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여덟에는 되는데, 스물 아홉에는 안되는 것
"3! 2! 1! 해피 뉴 이어!"
2와 0으로 구성된, 뒷 자리 수가 0으로 바뀌는 어쩐지 특별한 한 해의 시작.
2020년을 설레며 맞이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에게 2020년이 그리고 내 나이 스물 아홉이 그랬다. 나를 나타내는 몇가지 지표 중 하나의 앞자리가 바뀌는 별거 아닌 일 이라고 생각해왔으면서, 내 20대의 마지막은 엄청나게 의미있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나를 위한 소비에는 큰 망설임이 없는 나임에도 그 동안 취준을 핑계로 미뤄왔던 몇가지를 빠르게 추진했다.
15년 넘게 좋아한 그룹의 카운트다운 콘서트, 30대를 함께할 명품 한 개, 그리고 축구 여행.
콘서트나 쇼핑은 지루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경험이기는 하지만, 축구는 조금 달랐다. 나의 길고 긴 취미 리스트(그래도 아직 한 100개는 안되겠지)의 끝에 적힌 '해외 축구'는 고통스러웠던 지난 일년을 어떻게든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그것이 승리이든, 아님 길었던 기다림의 끝에 찾아온 큰 패배이든. Match day fixture를 몇번이고 들여다보며 지난한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너무 소중했다. 나에게 축구가 그런 존재가 되었다보니, 한국에 멈춰 모니터로만 마주해야하는 경기장의 열기가 너무도 간절했다.
그렇게 폭풍 전야처럼 조용했던 2월, 있는 눈치 없는 눈치 다 모아 휴가를 질렀다. 내가 스물 아홉인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축구 선수도 스물 아홉이었기에, 그의 가장 빛나는 시간들의 일부분을 함께하고 싶었다. 휴가를 다녀오겠다 결심한지 2주만에 보고하고, 비행기 티켓을 끊고, 숙소를 수소문했다. 당연히, 입사 후 첫 장기 휴가에 내 열정은 하늘을 찔렀다. 여행을 취미로 삼은 이후 단 한번도 짜본 적 없었던 초단위의 스케쥴표가 내 모니터를 채웠다. 데이시트-박물관-공연, 투어-박물관-축구, 데이시트-근교여행-공연... 빡빡한 스케쥴은 단 한 푼도, 시간도 낭비할 수 없는 내 삶을 그대로 담아두고 있었다.
출국일을 앞두고 그의 연이은 활약과 승리에 하루하루 심장은 터져만 갔고, 불안으로 일렁이는 도시는 마음껏 묻어둔 채 홀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안에서도 다녀오면 쏟아질 행사며 업무들을 되뇌이며 '그래, 지금의 이 투자가 내 일년을 얼마나 가치있게 만들어주겠어.'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여행이 주는 끔찍하리만치 달콤한 이질감을 안고 아, 정말이지 뜨거운 행복이었다.
몇 없는 연차를 양껏 소진해 영국을 갔건만, 야속한 세상은 언제는 그렇게 모든게 쉽게 이루어졌다든? 하면서 그의 부상 소식을 알려줬고, 나는 무력한 팀의 패배를 2경기나 재미있게(?) 보고 돌아와야 했다. 그러나 진짜 불행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긴 비행 끝에 도착한 공항 안은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게 고요했다. TV는 연일 종교행사로 불붙듯 거세진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 뿐.
그렇게, 세상에 역병이 창궐하고, 마스크에 돌돌말린 일상을 맞이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올해 초. 그저 바쁜 한 해를 계획하며, 그래도 이때쯤이면 여유가 나려나 하고 빽빽한 글씨 가운데 비어있을 것 같은 공간을 찬찬히 손가락으로 짚어보았던 캘린더는 이제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고작 영국 한번 다녀왔을 뿐인데, 세상은 180도 바뀌어 아무것도 예측도 추측도 할 수 없어졌다. 그렇게 몇번의 유급 휴가를 반복하고 그저 무력하게 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회사로부터 나는 쉽고 깔끔하게 정리당했다. 솔직히 예상한 줄 알았는데, 예상하지 못한 것 마냥 뒷통수가 얼얼하고 입안이 통 쓰기만 했다. 통보를 받은 것은 5월 중순이었으니, 입사한지 고작 1년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머리 속이 복잡하기만 했다. 아 결국, 이런 일이나 당하려고 그렇게 불편하고, 꺼림직한 기분을 뒤로하고 여기까지 왔던건가.
갑자기 내쳐진 취업 시장은 차갑기 그지 없었다. 안 그래도 넘쳐나는 인재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든 돌아보게 만들겠다고 발버둥치며 나도 모르는 나에 대한 소개를 몇천자씩 써내고, 1년차도 없는 유사 경험을 뭐라도 써내라고 난리다. 그래놓고 스물 여덟까지는 되는데, 스물 아홉은 안된다고 한다. 스물 아홉살에는 가능한데 서른은 안된다고 한다.
그 서른, 대체 서른이 무엇이기에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불안하고, 두렵게 만드는 걸까.
여전히 이 시간을 그저 견디고 버텨내는 사람으로서,
수 많은 스물 아홉, 서른 언저리의 불안 속에서 발버둥치는 친구들과 이 글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