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 꺼내보니
며칠 전, 엄마와의 통화가 짧게 끝났다.
“반찬 했어”라는 한 마디가,
일하는 중간중간 문득 생각이 났다.
잠깐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데,
엄마와 아이가 손을 잡고 있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엄마의 모습이 상상됐다.
그날 머릿속에 그려진 엄마는 이랬을 거다.
결혼 전 매일 보는 아이의 얼굴을
이제는 사진으로만 본다.
한번 보러 가고 싶어도, 용기가 안 난다.
남편과 외곽에 놀러 가자며,
하얀 속내를 감춘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보며,
모르는 척 고개를 끄덕인다.
외곽을 나오며, 뻥 뚫린 도로를 달린다.
중간중간 잘 가꾸어진 산책로가 보이면,
잠깐 주차하곤 한 바퀴를 돈다.
그렇게 마음이 진정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사는 동네를 들러
한번 훑어보곤 한다.
‘잘 살고 있지? 삼시 세끼는 잘 챙겨 먹고?’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렴’
그렇게 차가운 아파트를 바라보며
마음속 주문을 외운다.
용건 없이 전화하기 껄끄러워,
늦은 저녁까지 김치와 장조림 같은
좋아하는 반찬을 만든다.
반찬을 다 만들면,
아픈 허리를 주먹으로 두 번 툭툭 친다.
큰 숨을 한번 들이키며,
한쪽 손으로 핸드폰을 꽉 잡는다.
엄마: 아들, 잘 지내?
나: 어, 잘 지내.
엄마: 밥은? 반찬이랑 다 있고?
나: 응, 괜찮아.
엄마: 이번에 반찬이랑 김치 했는데 가져다줄게.
나: 아, 알았어. 나 지금 일이 바빠.
엄마: 어어! 알았어…
30초도 안 되는 통화 시간…
좋아하는 반찬만큼 기뻐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핸드폰에 보이는 화면은
‘통화 종료 아들♥’이었다.
괜스레 가족사진을 한번 보고,
TV 보는 남편에게 말을 걸고,
또 말이 많아진다.
어쩌다 핸드폰이 울리고,
화면에 아까 통화한 사람의 이름이 보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표정으로 전화를 받는다.
엄마: 어, 아들!
나: 반찬 했다고?
엄마: 어. 너 좋아하는 장조림이랑 김치 했어. 깻잎김치도 만들었고 며느리 좋아하는 나물도 같이 했지.
나: 뭘 그렇게 많이 했어. 그냥 사 먹으면 되는데.
엄마: 사 먹는 건 맛은 있어도… 건강엔 안 좋잖아.
나: 알았어. 그래서 언제 올 건데?
엄마: 음… 주말에 한 번 가서 반찬도 주고 같이 밥도 먹을까?
나: 알았어.
전화가 끝나고, 입꼬리를 올린 채로 거실에 앉는다.
한쪽 테이블에 전시된 가족사진을 본다.
여전히 5살로 보이는 남자가,
어색한 정장을 입은 채 웃고 있다.
어른 흉내를 내는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이건 그냥 내 상상이다.
그런데 이 상상을 하면 할수록
마음 어딘가가 따끔해진다.
주말이 돼서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반찬통을 정리했다.
뚜껑을 열었을 때, 뜨거운 열기와
익숙한 냄새가 올라왔다.
반찬을 보며, 잠깐 멈췄다.
이 반찬들…
만들려면 힘들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