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며, 눈물을 흘렸다

쳅터 : 안아주며

by 민 과장


화창한 토요일 아침.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요 며칠 장마 때문에 날이 흐렸는데, 오랜만에 들어온 해가 반갑게 느껴졌다. 좋아하는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를 켜고, 아내와 같이 먹을 아침을 준비했다.



주말 아침은 빵을 먹는다. 모닝빵에 참치마요와 피클을 함께 넣어 먹으면 든든하다.



상부장에서 참치와 마요를, 냉장고에선 피클을 꺼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노래가 뚝 끊겼다. 재호의 전화였다.



“어.. 무슨 일 있어?”

“… 하… 아버지… 돌아가셨다…”

“어디 병원이야… 지금 갈게”



통화를 끊자, 스테인리스 그릇에 비친 내 표정이 사라졌다. 스피커에선 노래가 다시 흘러나왔다.



“다녀올게” 호주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인사했는데… “아빠가…” 하면서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병문안 때 드린 꽃이 아직 싱그러울 텐데… 카톡방에 타자를 치는 손가락이 떨린다.



나 : ‘얘들아…’



샤워를 하며 마음을 다졌다. ‘힘들 테니 옆에 있어야지’.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그날따라 차갑고 날카롭게 살을 때렸다.



옷장 속 검은 정장과 셔츠를 꺼내 단정하게 입었다. 검정 넥타이도 단단하게 매고, 아내에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집을 나섰다.



분명 아침엔 밝은 햇살이 비쳤는데, 장마철이라 그런지 어느새 먹구름이 하늘을 덮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거 같았다. 비 맞는 게 싫어선지, 친구가 걱정되는지 악셀을 더 밟았다.



삼성병원 주차장. 아직 비는 내리지 않았다. 차에서 내리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굳은 표정으로 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거울을 보는 듯했다. 난 숨을 한번 내쉬며, 휴대폰 화면으로 조문 예절을 훑고 넥타이를 다시 조였다. 한 발씩 움직이는 발걸음이 밥도 먹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천근만근 무거웠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졌다. 한쪽에선 울음소리가, 다른 쪽에선 넋이 나간 듯한 유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화장실에선 특유의 향냄새도 났다. 메인 화면에서 빈소를 찾고 내려간다.



도착한 빈소엔 가족들만 있었다. 방명록을 작성하려 하니 내가 첫 번째였다. 떨리는 손으로 이름을 적었지만, 글씨는 삐뚤빼뚤 제멋대로 춤을 췄다. 아까 찾아본 조문 예절을 조심스럽게 따라 했다. 한번, 두 번, 묵념…. 오른쪽으로.. 한번.. 재호를 봤다. 팔 엔 두 줄짜리 완장이 보였다. 어깨를 감싸며 안았다. 재호의 뜨거운 손이 재킷 넘어까지 전달됐다. “괜찮아.” 재호의 등을 툭툭 쳤다. 재호는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지 못했다. 나의 눈도 뿌옇게 흐려졌다.



추스르지 못할 감정을 내버려 둔 채 식당에 앉아 밥을 먹었다. 수육을 두 점 먹었을 때, 다른 친구들도 도착해 조문을 마쳤다. 테이블에 앉을 때마다 말없이 휴지를 건넸다. 모두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술잔이 돌기 시작했다. 빈소의 무거운 공기를 몰아내려는 듯, 과거의 재밌었던 추억들을 하나둘 꺼내며 큰소리로 웃었다. 우리의 웃음소리가 식당을 가득 채우려는 순간, 재호의 울음소리가 다시 터져 나왔다. 그 소리는 우리의 웃음소리를 삼켰다. 서로의 눈은 패배의 슬픔 때문인지 흐려졌고 이내 광대를 타고 내려갔다. 그렇게 매일 보내다 보니 어느새 발인 날이 됐다.



발인 날,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장지에 도착해서도 멈추지 않았다. 재호가 먼저 아버님 사진과 함께 걸어갔다. 우린 재호 아버님을 감싼 하얀 천을 들고 뒤따라갔다. 잘 관리된 잔디였지만 발을 옮길 때마다 질퍽거렸다. 행여 불편하실까 봐, 떨리는 손으로 천을 더욱 꽉 쥐었다. 걸을 때마다 풍겨오는 비 냄새는 진흙과 섞여 코를 찔렀다.



길고 얕은 직사각형 무덤 속으로 아버님을 모셨다. 간단한 예배가 진행되었고, 재호가 먼저 삽을 받았다. 질퍽한 흙 가운데, 삽 끝엔 가장 고운 모래가 고였다. 재호의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사랑해”

푸드득



차례대로 흙을 뿌릴 때마다 울음소리는 커져갔다. 그 울음은 마지막 사람이 흙을 뿌리는 순간, 비로소 잦아들었다. 재호도 그것을 끝으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켰다. 잠깐이지만 빗발 또한 약해졌다.



주차장으로 걸어 내려오는 길, 서로 고생했다며 짧은 인사를 나눴다. 가장 초췌한 얼굴의 재호가 우리에게 다가왔을 때, 말없이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톡… 톡



재킷의 어깨가 먼저 젖었지만, 그건 분명 빗물 탓일 거다.



장마 구름이 느리게 흐르듯, 우리의 위로도 천천히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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