다면 양심은 덜 다치겠으나, 이런 도구들이 얼마나 에너지 의존적인 것인지를 생각하면 또 생각을 고치게 되기도 한다. 훗날이라도 자립적인 삶을 꿈꾼다면 알지 못해도 살 수 있는 편의성은 애초부터 들여놓지 않는 게 맞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세탁기나 냉장고는 고수하더라도, 이런 휘핑기 같은 건 없어도 살 수 있으니). 하지만 정말 크림이 덮인 빵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치솟을 때가 있다는 건 고백해야겠다(언젠가 사진이 올라오면 참지 못한 것으로 간주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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