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 독후감 및 책 추천
감기가 걸려 기침이 몇주째 낫지 않았던 적이 있다. 원래 감기는 시간이 지나야 낫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굳이 의사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도무지 낫지를 않아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의사를 찾아 갔다. 여기 미국에서는 한번 병원에 가면 (일주일 안으로 예약이 잡힌다는 가정하에) 읽어야 할것도, 작성할 서류도 싸인할것도 많고 예약을 하고 가도 최소 삼십분은 기다리고, 난 병원을 자주 가질 않아서 주치의가 없으니 갈때마다 체중재고 혈압재고 오만가지 질문을 해 대기 때문에 의사 얼굴도 보기 전에 한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의사를 보고 나오면 또 약국에 들러서 약을 타야 하니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 귀찮아서 감기나 기침 따위로 병원을 가는 일은 80세가 넘는다면 고려해볼 옵션이지 바쁜 청장년들은 좀처럼 가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너무 기침이 멈추질 않으니 혹시 감기가 아닌 다른 병인가 싶어서 병원 예약을 했고, 병원에 가는 길에도, 의사를 보면서도, 내 머릿속으로는, 의사를 본다고 기침이 얼마나 좋아지겠어... 시간만 버리는거 아니야 라고 투덜대고 있었다. 그런데 의사가 처방한 약을 타서 먹고 바로 그날 좋아져서 그 다음날엔 기침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그 약은 코딘이라고 하는 마약성분때문에 의약계에선 논쟁의 여지가 있는 약으로 알고 있는데, 마약은 평생 냄새도 맡아본 적 없는 나에겐 참으로 기적의 약이었다.
서점에서 이 책을 집을 때도 그랬다. 대충 남녀가 사랑에 빠져 결혼한 그 후의 일상을 어떻게 풀어 가는지에 대한 내용이다라고 알고 있었고, 결혼 생활에 큰 불만과 위기를 느꼈던 나는 뭐라도 도움되는게 있나, 건질만한 말들이 써있을까 해서 이 책을 구매했지만 기대는 없었다. 뭐 얼마나 새로운 내용이겠어. 그냥 뻔한 내용 몇마디 적혀 있으려나, 연애때는 좋았지만 결혼하고 보니 현실이다 라는 식의, 누구나 다 알만한 내용이면서, 첫번째 결혼을 12년 하고 끝냈고 이제 두번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이 과연 얼마나 자주 냉소를 안겨줄까 라는 궁금증에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작정한 독신주의가 아니라면 누구든지 내가 붙잡고 꼭 읽어보시라고 추천할 만한 책이다. 몇주를 고생하던 기침을 멎게 했던 코딘과 엇비슷한 처방이었다. 나는 아직도 결혼 생활에 불만과 문제들이 있을꺼라서, 기침이 딱 멎은 코딘에 비교하기엔 부족하겠지만, 아주 대단한 강도로 내 마음을 감싸주었고 머릿속을 깨끗하게 정리해 주었다.
책은 남녀가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고, 서로에게 미쳐서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해 보니 환상속의 그 또는 그녀는, 과연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었을때 가장 완벽했으며 배우자가 되었을 땐 얼마나 힘든 존재들인지, 그 과정에서 각자의 과거의 혹은 잠재적인 기억과 내면이 관계를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이런 처절하고 치사하고 구질구질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결혼이라는 관계가 희망이 있을 수 있는지를 아주 담백하게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결혼의 희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한 커플의 예를 들며 소설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서 아주 객관적으로 양쪽의 이야기를 공평하게 풀어간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작가가 남자의 입장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한것도 같은 느낌이지만, 나는 오히려 이 남자에게 감정이입이 더 잘 되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
이 책이 정말 놀라운 것은, 여기서 말하는 모든 예시들에 대해서 작가가 그 원인을 파헤치면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 설명이 폐부를 찌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내가 혹은 남편이 상대에게 단단히 삐지면 무엇때문에 기분이 상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침묵하거나 엉뚱하게 다른 걸로 화를 낼 때가 있는데, 이것은 마치 우리가 아이였을때 울고 있으면 엄마가 다가와서 나의 상처를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며 사랑해 주었던, 그 경지의 사랑을 상대에게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과 비교해서 정확한 단어들이 아닐수 있는데, 직접 읽어보시길 권한다.) 또 다른 예는, 부부가 집안일이라든지 경제공동체로써 평등을 원하는데, 사실 이 평등은 고통의 평등을 의미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내가 집안일로 이만큼 힘들었으니 상대도 이만큼의 힘듦을 감당하고 보여줘야 한다고 느낀다. 내가 이만큼의 돈을 상대보다 더 버느라고 고생을 했으니 상대도 그만큼의 고생을 집안일이나 그 어떤 것으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식이다. 정말 솔직한 통찰이었다. 나는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 불편을 감내하고 내 몸을 더 움직여 집안일을 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나는 이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이고 사랑이 많다라고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남편에게는, 그럼 너는 날 위해서 뭘 할껀데 라고 묻고 있었다. 나의 고통만큼 저 사람도 고통을 받아 마땅하다고 무의식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치졸한지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나만 이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남편도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고, 그래서 이런 류의 싸움은 도무지 끝이 나질 않는 것이다.
수 많은 사랑, 기쁨, 싸움, 사건 등을 거쳐 책 뒷부분에는 주인공 부부가 부부상담을 받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나는 거기서 내가 모르고 있던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던 불안을 보았다. 나는 남편이 나에게 무심하다고 느낄때 나는 가장 실망스럽고 화가 난다. 나는 이제까지 사람이면 이럴 때 다 화가 나는게 당연하지 않나 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남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럴 때 나의 분노가 필요이상으로 크다라고 느낄때가 있었다. 그런데 또 한번 들여다 보면, 그는 그렇게 무심하지 않았을 수 있는데, 원래 성격이 좀 무뚝뚝하거나 표현을 잘 못하거나, 아니면 나에 대한 믿음이 커서 자신의 사랑을 구지 매일같이 표현하고 관심을 주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조용히 생각해 본 결과, 내가 그렇게 화가 많이 났던 이유는 버림받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는데, 나의 첫 남편이 나를 버렸기 때문이었다. 사실 버렸다 라고 단순하게 이야기 하기엔 너무 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이 그 중간에 있지만, 아주 짧게 요약하면 그가 날 버린 것이 결론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나는 그 사건으로 전신화상과도 같은, 내 인생에 다시 또 있을 까 싶을만큼 큰 상처를 받아버렸다. 어쩔 수 없이 지금의 남편이 다시 나의 남편 자리에 들어왔기 때문에, 나의 이 불안과 상처가, 그러지 않으려는 나의 뼈를 깎는 수준의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시 찾아오는것 같다.
나는 입버릇처럼 주변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외로움을 잘 모르고 혼자서도 너무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다 라고. 사실이다. 나는 좀처럼 외로움을 잘 모르고 혼자 있는 것이 괜찮으며, 남에게 경제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기대거나 영향을 받는것을 매우 싫어한다. 이런 나의 성향은 첫번째 결혼이 끝난 이후에 비로소 생긴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할 때도, 이 사람에게 별로 기대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첫번째 이유는 상처에서 나온 나의 방어기제였고, 두번째 이유는 독립적인 나 자신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경제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독립적이라는것은 나를 지키는 엄청난 무기였고 또한 매력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나의 이런 독립적인 성향을 꽤나 높이 평가했고 좋아했다.
결혼하고 2년 반동안, 나는 나의 성향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했다. 아주 힘들게 얻은, 상처 위에 피어난 꽃과도 같은 제 2의 자아였다. 나 자신이 아주 성숙한 사람인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뿌듯했고 마음이 단단해진 것 같아 자신감도 생겼었다. 결혼으로 인해서 이런 나의 강함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게 하고 싶지 않았고, 남편도 그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런데 나의 이런 자아는 결혼 생활동안 많이 부딫혔는데, 남편과 부딫힌 것이 아니라 결혼한 나 자신과 부딫혔다. 나는 내가 할수 있는 일은 남편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집안일을 포함해서 대형견을 키우는 일, 무거운 것을 들어 옮기는 일 등도, 정말 혼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때에만 남편에게 부탁했고, 결혼비용부터 생활비나 집을 유지하는 경비등도 반반, 혹은 그에 준하는 분할로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나는 이런 방식이 참으로 합리적이며 논쟁의 싹을 잘라 버릴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나보다 경제력이 좋은 남편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고) 이렇게 제안할 수 있는 나의 경제력에 대해서 뿌듯해 했다. 이런 물질적이거나 물리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나를 유지하는것이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나의 감정이었다. 남편이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느낌' 이 들때마다 힘들었다. 나는 그토록 원하던 한 인간으로서의 독립을 하지 못하고 여전히 남에게 아니 남편에게 관심을 갈구하는 못난 사람이 된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그 해답의 일부를 이 책에서 찾은 것이었다. 나는 또 버려질까봐 심하게 불안하고 화가 나는 것이다. 내가 못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내 과거의 상처가 나를 불안하고 화나게 했던 것이다.
나를 들여다 보는 일은 왜 이리 복잡하고 힘든 것일까. 그리고 사람은 얼마나 복잡한 존재이길래 책을 읽고 상담을 받고 몇년을 성찰해야만 나 자신을 들여다 볼 눈이 조금 떠지는 걸까. 이 책은 결혼 또는 연애를 하는 중이거나 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아니, 가급적이면 지금 관계에 문제가 있으면 더 도움이 될것 같다. 꽉 막혔던 명치가 내려가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