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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mize Impact May 09. 2022

아빠 없는 첫 어버이날

올해는 아빠 없는 첫 어버이날을 보냈다. 작년까지만 해도 올해 어버이날을 아빠 없이 보내게 될 줄 몰랐다. 사람 앞 날이 한 치 앞을 모른다는 말이 이제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작년에는 어떻게 어버이날을 보냈더라? 고향에는 다녀왔나? 사랑한다고 말을 한마디 나눴는가? 카네이션 한 송이를 건네드렸는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뭐든 기록이 없으면, 인상 깊은 순간이 없으면 서로 간에 쌓았던 추억이 공중으로 흩어져 버리는 듯하다.  


어릴 때, 학교에서 빨간색, 분홍색 색종이로 개발새발 카네이션을 만들거나 문방구에서 카네이션을 사 가면 아빠는 꼭 그날 하루 동안 가슴팍에 카네이션을 달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생각해도 조악하게 만든 종이 카네이션을 가슴팍에 붙이고 있는 아빠를 보면서 '아빠는 안 창피하나?'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어릴 때 나는 아빠가 우리 아빠인 게 종종 창피할 때가 있었는데, 아빠는 내가 아빠 딸이라서 창피하다 생각한 적이 있었을까? 아직 부모가 아닌 나는 부모 마음을 잘 모르겠다. 


어버이날 전날, 외할아버지와 엄마, 언니 그리고 신랑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어버이날 당일은 비교적 조용하게 시간을 보냈다. 양배추를 사러 마트에 갔더니 열무 가격이 싸길래 한 단을 집어왔다. 집에 돌아와 계획에 없던 열무 다듬기를 하면서 생전 열무물김치를 담가주던 아빠 생각이 났다. 고향 집에 돌아오면 나는 냉장고에서 열무물김치를 꺼내 먹을 줄만 알았는데, 열무 다듬는 게 이렇게 번거로운 일인 줄 이제야 알았다. 열무에 박힌 가시 같은 털들이 이렇게 따끔따끔했구나, 열무 뿌리에 흙이 맺힌 부분을 이렇게 일일이 손질해줘야 하는구나... 


벌써 11년 전의 일인가 내가 외국에 살 때 매일 같이 한식을 먹고 싶다고 페이스북에 한식 메뉴를 올리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아빠는 지자체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컴퓨터 수업(아빠는 항상 콤퓨타라고 발음하곤 했다)을 듣고 계셨는데, 타지에 나가사는 딸내미가 열무물김치를 먹고 싶다는 소식을 듣고 연습 삼아 그리고 애정을 담아 열무물김치 담그는 방법을 손수 보냈다. 오래간만에 오랜 메일함을 뒤적여 '물김치'를 검색했더니 아빠가 보낸 그때 이메일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독수리 타법으로 이 긴 글을 어떻게 적었을까. 아마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이다. 아직도 이 글을 쓴 저편에 아빠가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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