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거울
‘마주하니’ 시리즈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온전히 감상하시려면 프롤로그부터 차례대로 읽어 주세요.
5. 거울
고깃집 문을 나서자마자,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주변을 둘러봐도 최 과장은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나서 버려진 음료 캔을 발로 찼다. '지가 뭔데? 퇴사하지도 않을 거면서.’
다음날 사무실 분위기가 냉랭했다. 최 과장은 회의실에서 퇴사 면담을 했다. 그 모습을 본 동료들은 나를 죄인 보듯이 봤다. '아니 다들 똑같은 생각이었잖아'. 얼굴이 뜨거워지는 거 같아 일찍 외근을 나갔다.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싸가지없게 말하네…’라는 최 과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 내가 말을 직설적으로 했지...’ 센터 콘솔을 손날로 툭툭 쳤다.
이튿날, 최 과장은 본부장과 퇴사 면담을 진행했다.
우웅-
김 과장 : 야 무슨 짓을 한 거야
우웅- 우웅-
알 수 없는 번호 : 너 외근 나오면 전화해라
손끝이 진동을 멈출 새도 없이 울려댔다. 내가 존경하는 정 과장님의 전화였다.
"네 과장님, 민 주임입니다."
"너 미쳤냐? 너 뭐 돼? 싸가지없는 놈이. 앞으로 계속 잘 나갈 거 같지? 두고 봐, 내가 너 가만 안 둔다".
정신이 몽롱했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무슨 일 있냐는 부모님의 말을 무시한 채 방으로 들어갔다. 동기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네가 잘못한 거 아냐". 그 말은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가 잘못한 건가... 차라리 내가 퇴사할까...'. 생각이 깊어지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머릿속으로 복기하다 보니 창문이 밝아져 있었다.
화장실에서 씻으며 거울을 보니, 처참한 몰골의 사내가 보였다. 최 과장의 얼굴과 다름없는 모습.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내가 원한 결과인가? 내가 바란 건 우리 팀이 더 잘 되는 방향으로 가는 거였는데... 최 과장이 열심히 일하는 걸 원한 건데...’ 다 포기하고 싶었다. 최 과장에게 용서를 구하고 퇴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출근하는 차 안, 떨리는 손으로 최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두 번 울리다 끊겼다. 한 번 더 해봤지만 똑같았다. 차 핸들을 주먹으로 쳤다. 문자라도 남길까 싶어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이내 포기했다.
최 과장 자리는 비워져 있었다. 순간 세상이 노랗게 변했다. 형광등 불빛마저 누렇게 번졌다. 흡연장에서 이 대리에게 물어보니 오전 반차인 걸 알게 됐다. 그 사실을 알곤 퇴근 후 얼굴 보며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후까지 거래처 방문을 하지 않고 어떻게 말할지를 고민했다.
'당신도 잘못했다고 할까... 아니야... 죄송하다고 말하고, 내가 퇴사하겠다고 이야기해야겠다.'
퇴근 시간이 됐다. 자리 위 아크릴 명패와 상패를 번갈아 봤다. 등에 식은땀이 났다.
'난 지금까지 무엇을 했을까... 이제 이것도 끝이구나’
최 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퇴근 시간을 한참 지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걸 급하게 쫓아갔다.
“과장님..”
그는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굳게 닫은 입술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소리가 났다.
내 목소리가 복도를 떨리게 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최 과장은 내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그때, 다시 엘리베이터 소리가 났다.
문이 닫힙니다.
틱
복도 형광등이 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