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최 과장
‘마주하니’ 시리즈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온전히 감상하시려면 프롤로그부터 차례대로 읽어 주세요.
3. 최 과장
최 과장은 첫 회사에서 팀을 책임지는 2 선발 투수였다. 가장 먼저 출근하고 마지막으로 퇴근하는 모습에 "역시 최 과장이야"라며 칭찬했다. 그는 이 회사가 자신의 전부라 믿었다.
그러던 그에게 업계 1위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제안서엔 핵심 거래처들과 높은 연봉 액수가 담겨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이제 고생 끝이다!"라며 눈에 광채를 뿜으며 가족들에게 자랑을 했다.
그는 곧바로 능력을 펼쳐 보였다. 거래처에 문제가 생기면 서류 뭉치를 들고 밤길이라도 달려갔다. 핵심 거래처들을 성장시키고 시장 점유율을 30% 늘리며 자연스레 팀의 1 선발로 거듭났다. 몇 년 동안은 운도 그의 편이었다.
한참 잘 나가던 시기에 신입이 들어왔다. 본인을 '민 주임'이라 소개한 녀석은 한눈에 봐도 똘똘해 보였다. 예상대로 첫 달부터 대형 계약을 해오더니 순식간에 팀의 중심이 됐다. "민 주임! 잘했어!"라 말하는 최 과장의 얼굴엔 자신이 설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묘한 기시감과 함께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이야! 민 주임! 남강 거래처 계약으로 이번 달 넘겼다". 다들 웃는 회식자리에 한 사람만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만하지 마라". 무심결에 튀어나온 말에 옆 테이블 웃음소리만 선명히 들렸다. 최 과장의 귀는 빨개지며 다리를 떨었고, 민 주임은 입이 댓 발 나오기 시작했다. "농담이야 농담"이라고 말을 해서야 분위기가 풀렸었다.
그가 위기에 안주하고 있을 무렵, 아침부터 허벅지에 진동이 울렸다. “아 대표님!”을 외친 그는 굳은 표정으로 응접실로 들어갔다.
"대표님, 제가 얼마나 애쓰는지 아시잖아요...".
"최 과장, 미안하네".
셔츠가 점점 젖어갔고 고개는 점점 떨어졌다.
머리 뒤로 깍지를 긴 채 모니터를 쳐다본다. 주간 보고 슬라이드에 공란이 많았다. 손바닥에 난 땀을 허벅지에 훔치곤, 마우스로 파일 하나는 클릭했다. '직전달 성과 파일'.
딸깍, 딸깍
무언가 드래그하더니 8월 실적그래프가 슬라이드 속 10월 칸에 덮였다. 노트북을 닫고 흡연장으로 내려간다. 난간에 기대 얼굴을 감싸며 중얼거린다. "이 또한 지나가리...". 몇 번을 반복했지만 떨리는 손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참을 그러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야... 너희 오늘 시간 돼?"
사람이 없는 횟집. 중년의 남자 5명이 앉아있었다. 붉어진 얼굴만큼 회사 욕을 한다. "자자, 한잔하자!"라며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 밝아 보인다. 최 과장이었다. 술병이 한 테이블을 채웠을 때, 누군가 칭찬을 시작했다.
"민 주임... 잘해!" 다들 끄덕거리는 가운데 한 사람만 좌우로 흔들었다.
“걔? 내가 다 알려줬는데 잘난 척이야!”.
목소리엔 깊은 질투와 열등감이 배어있었다. 당황스러운 가운데 누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그래... 어휴 술 많이 취했다. 가자."
그는 동료의 부축을 받아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날, 편의점에서 헛개수를 하나 사서 빌딩으로 들어갔다. 사무실로 들어오니 민 주임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눈을 흘기며 "그래"라 냉소적으로 대답해 줬다.
자리에 앉아 지갑 속 복권 QR을 맞춰본다. '총 당첨 금액 0원'. 종이를 구기며 쓰레기통에 던진다. "하.." 천장을 보고는 이내 휴대폰으로 회식 알람을 맞춘다. 잠시 뒤, 진동이 허벅지를 두드린다.
띠링띠링 - ‘회식 시작 시간‘
드드득. 헛개수 병이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