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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emouse Mar 19. 2024

약점을 가지고 일을 더 잘하려면

그게 무슨 일이든

나는 일개 직장인이다. 그럼에도 나의 일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이다. 주변의 직장 동료, 예전 동료, 아니 그 누구와 비교해도 나만큼 혹은 나보다 일을 목숨처럼 여긴 사람은 열 명 중 한두 명이었다. 물론 악착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여기저기 많이 있다. 그러나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 보니 그 비율로 따지면 한 조직 안에서 일에 목숨 거는 사람의 숫자는 언제나 소수이다.


나는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지금의 나보다도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던 아버지를 보고 자랐고, 재벌과 결혼하지도 않았으며 일확천금을 벌어본 적도 없다. 그애서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죽을 때까지 먹여 살려야 한다. 그런데 자기애 또한 강한 편이라, 나중에 늙은 내가 먹고 싶은걸 못 먹고, 가고 싶은데 못하고 예쁜 옷을 못 입는 상상을 하면 견딜 수가 없어서 악착같이 일을 했다. 그래서 한때는 생각했다. 나는 생존을 위해 이렇게 열심을 내는구나라고. 그런데 조용히 생각을 해보면, 그 생존 이상의 뭔가를 나는 간절히 원했던 것 같다. 그건 일종의 명예욕이나 과시욕이었던 것도 같고 자기만족 또는 자아실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취업을 한 이래로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의 머릿속 한편엔 언제나, 어떻게 하면 나의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고찰이 존재해 왔다. 나는 지금의 일을 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고 여러 약점들이 있다. 미국으로 이민와서 일을 시작했지만 미국인들 틈바구니에서 나의 영어는 늘 부끄럽고, 나의 말주변은 한국말로 해도 별로 좋지 않다. 한국에서 주입식 교육으로 대학까지 나온 나는 누가 시키는 일 하는것이 익숙하고 그 너머를 보는 능력이 부족했으며, 성격또한 내성적이고 겁이 많다. 논리적으로 언쟁을 벌이는것이 매우 불편한데 미국에선 이런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내가 그렇게 일을 잘하고 싶었던 이유는 아마도 이런 나의 단점들을 부정하거나 숨기고 싶었기 때문일수도 있겠구나 싶다.


사람이 뭔가를 15년 동안 고민하고 파다 보면 한두 가지 정도는 얻어걸리는 게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얻어걸린 것은, 미국 내에서 나의 커리어가 나름 선방을 해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성공의 방법들을 나열할 수 있을 정도로 정리된 깨달음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성공이란 것이 미국의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연봉 올려가며 15년 동안 버텼다는, 누가 들으면 피식거릴만한 보잘것없는 성공이었어도, 너에갠 절실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정리해 본다.


성공의 방법 첫 번째는 겸손한 태도이다. 겸손한 태도가 일을 성공적으로 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피드백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아서, 나는 언제나 맞지 않다. 내가 틀릴 경우가 있고, 심지어 내가 다 틀릴 때도 있다. 꼭 정답이 있는 문제만이 아니라, 나의 일을 처리하는 습관이나 소통하는 방법, 태도 등에 있어서도 나는 틀릴 때가 있다. 내가 말을 답답하게 할 수도 있고, 문서를 좀 더 두괄식으로 작성해야 할 때가 있고, 영어의 미숙함 때문에 내가 문서에 쓴 단어들이 촌스럽거나 어색할 때가 있으며, 나의 어떤 말이 다른 이에게 상처가 될 때가 있고 내가 제시한 해결안보다 더 좋은 해결안이 언제든지 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개선해야 할 구석이 한두 군데는 있기 마련이다. 그런 단점들을 완벽히 제거할 수는 없더라도, 조금씩 개선하고 나면 나는 어느새 일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나의 단점을 개선하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내 주변의 동료들이나 상사, 혹은 그 누구에게서라도 이것들에 대해 들어야 한다. 나 자신을 정확시 직시하고 알아야 개선할 수 있다. 두루뭉술하게 알아서는 개선이 잘 안 된다. 나는 나 자신을 절대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피드백을 일 년에 한 번 하는 업무평가에서 내 윗사람에게서만 듣는 걸로는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는다. 윗사람들은 그들이 평가해야 할 대상이 대체로 나 하나가 아니고 여러 명이며, 대체로 바쁘거나 본인들이 바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나의 모든 면을 세세히 관찰하고 개선점을 정리해서 주지 않는다. 내가 윗사람일 때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건 상당히 피곤한 일이고, 그렇게 성의 있게 지적을 해봤자 어떤 사람은 감정적으로 변해서 조목조목 핑계를 대거나 반박을 하기도 하며, 심지어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뒤통수 맞았다고 생각한다. 결국 몇몇 심각한 단점들만 지적을 하는데,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 나 잘못한 게 별로 없네 잘하고 있나 보다 생각하여 그 몇몇 단점들조차 좀처럼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피드백을 받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방법이 바로 겸손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자존심이 너무 세거나 오만한 태도가 있거나 너무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들에겐 무언가 좀 잘못되어도 그게 크리티컬 하지 않은 이상 잘 지적하지 않게 된다. 굳이 그걸 지적하지 않아도 내 일에는 지장이 없고, 결국 잘못되면 저 사람이 다 책임질 일인데 내가 왜 욕을 먹어가며 나서야 하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겸손한 태도가 있는 사람에게는 뭔가 살짝 잘못되었을 때 이야기하기가 수월하다. 어찌 보면 만만하게 보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적질을 받는 것은 피곤하고 기분이 안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 번만 더 나아가 생각하면, 그건 지적질이 아닌 피드백이며, 누군가가 의미 없이 태클을 거는 것과 피드백을 구분하는 안목도 필요한데, 이런 안목 또한 피드백을 많이 받아봐야 생긴다. 피드백은 내 일을 완벽에 가깝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인간관계도 개선시킨다. 내 일이 잘 됐을 때 나는 피드백을 준 사람에게, 당신 덕분에 잘됐다, 그때 피드백 준거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그 사람은 뿌듯해하며 다음 기회에 비슷한 피드백을 또 준다. 이런 동료들이 주변에 쌓이면 나의 일은 점점 더 개선되고 성공적이게 된다. 겸손한 태도의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아, 그런 방법이 있겠구나, 피드백 고마워. 바로 함 해볼께" 라고 반응하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이야기가, 동아시아인 들은 (일본, 한국, 중국) 지나치게 겸손해서, 일은 잘하지만 자신을 깎아먹고 승진도 잘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겸손하지 않아야 할 때 겸손하면 이렇게 된다.  겸손하지 않아야 할 때는 다음과 같다. 연봉협상할 때, 1년에 한 번 하는 업무 평가를 받을 때, 회의 중에 내가 확실히 맞는 걸 알고 있을 때 등이다. 이 세 가지 경우엔 친절하고 정중해야 하지만 절대로 겸손해선 안된다.


여기서 한번 더 나아가 동료와의 혹은 상사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면 나의 겸손함은 더 빛을 발한다. 나는 겸손한 태도로 피드백을 잔뜩 받아 나를 발전시키면서, 내 동료에겐 굳이 피드백을 하지 않음으로 나와 그들과의 격차를 더 벌리며, 심지어 내 직속 상사보다 내가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도 있다. 그중에 누군가는 겸손함으로 피드백을 받을 자세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선심 쓰듯이 피드백을 줄 수도 있으나, 나의 짧은 경험으로는 그런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어서, 나는 단지 나의 이익을 챙기며 굳이 욕을 먹지 않는 쪽을 택한다. 다만, 피드백을 아낄 때와 내가 목소리를 내야 할 때는 구분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는 것이 나의 임무일 때가 있다. 이럴 때조차 안 나서는 것은 직무유기가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성공의 방법은 일단 하는 것이다. 이건 마치 아침에 일어나면 생각하지 말고 그냥 운동하라 라는 명언과도 같은 것인데, 특히 재택근무가 시작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일을 차일피일 미루고 닥쳐서 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되었고, 나 자신도 그럴 때가 있었다. (꼭 재택근무 때문은 아니고, 출퇴근을 할 때도 이런 경우들은 비슷하게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재택근무이고 내 동료들이 내 책상을 볼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일을 잘 미루는지, 기한이 닥쳐야만 부랴부랴 하는지, 아니면 누가 보지 않아도 꼬박꼬박 맡은 일을 하고 있는지는 웬만큼은 서로 알게 된다. 막판에 하는 게 더 집중이 잘되고 결과도 좋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게 되지만, 대부분의 일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하고 고민했던 시간만큼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 이 일의 기한이 많이 남았다 하더라도 일단 오늘 시작이라도 해야 내일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거기에 살을 붙이고 개선에 개선을 복리처럼 더할 수 있다.


세 번째 성공의 방법은 두 번째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데, 요구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더 많은 일이라 함은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가져온다는 뜻이 아니라, 내 지식과 스킬을 업그레이드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선택적으로 더 많이 내쪽으로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위험이 뒤따르는데, 막상 내가 하겠다고 큰소리쳤는데 내 능력 밖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이라는 것을 많이 해야 한다. 이 일을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머릿속으로 설계를 미리 해 놓고, 내 능력 밖인 부분이 있다면 누구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지 그 사람들의 리스트까지 머릿속에 떠오른 다음에 가져와야 한다. 피곤하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더 많은 일을 떠안을 수 있도록 추구해야 한다. 어떻게든 되게 만들고, 주변 사람들을 구슬려서 도움을 받고, 이렇게 아등바등해서 완벽하지 않더라도 내놓아야 나의 열정을 사람들은 기억하여 나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막상 내가 해서 보여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나의 역량을 모르고 그러기 때문에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있다. 조직이 클수록 더 그렇고, 재택근무여도 그렇고, 또 나처럼 미국에서 비주류 이민자이면서 여자이며 내성적일 경우엔 더 그렇다.


나는 나 나름대로 계산된 그러나 수동적인 적극성을 열심히 내세워야 한다. 타고난 성격이 내성적인데 억지로 나대고 휘젓고 다니는 건 오히려 생각지 못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어서, 조용히 강한 이미지를 나의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생각하기를, 조용한데 보기보다 보통 아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저 사람은 영어가 네이티브가 아니라, 이민자라, 내성적이라, 혹은 여자라 저평가되어있지만 어딜 가도 잘하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조직에서 저평가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키 포인트이다. 그러려면 필수적으로 나에게 요구된 것보다 조금 더 할 것을 추구해야 한다.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브랜딩이 먹히고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준다. 나는 백인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며 미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랬지만, 꼭 여기 미국이 아니어도, 누군가는 자신의 고유한 약점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있을 테니, 그런 경우에는 도움이 될 것 같다. 가령 대학을 안 나왔을 수도 있고, 아이를 키우다가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돌아왔을 수 있으며, 동료들보다 나이가 한참 많다거나, 나처럼 내성적이거나 남에게 나의 잘남을 이야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사람들 말이다.


나는 회사에서, 혹은 어디에서나 (주로 백인이면서) 미국에서 나고 자라 명문대를 나오고 언변이 화려하며 늘 논리적으로 본인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잘하고, 외모도 수려하고 성격까지 좋은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에서 이런 사람들을 가장 많이 자주 보았다. 이런 사람들은, 좀 드물긴 하지만, 굳이 일을 더 가져와서 꾸역꾸역 하거나, 겸손한 태도로 일관하지도 않고, 본인의 잘남을 마음놓고 드러내고, 살짝 오만한 태도로 그걸 증명하면서도 여전히 승승장구한다. 나는 어쩔수 없이 저들이 아니기 때문에 나 나름의 성공 방법들을 개발해 나갈 수 있었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이런 경우가 불공평하다고도 생각했다. 도대체 저들을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하면서 절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Angela Duckworth 의 Grit 이라는 책에도 나와있듯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끈기있게 물고 늘어지는 자세로 노력을 하는지가 성패를 좌우할수 있다.


나는 일을 할 때 이 프로젝트를 "왜" 하는지를 가장 먼저 묻고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정작 내가 "왜" 이렇게 일을 중시하고 더 잘되고 싶어 하는지는 궁극적인 한가지 이유를 뚜렷하게 모르겠다. 여러 가지가 복합되어 있는 이유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모든 프로젝트가 그렇듯 궁극의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걸 모르겠다. 아마도 이렇게 발버둥치는것이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라서 그런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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