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내보니, 첫걸음이었다

쳅터 : 꺼내보니

by 민 과장


2023년, 결혼 준비로 정신없었다. 식장을 알아보고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을 결제했다. 월급은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통장에 잠깐 머물다 나갔다.



준비 리스트를 지울 때마다 새로운 항목이 솟았다. 소년만화 속 악당 같았다. ‘해치웠나?’ 하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 다시 덤벼들었다. 어느 정도 마무리됐을 때, 리스트에서 지워지지 않는 신혼집 구하기를 보고 표정이 굳었다.



2년 전과 비교해 집값이 KB 시세 기준 30%나 떨어져 있었다. 사람들 머릿속엔 ‘더 떨어질 거야’라는 공포감이 스며들었다.



‘지금 사는 게 맞을까?’



다양한 책과 주변 사람들은 같은 조언을 해주었다. 이성적으로는 맞는 말이었지만, 불안감에 휩싸인 내게는 그 조언들이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더 떨어질 것‘이라는 반대 의견이 달콤하게 들렸다.



아내는 “요새 표정이 안 좋다. 무슨 일 있냐”라고 물어봤다. “별일 없다”라고 말했지만 표정은 어두웠다. 한참 실랑이 끝에 사실대로 말했다. 말을 뱉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고 그 빈자리를 후회가 채웠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내는 또렷한 눈빛으로 말했다. “돈을 잃으면 다시 벌면 돼. 우리 아직 어리잖아. “ 굳어 있던 내 얼굴이 풀렸다. 아내 말이 맞았다. 우린 목적지를 찍고 가는 게 아니었다. 그저 함께 나아가는 것이었다.



다음 날 부동산을 방문했다. 집을 한 번 보고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썼다. 처음이라 그런지 손이 떨렸다. ‘대출이 제대로 나올지, 법무사·취득세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 고민은 잔금일까지 꼬리를 물었다.



잔금 날도 순탄하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까만 도장을 몇 번이나 찍었는지 모른다. 도장을 찍을 때마다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법무사는 웃으며 ”괜찮다 “고 말했지만 나는 애써 웃으며 ”네... “라 답했다.



잔금을 치르고 아내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서로의 손을 꽉 잡는다. 어디로 향할지는 모르지만…



윙윙, 엘리베이터가 올라간다.

띵동, 문이 열린다.



너의 얼굴을 본다. 괜찮다는 듯 너는 웃는다.

내가 먼저, 한 발 내딛는다.



띡띡띡띡띡, 비밀번호를 누르고

철컹, 문이 열린다.

비어 있던 집에 우리의 첫걸음 소리가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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