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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Jun 01. 2022

조간대에서 아빠를 만나고 또 영영 헤어진다

얼마 전, 제주 조간대에 사는 생명체를 다큐멘터리로 담은 감독의 인터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바다와 육지 사이. 밀물에 잠겼다가 썰물에 드러나는 지역, 조간대. 

바다가 바로 육지로 바뀌지 않듯이, 바다와 육지 중간을 잇는 공간. 


잠과 현실의 경계에도 조간대 같은 구간이 있다. 잠에 취해있다 깨어나서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을 때, 얕게 든 잠에 꿈 속 풍경과 방 안의 풍경이 중첩되어 나타날 때, 꿈에서의 인식이 현실과 교묘하게 뒤섞여 있을 때. 꿈이 썰물처럼 서서히 빠져나가면 현실이 하나 둘 밀려온다. 


얼마 전 기억나지 않는 꿈을 꿨다. 다만 '아빠에게 나중에 뭔가 이야기 해야지'라고 마음먹은 꿈 속의 생각이 어렴풋이 잔상으로 남아 있다. 썰물이 빠지듯 잠에서 스스륵 깨어났고 동시에 그 생각이 지켜질 수 없는 현실(인식/사실)이 내가 누워있는 방 안으로 스몄다. 아, 아빠는 돌아가셨지. 그게 언제였더라? 아, 올해 2월이었지. 현실이 내 몸으로 스르르 내려 앉는 이상한 느낌. 아빠와 조우할 수 있는 일, 아빠와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꿈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걸 실감하던 이상한 순간. 조간대에서 아빠를 만나고 또 영영 헤어진다. 


요 몇주간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모두 증발되고 그나마 남은 마음이 바닥에서 아주 얕게만 찰랑이는 느낌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다. 호르몬 때문인가도 생각했지만 생리가 끝난 몇 주가 지나도 그대로였다. 아주 친한 친구들에게 그런 마음을 고백할 때면 모두들 올 초에 아빠가 돌아가신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하지만 (아빠에게 미안하지만) 아빠가 돌아가신 경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렇다해도 문득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에 자신이 없을 때면, 모든 것에서 나를 드롭해버리고 싶을 때면 (의도치 않게)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호흡기에 의탁한 아빠가 숨쉬는 모습, 살아 있어서 살아 내려고 숨쉬던 아빠의 모습, 투병할 때 '내가 곧 낫겠제?라고 확인받고 싶어하던 아빠 마음의 면면이 그래도 내가 살아가야 한다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의지보다는 책무같은 느낌으로... 아빠는 곁에 없지만 아빠는 여전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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