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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emouse Nov 07. 2023

이방인의 삶

20년째 이방인이면 이젠 이방인이 아닌건가

중고등학생때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잠시 궁금했던것 같다. 전혀 연고가 없는 타지 또는 타국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전혀 인종이 다른 사람들에게 입양이 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무엇이 가장 힘들까? 티비에 나오는 서양인 양부모들은 꽤나 친절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것 같던데 정말 그럴까?


미국에 성인이 된 이후에 왔고 약 19년동안을 캘리포니아 대도시들에서 살았다. 이미 한국인의 정체성이 확립된 나이에 왔고, 대도시에는 늘 한국인 또는 동양인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나는 내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별로 해보지 못했다. 나는 항상 한국인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회사일을 할때만 영어의 스트레스가 있었을 뿐, 퇴근만 하면 한국인으로 돌아가 한식을 먹고 한국 방송을 보고 한국어를 쓰는 이웃 또는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러다 보니 영어 단어도 회사 일에 많이 쓰이는 단어들을 주로 알고 있었고, 시시껄렁한 농담, 또는 뭔가 인문학적인 대화, 또는 정치, 문화, 시사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대화를 영어로 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데 나에겐 이런 대화들은 사람을 사귀고 깊이 있는 대화를 하는데 필수적인 대화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이 아닌 친구를 안사귀었다. 회사 일만 해도 벅찬데 회사 밖에서도 영어의 부담을 느끼기가 싫었다. 그리고 너무 쉽게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39살에 정말 열린 사고를 가진 미국 백인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이 사람에게서 내가 포기했었던 결혼에 대한 희망을 보았고, 그래서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와 동시에 갑자기 이방인이 되었다.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왜 나는 결혼이 그 사람과 나 둘의 문제이고, 나는 그 사람의 단점까지도 감싸 안을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결혼은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난 모르겠다. 왜 모르냐면 내가 틀렸기 때문이다. 결혼은 우리 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람의 가족, 친구, 문화, 식습과, 가치관 플러스 이 사람, 그리고 이 모든것을 낯설어하는 나의 문제였고, 나는 이 사람의 단점을 감쌀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이 사람의 그 많은 주변인과 그 문화가 가진 단점까지 감쌀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미국에 가족이 전혀 없고 친구들도 코로나 이후로 다 흩어져 버린 나는, 나 홀로 남편의 거대한 군단과 그 문화에 압도되었다. 나는 이 상황에 맞서서, 이렇게 다른 외모와 수준차이나는 언어구사력을 가지고 거기에 철저하게 동화되려고 발버둥을 치든지, 이방인처럼 눈치보며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맴돌든지, 아니면 맟서서 혼자 당당하게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할지를 선택해야 했다.


코비드 때문에 우리 둘은 재택근무라는, 유사이래 가장 편안한 직장문화를 가지게 되었고, 더이상 그 비싼 샌프란시스코에 살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남편의 가족이 있는 시골로 이사를 했다. 미국엔 다양한 모습의 시골이 있는데 내가 사는 이곳은 백인이 95% 정도 되는 시골로, 아시아인은 커녕 백인 아닌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다행히 이런 비율을 가지고도 인종차별은 거의 없는 곳이다. 


처음에는 이들과 동화되려고 발버둥을 쳤다. 딱히 다른 방도가 있는지 생각을 못했다. 나는 내 남편과 결혼을 했고, 그의 가족을 내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했고, 여기 시골로 이사를 했으니 이 이웃들을 내 이웃들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이 모든 사람들과 환경과 분위기는 미국에 20년가까이 살았던 나에게 조차 참 낯설었다. 아마도 도시와 시골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모습을 볼수가 없고 내 눈에 비친 것은 다 백인 뿐이니, 가끔 나는 나 자신이 저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잊어버리는 것이 정신건강에는 더 좋다. 그런데 몇달도 되지 않아 나는 알았다. 이건 불가능하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내가 40여년간 학습하고 경험해 온 나만의 문화와 경험치가 이들과 충돌한다. 만약에 내가 입양이 되어 한두살때부터 이들중 한 가정에서 키워지고 자라났다면, 그랬다면 난 힘들지 않고 동화될 수 있었을까? 아니, 아무리 입양이 되었다 한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나는 다르게 생겼다라는 것을. 그리고 아무리 우아하고 친절한 사람들이라 해도, 이 작은 도시에서, 다섯손가락 꼽을정도밖에 없는, 이렇게나 이질감 느끼게 생긴 사람을 아무 허물없이 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내가 노력을 한다 해도 이 사람들 눈에는 나는 외래 종이고 이방인이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좀 우울해졌고 답답함을 지속적으로 느꼈다. 이미 우울증을 경험했고 그때문에 너무 고생했던 나는 우울증을 정말 피하고 싶어서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여행을 자주 다녔다. 여행지에서 한인 식당이나 마트를 보면 반갑고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결혼한 지 1-2년이 채 되지 않아서, 나는 결혼에 대한 회의도 많이 들었다. 삶이 나를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틀었는데, 그 방향엔 아무도 없는 아주 황량한 사막같은 느낌이었다. 나의 생각에 동조하고, 내가 맛있게 먹는 음식을 같이 즐기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시원하게 떠들고 이러네 저러네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은 남편 한명 뿐이다. 그런데 남편은 여기서 "저들" 중 하나이지, 나와 둘이 함께 "우리"가 아니다. 남편은 이민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었기에, 그리고 여기는 미국이기에, 나를 이해할 것이라는 기대는 어차피 없었지만,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좋은 자연과 우리를 항상 도와주는 자신의 가족들, 도시에 비하면 너무도 친절한 이웃들, 저렴한 생활비와 집값으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환경 등, 그는 이곳이 우리에게 최적이라고 생각했고, 나의 이런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이방인의 감정과 외로움을 이해하는것이 정말 힘들어 보였다. 


수많은 이민자들이 모여 만든 이 나라에서는, 이방인의 낯설음과 서러움 등을 이해하기 보다는, "당신의 선택으로 이곳에 와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언어와 문화 정도는 이곳의 방식을 배우고 따랴야 한다" 라는 암묵적인 지침(?) 같은게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한국어 구사가 완벽하지 않은 미국인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하고 그 노력만으로 대견해 하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한국인을 보면 미국인들은 대체로 답답해 하거나 한심해 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인종차별은 20년동안 두세번 정도밖에 경험하지 않았지만, 영어에 대한 지적은 수도 없이 들어 왔다. 인종은 내가 노력해서 되는것이 아니지만, 언어는 노력하면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게 때문이다.


동화되려는 노력이 어렵겠다라고 생각이 들자, 그 다음으로는 아웃사이더처럼 밖으로 돌며 이도 저도 아닌 채 내 기분이 내킬때만 남편의 가족 및 이곳 사람들을 만났다. 저들의 대화에 낀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영어도 완벽하지 않은 채로, 저들의 문화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서, 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대화를 듣고 반응을 해 주는 것이 참 피곤했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허무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그냥 나 자신이 되는 것이었다. 나 혼자 한국인고 (저들은 한국에 대해 아는게 거의 없어서 한국이 열대 기후라고 알고 있을 지언정), 난 다르게 생겼고, 저들의 대화를 다 이해 못하고 끼어들지 못하고, 다른 음식을 맛있어 하고, 다른 영화 티비쇼를 보고, 다른 가치관을 가진 것을 당당하게 생각하고 더이상 저들 사이에 억지로 끼는 것을 거부하는 단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뼛속까지 외롭다. 나도 누군가와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채로 수다를 떨고 싶고, 내 발음이나 단어가 틀릴까봐 긴장하지 않고 싶고, 한국에서 유행하는 주제로 이야기도 하고 싶고, 떡볶이나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맛있다고 서로 맞장구 치고 싶다. 그러면 사람들은 말한다. 너의 선택이니 어쩌겠냐고. 그래, 그래서 더 외롭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라서 위로받지 못하는 것도 외롭다. 


그런데 이런 외로움때문에 내 삶의 방향을 다시 틀지는 않을 것이다. 살다보면 이 외로움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결혼을 했어도 어쩔 수 없이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고, 이것은 살아가는 중에 맞딱뜨린 어떤 소소한 어려움이다. 난 이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어봤는데, 이 어려움은 감당할 수 있는 어려움이다. 다만 이런 상황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로부터는 이해받기 힘든 어려움이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어차피 혼자 가는 길인데, 남들이 이해해주는걸 뭘 그렇게 바랄수 있겠는가. 그냥 혼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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