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내보니, 망설임이었다

챕터 : 꺼내보니

by 민 과장


아침 7시 정적만이 가득한 사무실.

홀로 앉아 있다. 어제도, 그제도.

화장실에 들러 손을 씻는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똑같다.


매일 같은 사람, 같은 업무, 같은 농담.

무료한 일상이 10년째다.

뱃살은 전진하고, 행동은 후퇴한다.


문제점을 발견해도 손가락으로 가리킬 뿐,

입도 다리도 통장 잔고만큼 잠잠하다.


수군수군

주변 소리가 들린다.

나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그들의 시선은 내가 타성이 젖어 있음을

확신한다.


언제나 꿈꾸던 건 거창한 성공이지만,

길이 험하다는 핑계로 여기 멈춰 서 있다.

아니, 애써 외면하고 있다.


주변을 곁눈질하면 몇몇은 여전히 움직인다.

사업한다고 퇴사한 박 주임,

IT 업계로 이직한 신 대리.

다들 무슨 확신이 있기에, 그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그래도 몇몇 동료들은 나처럼 쉬고 있다.

한쪽 손을 가슴에 얹고, 한숨을 내쉰다.

그리곤 잠깐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니, 예민해진 귀에서 소리가 들린다.

“괜찮아, 올라가 봤자 별거 없어.”

“좋아, 올라간다 쳐. 떨어지면?”

“얼마 전에 박 주임 힘들다고 전화 왔잖아!”

“너랑 신 대리가 똑같은 줄 알아?”

“가족 생각해야지, 민 과장아.”

“동료들도 너랑 똑같다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주변에 아무도 없다.

당황한 마음에 몸을 움직여 보려 해도,

의자만 덜그럭거린다.


가까이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지금 뛰어가면 따라잡을 수 있다.

몸을 일으키려 발버둥 치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이젠 선택지도 남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해질수록 위기감은 또렷해진다.


”딱 한 번만 움직여줘. 제발…“


온몸에 힘이 들어가니 심장 소리가 선명하다.



굳어 있던 무릎이 비명을 지르며 펴진다.

의자가 뒤로 밀린다.

까만 시야 한가운데

하얀 커서가 밝게 빛난다.



그날 저녁,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 한 권을 내겠다는 조금은 거창한 여정이 시작됐다.



무료했던 10년이 그날 저녁 첫 문장으로

다른 시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망설임을 안아주며, 한층 더 성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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