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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Apr 24. 2020

재택 3년 차 직장인의 재택 이야기


어떻게 재택을 시작하게 됐나?

2018년. 우리 회사는 몇몇 시니어를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실험했다. 그리고 이 실험을 발판 삼아, 재택근무가 업무를 수행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음이 증명되고, 2019년부터는 전면적으로 모든 직원이 재택근무하는 체제에 들어갔다.

재택근무를 실험한 그 해, 나는 재택근무 베타테스터 중에 하나였다. 발단은 당시 새롭게 리모델링한 회사 코워킹 공간의 새집증후군. 공간이 오픈한 지 피부가 온통 뒤집어졌고, 이 때문에 일을 그만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대신, 용기를 내 대표님께 재택근무를 제안했고, 감사하게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주셨다.  그리고 저마다의 사정으로 그 해, 나를 포함한 3명의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이 셋을 제외하고는 다른 직원들은 정상적으로 출근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출근하는 동료들에게 약간의 부채의식이 있었다. 왠지 특권을 누리는 느낌이 없지 않아서, 더더욱 업무에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재택근무 근력 키우기

재택근무에도 적응이 필요하다. 마치, 아이들에게 자기 주도형 학습 능력을 키워주는 것처럼, 재택근무를 하려면 '자기 주도형' 노동자가 돼야 한다. 아마, 시키는 일만 넙죽하는 것에 익숙하거나, 또는 자기가 업무 능력치(자기가 할 수 있는 업무 파악할 수 있는 해안과 스케줄링 능력 등등)에 대한 감이 조금 부족한 사회초년생이라면, 갑자기 재택근무를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실제, 재택근무를 하며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졌다'라고 하는 자극적인 기사도 나돌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난 오히려 출퇴근에서 아낀 시간으로

삶의 경계가 더 넓어진 것 같은데... 아래는 3년 차, 재택근무 회사원으로 살며 나름 정리한 재택근무 근력 키우기 팁을 몇 가지 공유한다.


적응기

첫 적응기에는 기존 회사에 나갈 때와 동일한 근무 시간으로 일한다. 예를 들어, 10시-7시까지 근무했다면, 10시가 되면 딱 책상에 앉는다. 점심시간도 통상 먹던 시간에 맞춰 지킨다. 그리고 반드시 7시가 될 때까지는 업무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가끔 업무량이 평소보다 적을 때에는 7시보다 일이 마무리될 때가 있다. 그때는 업무에 관련된 자료 조사를 실시한다. 7시가 되면 노트북을 딱 덮는다.


이렇게 근력을 기르는 초기 기간이 필요한 이유는, 내가 어떤 크기의 일을 맡아 진행할 때, 내가 하루에 끝낼 수 있는 양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6개월 정도 적응 기간을 거치고 나면, 나중에는 시간 관리에 대한 감이 생긴다. "이 일이 며칠 걸릴 수 있는지, 혼자 할 수 있는 분량인지, 어떤 리소스가 더 필요할지 등" 이런 기본적인 감을 익히면, "오히려 재택근무하면 일이랑 생활의 경계가 무너지지 않아요?"라고 흔히 하는 질문에 "아니"라고 단호하게 답을 할 수 있게 된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정신적으로 해이해지지 않는다는 것. 초반부터 시간 관리에 대한 감을 잡지 못하거나, 갑자기 내게 주어진 시간과 자율성을 관리하지 못하면 되려 생산량이 현격히 떨어질 수 있다. 재택근무를 시작했다면 초반에 습관을 잡기 위해서라도 '동일한 근무 시간'으로 일하는 기간을 거치길 추천한다. 이런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나면, 일의 분량 대비 내가 끝낼 수 있는 업무의 양에 대해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눈썰미가 생긴다.


이런 복병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응 완료기

어느 정도 재택근무에 적응이 완료되면, 적응기처럼 딱 9-6 또는 10-7과 같은 출퇴근 시간에 딱 맞춰 일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받은 일의 분량에 따라서 원래 근무 시간 내보다 더 짧게 때로는 더 길게 일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기존 업무 보는 시간을 중심으로 일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날은 하루 4시간만 일해도 되는 날일지라도 저녁 6시부터 10시에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아침 9시에서 저녁 6시 사이 중의 4시간을 일하는 것이 더 좋다. 왜냐하면 아무리 재택근무일지라도, 함께 일하는 동료 또는 클라이언트, 거래처 직원들을 서면상으로라도 응대해야 할 일이 생기고, 그들은 대부분 통상적인 업무 시간에 맞춰 내게 이메일이나 전화를 하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올빼미형 인간이라 새벽시간에 업무가 더 잘된다 할지라도, 새벽에는 새벽대로 근무하고 낮에는 낮대로 다른 사람의 문의에 응대해야 한다면 오히려 연장 근무하는 느낌이 들 거다.


클라이언트나 파트너사 직원에게는 내가 재택근무 체제로 일하고 있다는 걸 되도록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야 적어도 통상적인 업무 시간 외, 내게 전화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적어도 상대방이 미안함 감정을 느끼면서 연락하게 할 수 있다. 재택근무라고 해서 아무 때나, 아무 시간에 연락하거나 업무를 지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회사 직원들과 함께 대면으로 만나는 것이 좋다. 아무리 비대면성 서비스가 늘어나고, 코로나 이후로 트렌드가 되고 있을지언정, 실제 만나는 것처럼 돈독함을 유지하기란 다소 어렵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주 1회 전체 회의에서 다 같이 만나는 시간을 꼭 가진다. 일주일에 한 번씩 회사 동료를 만나면 어느 때보다 더 즐겁고, 잘 지냈냐고 안부를 묻기도 하는데... 이건 왠지 주말부부가 더 금술이 더 좋다는 말을 실감 나게 한다.


재택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외부 미팅을 나가야 할 때가 있다(업의 특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때 일정 관리를 잘 못하면 재택이 무색하게 일주일의 대부분의 시간을 외부에 미팅을 다녀야 할 수 있으므로, 미팅은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몰아서 한다는 식으로 스케줄을 편성해 놓으면 좋다. 그리고 나머지 요일은 실무에만 집중하는 것이 효율이 더 오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체력관리. 재택근무를 어느 정도 하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게 있는데, 출퇴근 길이 적어도 내게 최소한의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재택근무를 한다고 밖을 나가지 않고 집에만 콕 박혀 있게 되면 때론 햇살 한번 쬐지 못하게 될 때가 있는데(창문 넘어오는 햇살 말고 직빵으로 받는 햇살), 이렇게 은둔자 생활을 하다 보면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걸 느끼게 된다.


출퇴근에 아낀 시간(적어도 2시간 정도는 아낄 수 있다)을 침대에서 더 자는데 보내는 게 아니라, 동네 산책을 하든 집에서 요가를 하든, 꼭 운동하는데 상당량을 쓰라고 권하고 싶다! (적어도 하루에 8 천보 이상은 걷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도 괜찮다). 재택이라고 체력관리를 하지 않거나, 집에서 늘어지는 것을 실컷 하게 되면 정말 걷잡을 수 없는 게으름의 늪에 빠지게 된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쾌청함을 유지하고 싶다면 꼭 체력관리에 힘쓰라. 나는 아침/저녁 동네 산책과 요가를 매일매일 하며 체력을 관리하고 있다.


재택근무를 하며 내게 생긴 변화

체력이 좋아졌다! 우선, 출퇴근하며 절약한 시간을 운동을 하는데 많이 쓰고 있다. 예전엔 일어나자마자 부랴부랴 출근 준비하느라 늘 아침이 피곤했는데, 재택근무 이후엔 여유롭게 산책이나 요가로 쾌청히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

새로운 취미가 몇 가지 늘었다. 브런치를 운영하거나, 바이올린을 배우고, 최근에는 옥상에 텃밭까지 만들었다! 삶에서 출퇴근 그리고 준비기간을 덜어내는 것만으로(그리고 그만큼 체력이 비축되므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파이프라인(직장과 연계된 부수입을 창출하거나 자기 계발을 하는 것)을 만드는데 시간을 어느 정도 할애할 수 있다. 재택근무를 하며, 아낀 시간과 체력으로 Minimize Impact를 운영하고 있다. 직장 외에 다른 기획을 받아서 진행하거나,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최근 들어서는 친환경 숙소를 컨셉으로 남는 방 하나를 에어비앤비로 운영하고 있다.

아토피를 조금 더 수월하게 관리할 수 있다.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혹시 지병이 있는 분이라면 어느 정도 동조할만하다. 재택근무를 하면 우선 업무 환경을 나에게 맞출 수 있고(특히 아토피에 중요한 온습도 조절), 집에서 밥을 대부분 지어먹을 수 있으며, 화장을 좀 덜 해도 되기 때문에 아토피 관리에 재택근무는 신의 한 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토피는 체력관리를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재택근무 덕에 삶의 피로도가 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그 외

요샌 재택근무가 늘어나며, 재택근무 관련한 협업 툴에 대한 소개가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여기서 굳이 두 번 언급할 이유는 없지만 내가 주로 사용하고 있고 또 추천하는 툴은 다음과 같다.

 

슬랙(프로젝트 단위 별로 소통할 수 있는 협업 툴)

행아웃(영상 통화 서비스)

구글 독스/구글 프레젠테이션 등(특히 제안서 등을 쓸 때 유용한데, 팀원들과 함께 문서를 작성할 경우 실시간으로 서로의 분량을 확인할 수 있고, 보완이 필요할 때 메모를 남길 수 있어서 유용하게 쓰고 있다)

 

적어도 저 세 가지 툴만 잘 사용해도 무리 없이 재택근무를 진행할 수 있다.


환경적 측면에서 좋은 점

재택근무를 하면서 가장 좋은 장점 중에 하나는 출퇴근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더불어, 교통비도 확 준다)! 최근에 코로나19의 역설이라는 제목으로, 코로나가 멈춘 세상이 가져온 긍정적 변화에 대한 내용을 다룬 기사들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교통체증이 사라지고 대기오염이 현격히 개선된 것은 두말할 것 없다. 중국에서는 코로나 기간동안 평균 대기오염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숫자가 8100여명 정도 줄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통계는 공장 생산라인 등 인간의 전면적인 활동이 멈췄을 때 나타난 숫자이지만, 출퇴근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 물질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양일 것이다.

중앙일보(https://news.joins.com/article/23742480)


탄소배출 절감 효과는 어느 정도냐고? 녹색연합에서 작성한 기사 일부를 발췌한다!


교통량 감소로 인한 에너지 절감과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는 탁월하다. 수원에 살고 있는 공무원 K 씨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별관으로 자동차 출퇴근을 하는 대신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수원 스마트워크센터(화서역)에 일주일에 두 번 출퇴근을 할 경우 줄일 수 있는 이산화탄소량을 얼마나 될까?

/수원에서 광화문까지 자동차로 출근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네이버 map 활용)//
수원 화서에서 광화문까지 편도 총거리 40.29km에 1시간 6분이 소요되고, 비용은 9,223원(주유비6,423원+통행료2,800원)이 든다. 왕복 80.58km를 중형차로 다녀올 경우 17k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소나무 6그루를 심어야 흡수할 수 있는 양이다. 1년 52주 중에 50주를 출근한다고 치고, 일주일에 2번씩이면 모두 100회. 스마트워크센터를 이용하면 주유비 128만여 원을 절약하고, 이산화탄소 1,700kg(소나무 566그루)을 줄일 수 있다. 서울시내 교통 혼잡 방지와 대기오염방지 효과도 거둘 수 있고, 교통 혼잡에 시달리던 시간을 업무효율을 높이거나 개인의 발전과 가족을 위해서 쓴다면 행복지수도 높일 수 있다. 행정안전부는 사무직 860만 명이 스마트워크에 동참할 경우 연간 111만 톤의 탄소배출량이 감소되고, 1조6,000억 원의 교통비용 절감된다고 한다.


이참에 모든 회사가 재택근무로 바뀌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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