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길 것과 보내야 하는 것

스스로의 부족함과 마주하기

by 솜솜


한 회사에서 한 명의 직원을 이해하기 위해 몇번의 면접과 어느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


숨이 차도록 돌아다니던 영국에서와 달리, 코로나와 마주한 회사는 고요했다.

코앞에 예정되어있던 행사들이 연기되기 시작하면서 상반기 일정이 불확실해지고, 모든 사람들이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아- 이렇게 할 일이 없을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있다 올 걸. 5월이면 또 정신 없어질텐데-' 같은 속 편한 소리도 나왔다.


메르스도 그렇게 위험하다더니, 금방 이겨냈는데 이 코로나라는 것도 지금은 어려워도 한 3개월이면 다 정상화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이 앞섰다. 내가 마주한 이 역병이 몇 개월이 아닌 몇 년간 글로벌 단위의 타격을 주는 현상이 될 거라고는 대체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KakaoTalk_20220427_100224430_01.jpg 휴직기간에 공연일을 병행하던 어느날 만난 대낮의 달


안전한 폭풍전야


나의 20대는 안전한 폭풍전야 같았다.

늘 폭풍전야 같다고 말하기엔 상대적으로 유복한 집에서 경제적인 고민 없이 삼수에 도전할 수 있었고,

어떻게보면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던 결과에도 지탄받지 않고 그 다음 수순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 개인은 치열하게 살았지만, 그 외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될 수록,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그 중 가장 어려운 일이 꿈 대로 사는 것, 꿈 꾸며 사는 것이었을 줄은 스무살의 나는 몰랐다.

남들이 '야 넌 하고 싶은 일도 있어서 좋겠다.'라는 말이 칭찬처럼, 노래처럼 들리는 날들이 그저 좋았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가장 좋아하던 작품의 제작사로 입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100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이긴 했지만, 그저 그 작품의 일부가 된다는 생각에 한 껏 들떠있었다. 돌이켜보면 일도 재미있었다. 일주일에 6일을 회사와 공연장에 붙들려있었지만 내가 하자는 대로, 내가 하고싶은대로 진행되는 일들이 다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우들 틈에서 술을 홀짝이며 제법 예술 하는 사람 티가 나는 내 모습이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현실적인 처우였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리고 부모님 품에서 먹고 자는 나는 금전적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겠거니 했다. 그런데 다른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이 보였다. 월급 때문에 병원 가기를 망설이는 동료 AD의 얼굴이 보였다.


여러 현실을 마주하며 공연일은 안되겠다고 마음 먹으니, 어느새 스물 일곱이었다.

나에게 꿈은 '보내야 하는 것'이 되었다.



폭풍 속에서


그렇게나 좋아했던 일을 그대로 두고 학교로 돌아온 나는 어느새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있었다.

뭐라도 해야하는데라고 생각은 했지만, 3학기에 했던 전과 때문에 눈 앞에 놓인 빡빡한 학교 생활 속에 잠시 안주했다. 삼수에 일을 하긴 했지만 휴학도 1년을 한 터라 뭔가 더 이상 늦어지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물 일곱의 나는 형체 없는 불안과 압박에 쫒기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런 준비 없이 졸업으로 전진하기보단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돌아볼 걸.


계약 AD로 입사하긴 했지만, 차기작부터 정규 입사를 제의받기도 했었기 때문에 한 6개월 정도는 더 일하며 시간을 벌까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또래 AD들이 모두 그만두게 되면서 혼자 남아있을 심적 여유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계약 종료일을 남겨두고 계획한 유럽 여행은 너무나 당연하게 뒤를 돌아보지 않게 해줄 좋은 핑계가 되기도 했다.


영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7개의 전공 수업을 해치워가며 한 학기를 마치고, 나는 얼렁뚱땅 수료생이 되어있었다. 5년의 시간을 숨 돌릴 틈도 없이 보냈는데, 사회에 던져진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겉에서 보는 폭풍은 거대하고 위력적이지만, 그 폭풍의 중심인 폭풍의 눈은 섬뜩한 고요함이 있다고 한다.

정식 입사 후 6개월, 아무것도 모르는 채 고요함에 만족하며 폭풍은 지나갔다고 믿었던 그 시간에 나는 사실 폭풍의 눈을 천천히 걷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입사 절차를 3번을 치뤘다.

이유는 많았다. 전환 시기가 아니라서, 회사 입사의 공식적 방법이 아니라서...등등


어쩌면 나에 대한 회사의 불신을 이때 이해하고, 깨닫고 넘어갔어야 했다. 하지만 내 몸의 안락함과 나를 위한다고 믿었던 구성원의 설득으로 몇번이고 부당하게 느껴지는 과정을 넘어가고 또 넘어갔다.

그 당시 나는 내 상사가 진심으로 나를 생각하고, 나를 끌어줄거라고 조금은 아니 많이 믿었었던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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